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이탈, 상상의 가치
누구나 빠른 길을 좋아합니다. 돌아가는 길, 막히는 길에서 흘리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표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에 끝내는" "하루만에 마스터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나 최단기 계획을 세웁니다.
빠르고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쓰이는 것이 루틴routine입니다. 운동도, 공부도 루틴 없이는 어렵습니다. 루틴을 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안심을 느낍니다. 어떻게 보면 루틴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예측 가능하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과는 생활의 안정이 지속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복은 에너지를 주는 동시에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아껴주는 훌륭한 수단입니다.
일관성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마지막 도피처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입니다. '만약에 ~한다면' '만일 ~이라면'이라는 질문은 당신을 낯선 곳에 내려놓습니다. 관계의 다른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연인과의 데이트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상상력 없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람이야말로 재미 없는 인물이라고 저는 느낍니다.
만약에 말이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우리는 삶으로부터 한 조각의 영감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이미 아는 일들만이 벌어지는 까닭입니다. 우리의 본능은 모르는 것, 예상할 수 없는 것을 멀리하게끔 설계됐습니다. 안전해지고 싶은 마음은 우리를 익숙한 쳇바퀴 속으로 도로 밀어넣습니다. 전에 먹었던 음식을 고르고, 가본 적 있는 여행지를 다시 찾게끔 말이죠.
제가 이야기하는 경로 이탈은 내가 모르는 일, 생각지 못했던 사건, 우연히 벌어진 상황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용감한 행동입니다.
루틴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만듭니다. 매일 밤 10시에 잠들기로 마음 먹은 사람은 적어도 9시 50분에는 누워야 마음이 편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마음과 나는 어떠해야 한다는 강박,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우리 내면을 간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건강한 루틴을 만들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reboot, option, blank라는 단어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의 제안은 당신의 루틴을 좀더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먼저 reboot는 저 자신의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매일 하는 어떤 일이 하기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침 운동을 건너뛰고 싶을 때 저는 생각합니다. 'OK. 하루 쉬어. 그래도 이틀은 거르지 말자구.' 하루 쉰다고 우주가 무너지지는 않으니, 그냥 내일부터 다시 하면 됩니다. reboot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규칙이자 요령입니다.
두 번째 낱말인 option은 제게 복수의 선택지를 줍니다. 규칙은 본질적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그래서 '대충 살자'가 더 쿨한 태도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저는 '이거 아니면 이걸 해야지'라는 옵션을 마련합니다.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체력에 따라 같은 시간에 다른 (그러나 이미 고려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반복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 blank는 세 가지 중에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blank란 말 글대로 단지 비워 두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에게는 가까운 사람과 어울릴 시간이 절실합니다. 만약 당신의 주말이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다면 잡담이나 가벼운 나들이, 가족의 요청들조차 여유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견되지 않은 방문을 방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허약함의 분명한 징조이고 예견되지 않은 것에서 도주하는 거예요. (…) 실존은 무엇보다도 사물들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대화하는 거예요. 인간은 이 대화를 결코 회피해서는 안 돼요. 당신은 원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도 괜찮아요."
당신의 강박이 소중한 사람들을 외롭게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글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대한 궤도를 그리기 위해 눈앞의 경로를 이탈할 것." 더 부드러운 루틴을 만들려는 저와 당신의 시도에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