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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Oct 18. 2022

나에게 일이란 절실함이다

또 새로 간 곳은 드럭스토어였다. 지금은 이름을 바꾸어서 아마 다들 기억을 못 할 수도 있겠다. 그곳에서 3일 동안 일했다. 오픈 매장이었는데 매장이 완전히 꾸려지기 전, 선반을 닦고 물건을 진열하고 계산대도 맡는 일이었다. 이 분야도 처음이니까 초보자의 자세로 열심히 임하리라 다짐하며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반드시 텃세에 굴하지 않고 버텨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굉장히 일하기 좋았다. 잘 모르니까 물어보면서 물건을 여기저기 가져다 놓고 창고에 쌓인 재고를 정리했다. 선반도 먼지 한 톨도 나오지 않게 아주 깨끗하게 닦았다. 계산하는 방법도 기계를 잘 다루는 직원에게 물어봐 가며 익혔다. 내 생각보다 더 순조롭게 하루 이틀이 흘러가고 드디어 오픈 날이 다가왔다. 


가게를 열기 하루 전, 아침에 출근하니 본사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다. 본사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준비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고 일하는 것도 보러 오는 거라고 생각해서 본사 직원이 대신 오는 것이니 열심히 일만 잘하면 되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본사 직원이 도착하고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본사의 많은 사람을 대표해서 온 직원은 원래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생각이 달랐다. 눈치가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본사 직원이라서 그러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우리가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게다가 오픈 날이 되고 손님이 몰려와서 계산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계산대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허둥지둥했다. 그랬더니 나에게 와서 자리를 비키라고 했고, 나는 창고 가까이에서 구경만 해야 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속으로 외쳤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을 뿐인데 갑자기 잘하고 있던 사람을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한참 자기가 계산하고 있다가 손님이 가고 나니까 나에게 다가와서 여기서 뭐 하냐고 묻더니 이번에는 전단지를 돌리라고 했다. 


처음에는 묵묵히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건지 조금 이따가 다가와서 그렇게 나눠주기만 하지 말고 큰 목소리로 인사하면서 나눠주라고 했다. 그래서 애써 웃으면서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열창하면서 돌렸다. 그런데 그 모습도 본사 직원이 보기에는 별로였는지 나보고 그만하라고 다시 계산대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나눠주기 시작했다. 자리로 돌아오니 옆에 같이 일하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도 애써 웃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는 정말 황당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내가 여기서 일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 일이 많았다가 갑자기 하나도 없어지고 아예 쓸모가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때부터 여기를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나와 이 일은 맞지 않는다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본사 직원의 눈에 들기는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나가자, 도망가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상황이 잠잠해졌을 즈음 나는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그날 일을 마친 후 퇴사했다.


물론 본사 직원이 보기에는 내가 어설프고 일도 남들보다 뛰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의지가 엿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 스스로 나서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게 내 의지를 보여줄 상황이 없었다. 다시 돌이켜보면 그랬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내 선택은 똑같았을 것이다. 핑계를 대보자면 어렸고, 일을 잘 몰랐다. 눈치가 없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방법도 없었으니, 지금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나오기 직전에 다른 직원과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 직원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도 똑같이 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본사 직원 때문에 힘들지 않냐며 말을 붙여주었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니까 자기도 마찬가지라며 웃어보인 것이었다. 정말이지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다.


나에게 일이란 절실함이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 생계를 꾸리려고 시작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하나하나 배워가며 최선을 다했다. 남들은 보이지 않으니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절실하게 일을 달라고 하늘에 외쳤는지. 그 절실함이 모여 수십 번 아르바이트가 바뀌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었다. 비록 돈은 적었지만, 그 속에서 경험을 얻었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렇기에 그날의 일은 잊을 수 없다. 아니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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