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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Oct 14. 2020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공황장애가 다시 나타났다. 한 시인이 낸 책에 대해 쓴 글을 올려야 하는 날이라 몇 페이지 남지 않은 작품을 다 읽었다. 출판사에서 리뷰 올릴 때 해시태그 달아달라던 것까지 다 적어서 마무리했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을 끝내고 기분이 좋았었다.


마감을 끝내자 아주 홀가분했다. 작품도 굉장히 재밌었지만 괜찮다고 느끼는 책에 대해 쓰는 일이 흔치 않다. 표지만 봤을 때는 좋다고 느껴서 신청해서 막상 받아서 읽으니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닌 데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작품이라면 그거야말로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서평단에 당첨되면 무조건 책을 받고 SNS에 써서 올려야 하는 숙명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나와는 맞지 않는 작품을 만나면 잘 읽히지 않을 뿐더러 글도 잘 써지지 않기에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작품은 좋아하는 분야인 에세이인데다 글도 좋아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행운을 잡은 셈이다.


마감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기분 좋은 상태에서 책 읽느라 하지 못했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나를 불렀다. “컵에 담가놓은 거 안 씻을 거야?” 밤에 끼고 자는 턱 관절염 장치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폴리덴트에 담가두었는데 깜빡하고 그냥 둔 것이다. 대답은 했지만 일단 게임 한 판만 하고 해야겠다 싶어 끝내고 주방으로 갔다.


장치를 씻으려고 서 있는데 어지럼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 순간 진정되는 듯하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득해지더니 다른 세상에 간 것마냥 어떻게 될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온전치 못한 몸 상태 탓에 더 그런 것인지, 혹 조금 전에 일본 유명 배우의 비보를 뉴스로 급작스럽게 접해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급격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혼돈 상태에서 '공황 증상이 또 나타났구나' 알아차린 순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장치를 꺼내 칫솔로 깨끗이 닦아 물로 씻어낸 후에 방으로 돌아와 항불안제를 먹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고, 조금 진정되자 엄마에게 또 공황장애가 왔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정말 잠깐 사이에 수 분 내에 오는 증상이라 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갑자기 거품을 물고 고꾸라져 쓰러지지는 않는다. 다만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정신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어?' 하는 순간 전화 박스에 들어갔는데 누가 밖에서 문을 잠그는 바람에 갇혀서 나올 수 없는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한다. 그게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수 초 내에 끝나기도 한다. 이번에는 아주 짧게, 1분에서 2분 안에 끝났지만 길게는 1시간 정도 갈 때도 있다. 그러니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무사히 넘어갔다. 전에는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오늘은 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아무런 일이 없다가 오는 상황이 잦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끝난 것 같더니 아니었다. 오지 않기에 이제는 끝난 줄 알고 안심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수만은 없는 법. 오더라도 인식하려고 애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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