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 화장품 판매에 익숙해졌을 때였다. 매니저가 다 같이 모아놓고 언제 한번 회식하자고 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아르바이트생들도 있었고 나도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없으니 같이 이야기도 나눌 겸 밥을 먹자는 것이었다.
회식 날이 되었고 아침에 출근했던 나는 마감할 때까지 기다려서 회식 장소에 갔다. 매니저가 해운대에 살았는데 거기에 괜찮은 가게가 있다고 해서 차를 얻어 타고 갔다. 도착한 곳에는 매니저의 남편분이 있었다. 예약해 두어서 그런지 넓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음식이 나오고 맛있게 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웬걸 나는 먹지 못했다. 소고기가 나왔기 떄문이다.
소고기를 왜 못 먹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민트 초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소고기를 못 먹는다, 아니 안 먹는다. 소고기를 먹어본 적은 있다. 하지만 먹을 때마다 매번 화장실에 간다. 특히 제대로 익히지 않은 소고기는 젬병이다. 맛은 있지만 먹기만 하면 화장실을 가서 힘들다. 소화를 못 시키는 것 같다. 게다가 조금만 더 익히면 질겨지는 바람에 제대로 익힌 소고기는 먹기가 어렵다.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래서 결국 그 맛있는 음식 다 제쳐두고 버섯만 먹었다. 매니저는 나보고 미안하다고 했다. 다들 소고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처럼 예외가 있지 않은가. 제발 회식할 때는 그 사람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음식은 없는지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메뉴가 조금 많은 가게로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면 한다. 같은 음식으로 정해서 음식도 빨리 준비되고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다수만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만 양보하면 어떨까.
아무튼 그렇게 있는데 남편이 직원들이 궁금했는지 한 명씩 누구인지, 직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물어봤다.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다가 나는 누구인지 물어봤는데 그때도 나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했다. 분명 정직원이라고 했던 본사와 매니저가 말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의문만 가득했다. ‘나는 진짜 아르바이트생인가?’ ‘그럼 본사가 이야기했던 정직원은 뭐지?’ 본사에 물어봐도 별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직접 물어봤다.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은아 씨가 아르바이트생인 줄 알았어.” 기간도 짧고 일본어 가능자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국 사람도 대하니까 그런 줄 알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연히 일본어 가능자라도 한국 사람은 대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니까. 일본 사람이 없는데 한국 사람을 상대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일하러 왔으니 당연히 일해야지. 본사에서 말을 하긴 한 건지, 나를 정말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웃긴 일이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나를 정직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보고 직원이라면 이런 것도 해야죠, 라는 말만 했다. 오히려 텃세를 부렸다. 나보다 매장에 늦게 왔지만 자기가 경력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가르쳐준 것 하나 없으면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내가 물어보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았다. 차라리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반성하고 열심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고 배우라고 말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해야 하네, 저렇게 해야 하네,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계속 참고 일하다가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계속 일할 바에는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결국 매니저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왜 갑자기 그만두냐고 물어보기에 일이 있고 본사와 이야기한 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바로 그날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더 많은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