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더 Mar 01. 2023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나는 이 책과 함께 긴 수다를 떨었다


#독서기록 #책읽기 #어떤밤은식물들에기대어울었다 #이승희



수필집을 읽고 있으면 쉴만한 물가로 인도받는 기분이다. 느긋하게 따뜻한 차 한 잔 하는 마음처럼 천천히 곱씹게하는 문장들이, 너를 향한 내마음도 이렇다고 누군가에게 적어 보내주고 싶은 글들이 많아서 마음이 평안해 진다.


책을 읽다 막연하기만 했던 내 생각들이 간결하게 정리된 문장을 만났을 때 만큼 기쁜 게 없는데 한 문장이 끝이 아니라 읽어 내려 가는 내내, 내 마음의 소리가 책 군데군데에서 발견되었을 때, 마음이 정말 잘 맞는 친구와 긴 수다로 뿌듯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봄이 오는 길목에 좋은 책을 만났다.




찬 바람이 여전히 내 외투의 옷깃을 세우게 만들지만 볼살로 느껴지는 공기는 확실히 부드러워졌다. 이런 날씨 속에서 식물들에 관한 책을 읽고 있지나 기분이 좋아진다 






빗방울 또한 그러하다. 내가 널 이토록 사랑해서 내리는 거라고 비는 내린다. 내가 널 오로지 사랑해서 너에게로 떨어지는 거라고. 머뭇거림 가득한 세월을 두고 머뭇거림도 없이 오는 마음. 그런 마음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가 없다. 냉큼 안아주지 못하고 잘 다녀가시라고, 잘 다녀가시라고 가만히 바라본다. 

흐지부지 늙어가는 일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난 그런게 좋다. 뭔가를 꼭 같이하지 않아도 함께 한다는 것, 그런 시간을 함께 살아낸다는 것. 우리가 식물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테니.

모든 관계에는 사이가 있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즐겁고 또는 조금 외롭거나 그립다. 

그러니깐 뭐든 좋으려면 일정한 사이가 있어야 한다. 

분명 어떤 경계를 단절이 아닌 공간으로 만드는 거룩한 재주를 가졌다. 경계이면서 경계가 아닌 공간. 사람들은 그걸 이미 알았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담장 아래 식물을 심은 사람들은 아마도 세상 밖으로 한 발쯤 몸이 기울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울어진 부분은 분명 명랑할 것이다. 누군가를 마구마구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담장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여긴 누구의 마음속인가 싶어 오래 앉아서 풍경에 빠진다. 어떤 온기 하나가 먼지처럼 구석에서 자라는 게 보인다. 

바람에 조금씩 팔랑이는 이파리들이 밀어가는 여름 사이로 이제 더는 안간힘으로 견디지 않았으면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얼마나 행복한가. 

식물만 그런가. 사람도 그렇다. 어떤 열망과 기대가 매일의 드라마를 만든다면 그런 관계를 난 믿지 못한다. 때론 무표정하게 혹은 적대적이거나 상처 같은 것도 무심히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그 관계는 더욱 단단해진다고 믿는다. 자유롭게 풀어줄수 있다는 것. 그게 의외로 힘이 세다고 믿는 것인데,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 또한 나는 식물로 부터 배웠다. 

나의 개입으로 바뀌지 않을 것들이 있고, 나의 개입으로 그것과 나의 생이 더 쓸쓸해진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래도 그냥 둠은 버려둠이 아니라 거기 그냥 둠으로써 끌어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끌어안음은 굳이 스스로 열렬하다고 소리치치 않아도 깊고 따뜻하다. 그러니깐 너무 호들갑스럽지 말자는 말이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도 기댈 식물들이 필요한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