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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한삶 Sep 10. 2022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로

[엄마이기 전의 나] 결핍이 주는 힘

처음 접한 이후로 매년,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주춤할 때마다 다시금 읽어보는 글귀이다.




웃는 건 바보스럽게 보일 위험이 있다.


눈물을 흘리는 건 감상적인 사람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건 남의 일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자신의 참모습을 들킬 위험이 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기획과 꿈을 발표하는 건 그것을 잃을 위험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산다는 건 죽을지도 모를 위험이 있다.


하지만 위험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는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달라질 수 없으며, 성장할 수 없다.


자신의 두려움에 갇힌 그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

그의 자유는 '갇힌 자유'이다.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발췌



인생을 사는 데는 저마다 각자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삶을 맡길 수도 있고, 무언가 목표하는 바를 열심히 쫓을 수도 있다. 누군가와 최대한 갈등을 피할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엔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 하나 무조건 옳거나 틀린 방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방법을 택하는 것뿐.​


나는 내 속을 들킬까 봐 표정을 숨기는 사람이었다. 눈물이 많다는 걸 알기에 그런 상황을 피했고, 새로운 상황에서 어색해하는 사람에게 굳이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어쩌다 마음을 다 주고 싶은 사람이 생겨도, 상대방보다 내가 더욱 사랑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늘 표현에 인색하기도 했다.






20대 초까지의 난 그렇게, 크게 가지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없는 채로 위험에 뛰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 정도로 욕심나는 것이 없었으니.

모든 게 쉬웠다. 풍족하게 넘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을 뿐더러, 나 또한 집에서 공부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신기하게도 과외 한 번 받지 않았지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올라가며 전교 등수는 점점 올랐다. 적당히 만족스럽게 한 번에 대학에 들어갔고, 나와 사귀었던 사람들은 내가 사랑했던 것보다 많은 사랑을 나에게 주었다.

무언가를 애타게 원하거나,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그 어떤 경쟁 상대보다 나의 무기력과 싸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때의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나 보다.





24살, 첫 해외여행으로 홀로 배낭 하나에 아무런 계획없이 러시아와 유럽 10여개 국을 70여 일간 떠돌게 되었다. 내가 위험에 뛰어드는 것을, 그리고 도전하면서 성취하는 것을 통해 살아가는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더 넓은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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