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갑자기 나를 불러 한 소리 했다. 내가 손님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걸 우연히 매니저가 들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손님이 가고 나서 나를 조용히 불러서 그렇게 팔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손님이 각질 제거 제품을 찾고 있어서 내가 데리고 가서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설명을 잘못해서 손님이 그냥 가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에 나는 당연히 그러려니 했지만, 매니저가 보기에는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곳에서 일하면서 나는 교육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투입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일하면서 매니저가 한 번 바뀌었다. 전에 있던 매니저는 내가 초보인 것을 알아서 그런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뀐 매니저는 그렇게 팔면 큰일 난다고 했다. 내가 “교육받은 적 없는데요”라고 했더니 오히려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자신과 같이 매장을 옮겨온 부매니저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교육을 좀 해주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고, 내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만 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답 듣기를 반복했다. 이 회사는 교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경험자가 오면 편하게 일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가 왔을 때는 자신의 감이나 물어봐 가며 팔아야 할 만큼 체계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와도 교육을 해주기는커녕 판매만 잘하라는 말만 하는 모습을 봤다. 교육해 주지 않는데 어떻게 잘 팔 수가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지만 그때는 내가 ‘을’이라 하소연할 곳도,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핑계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나는 그때까지 화장품을 써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비비크림, 스킨, 로션 정도였다. 나보다 어린 아르바이트생들은 자기가 화장도 할 줄 알고 알아서 잘만 판매하는데 나는 그저 일본어만 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판매할 때 아무것도 몰라 헤매는 것은 당연하고 내 얼굴을 보고 사람들이 무엇을 썼는지 물어보는 말에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엄마도 화장을 할 줄 몰랐다.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밑에 있는 남동생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만 하다가 아빠를 만나서 결혼했다. 그때가 겨우 스물넷이었다. 그리고 나를 낳고 1년 뒤에 내 동생을 낳아 키우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갑자기 일을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중요한 곳을 갈 때면 나에게 화장을 해달라고 할 만큼 화장의 ㅎ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랐으니 당연히 나라고 화장을 할 줄 알았겠는가. 전혀 아니다.
그때부터 화장품을 다 사서 내 얼굴에 그림을 그리듯이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화장품 업계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화장품 회사에 다니면 일반 회사에서 화장하는 것보다 훨씬 진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손님이 내 얼굴을 보고 그 화장품을 사갈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라도 팔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인 것이다. 그래서 내 얼굴에 회사 제품을 바르고 칠하고 다닌 시간만 3년이다. 물론 이 회사만 다닌 게 아니라 여러 회사를 옮겼고 지금은 화장품 일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 화장을 배운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잘했다고 생각할 만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화장품’이란 존재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다.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하나의 제품을 가지고 차이점은 무엇인지 어떤 피부의 고객에게 제품을 팔아야 하는지 물어봐 가며 하나하나 익혀갔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결과 모든 제품을 다 알고 일본인 손님이 오더라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을 즈음 나는 회사를 나오게 되는 계기를 맞이한다. 그때가 이 회사를 다닌 지 겨우 두 달이 되었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