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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Sep 20. 2022

열정페이

대망의 첫 출근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요식업계는 익숙하지만 화장품 업계는 하나도 모르다 보니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는 만큼, 그리고 일본어 가능자로 처음 일하는 만큼 화장품 관련 단어를 외워서 가야 할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스킨, 로션, 에센스, 크림 등 다양한 단어를 익혔다. 이것들을 사용할 날을 고대하며 잠이 들었다.


전화로 다음 날 바로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일어나자마자 출근 준비를 했다. 복장도 이야기 들은 대로 입고 매장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계산대 앞으로 다가가 오늘부터 일한다고 말하니 나를 탈의실로 안내했다. 유니폼을 받고 갈아입고 나왔더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나처럼 방학 때만 잠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정직원은 흔치 않았다. 


사실 나는 이때 정직원으로 취직을 했다. 하지만 방학 때만 잠깐 일하는 사람이어서 정직원이라기보다는 아르바이트생에 가까웠다. 게다가 화장품 일은 하나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이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다른 손님이 오면 똑같이 응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매장에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서 일본인 손님들이 오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상황이 생겼다.


잘 모르지만 일단 전에 화장품 매장에 갔을 때 직원이 응대하는 모습을 떠올려 손님을 맞이하고 상품을 설명했다.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 가면서 최대한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다행히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첫날이라 긴장도 많이 되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익숙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10시부터 7시까지 일했다. 집도 근처라 출근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점은 정말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출퇴근 시간이 길수록 지치는 건 내가 아니던가. 그래서일까 이때가 정말 편했던 시간이구나 싶다. 그런데 퇴근 시간은 정확히 지켜져야 하는데 매번 일본인 손님이 많아서 잔업까지 해야 했다. 어느 정도로 많았냐면 하루에 50명씩 상대했다. 2011년 당시에는 부산에 일본인이 많이 왔었다. 그래서 나 혼자는 다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손님이 계속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사나흘은 잔업을 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한 달이 지나고 월급을 받았는데 잔업수당이 잡혀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회사에 알아보니 잔업을 해서 그 정도 월급이 나온 거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얼마를 받기에 이 정도가 맞다고 말하는 걸까? 내가 받은 돈은 고작 100만 원이 넘어가는 금액이었다. 내 시급이 얼마면 이 정도밖에 못 받는 건지, 일본어를 하는 사람이면 돈을 더 많이 줘야 하는 건 아닌지 그때는 잘 몰랐다.


막상 지금 생각해 보면 야간 수당도 줘야 하고 시급도 더 높게 줘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시급이 굉장히 짰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거의 반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리 일해도 돈을 많이 받지 못했다. 호텔 연회장에서 하루를 일하면 45,000원에서 5만 원을 줬으니 얼마나 시급이 작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화장품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서 '열정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이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언니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처럼 일본어 가능자로 일한다고 했다. 그런데 매니저가 이 사람은 정직원이고 나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일하는 기간이 짧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생각해 보니까 조금 이상했다. 분명히 본사에서 나보고 정직원이라고 했는데 왜 매니저가 나보고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이 언니가 들어오니까 나보다 훨씬 일을 잘하기도 하고 일본인 손님이 오면 내가 아니라 이 언니한테 다 맡기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나한테는 한국인을 맡으라고 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나도 일본어 잘할 수 있는데...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서 그저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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