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루나무 Oct 25. 2022

같이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어요

다시 새로 구한 곳은 한 백화점 지하에 있는 주차장 안내 아르바이트였다. 여기는 두 달 정도 다녔다. 내가 맡은 일은 백화점의 주요 고객, 즉 vip 차가 들어오면 인사하고 혹시 차 키를 맡겨두면 그걸 맡아두었다가 같이 일하는 어르신께 열쇠를 건네주고, 몇 시에 차가 들어왔는지 적어두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르신이 발레파킹 해서 주차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온몸을 이용해서 안내하고 웃으면서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는 일을 맡는 것에 비해, 나는 그냥 정자세로 인사하고 고객이 열쇠를 주면 생긋 웃으며 잘 맡아두겠다는 말만 하면 끝이라 엄청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일은 한 시간 일하고 30분인가 한 시간을 쉬는 소위 말하는 ‘꿀 알바’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나도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을지 모르겠다. 남들이 보기에 쉬워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먼저 한 시간 일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번갈아 쉬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하 주차장에서 일하면 늘 차가 많이 다녀서 공기가 좋지 않다. 게다가 계속 서서 일하는데 여자들은 높은 구두를 신고 일해야 한다. 승무원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일했던 지하 주차장 아르바이트도 퇴근하고 나면 다리가 퉁퉁 붓는다. 그래서 한 시간만 하고 휴게실에서 쉬는 것이다.


이게 보기에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여느 직장과 다르지 않다. 감정을 숨기고 일해야 해서 의외로 힘이 든다. 아무리 감정이 올라와도 계속 웃으면서 일해야 한다. 게다가 유니폼은 진짜 무겁다. 여름옷은 그나마 나은데 겨울옷이 진짜 무거웠다. 나야 그냥 정자세로 인사만 하면 그만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거운 유니폼을 입고 몸을 움직여가면서 일해야 하니 오죽 힘들겠나. 나와 같이 일했던 어르신들은 눈이 건조해서 매번 인공눈물을 넣으실 정도였다. 여기는 특히 안경을 쓰고 일하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렌즈를 끼고 일했는데, 그 탓에 나도 인공눈물을 매번 넣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백화점이 문을 열기 전에 한 번 모여서 조회하고 업무가 끝나고 나서 조회에도 참석해야 비로소 퇴근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일하기 전에 높은 구두와 스타킹을 준비하는 게 필수이다. 머리망도 무조건 있어야 한다. 머리가 짧다면 묶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웬만하면 다 묶어야 한다. 내가 머리가 짧은데 머리를 묶으라고 했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다. 


게다가 휴무도 자기 마음대로 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겹치지 않게 정해야 해서 연속으로 일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휴게실에서 쉰다고 하더라도 피곤한 건 여전했다. 일하는 시간은 쉬는 시간 빼면 5시간 반 정도 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야 안 받을 수 없다. 어르신 기분도 맞춰야 하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 기분도 맞추고 심지어 직급이 높은 사람 눈치도 봐야 한다. 


내가 일했을 때 직급 높은 사람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항상 혼나기 바빴다. 아니면 기분이 좋아서 일찍 끝내주면 다행인데 우리가 한 일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잔소리를 듣기만 해야 한다. 그게 계속되면 집에 가서 쉬어야 다음 날 출근할 수 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지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많이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못해서 나까지 같이 혼난 적은 많았다. 그래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래 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한창 열심히 일하고 쉬는 시간이 되어 교대하고 비상계단으로 내려갈 때 발을 헛디딘 것이다. 계단이 제법 높았는데 거기서 갑자기 넘어졌으니 너무 놀라서 의무실에 갔더니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보고하고 병원에 갔더니 안에 타박상을 입어서 일을 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원래라면 더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내 몸을 생각하니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대로 일을 하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그래서 퇴사하겠다고 말하고 그날 업무가 끝나기 전 어르신에게 다리에 타박상을 입어 더는 일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서 그만둔다고 말한 뒤 회사를 나왔다.


어르신이 나에게 나중에 연락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만둔 뒤 몇 달 뒤에 연락하니 나를 기억해 주시고 잘 지내는지 물어보셨다. 그래서 잘 지낸다고 다른 일 한다고 했더니 오히려 좋아하셨다. 그분과 같이 일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연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바뀌었고 전화번호가 없어져서 연락을 드리지 못하지만, 어르신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같이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전 15화 나에게 일이란 절실함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