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마음대로

오늘은 어린아이처럼

by 류하


이건 하루가 지난 이야기. 음, 그러니까 조금 진정된 후 정리하는 하루치 이야기.




우리 동네 영화관에는 안마의자가 있어. 15분에 삼천 원. 가격과 시간도 어제 처음 알게 된 거야. 그전에는 저렇게 놔두면 누가 이용은 하나, 그런 생각만 했거든. 밥도 먹고 싶지 않고, 카페에 앉아있는 것조차 지쳐 무작정 극장에 온 길이었어. 소파자리에 등을 기대고 앉았는데 눈에 딱, 안마의자가 들어온 거지. 어색함을 뿌리치고 안마의자에 앉았어. 신발을 벗고 맨발을 쭉 뻗은 채 의자 깊숙이 몸을 맞춰 넣었지. 결제가 완료되자마자 진동이 시작됐어. 안마볼의 움직임에 따라 몸은 흔들리며 오르락내리락했지. 이게 뭐라고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어. 종일 빠르게 박동하던 심장은 이제야 제 속도를 찾은 듯했지.


스레드라는 SNS가 있어. 세상의 다정함은 다 모아놓은 듯, 누구 하나 응원과 축하의 말을 부탁하면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따뜻한 말을 해주곤 해. 나는 거기서도 소심쟁이라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조용히 올려두곤 하지. 그런데 어제는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나 지금 이렇게 힘들다고, 나 좀 위로해 달라고 썼어. 세상엔 선함이 이렇게나 충만했구나. 괜찮다고 품어주는 낯선 이의 마음들에 눈물이 핑 돌았어. 분명히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더 나아지기 위한 멈춤이라고 토닥여 주는 말에 안심했어. 그리고 하루 저녁쯤은 내 안의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둬야겠다 결심했지.


미뤄뒀던 미용실 예약을 하고 머리를 자르러 갔어. 세심하게 머리카락을 모아 샴푸를 하고, 시원할 정도의 악력으로 두피를 마사지하고, 조심스레 머리를 헹궈주는 손길.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단골 미용사.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녹차 한 모금. 한층 가벼워진 머리. 그러고 나서 영화관으로 갔던 거야.


두 번의 작동이 끝나고, 가지고 다니는 책을 좀 읽다가 영화를 보러 상영관에 들어갔어. 맨 뒷줄 한가운데. 그리고 몇 줄 앞 역시 가운데 한 사람. 그렇게 두 사람이, 2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를 가만히 집중해서 봤어. 리즈 시절 키아누 리브스는 지금 봐도 너무 멋졌어. 보는 내내 그냥 웃음이 슬금슬금 새어 나올 만큼. 늦은 귀가 후 아들이 조잘대는 일상 이야기를 듣고, 씻고, 남편에게 긴 하루를 폭포처럼 쏟아냈어. 그리고 잠들었지.


사람은 절대 혼자 살 수 없을뿐더러, 혼자서 괜찮아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은 하루였어.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 덕분에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어린아이처럼 내 맘대로 할 수 있었던 저녁나절은 전적으로 남편 덕분이었어. 며칠간의 힘듦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던 하루를 꿋꿋하게 버텨낸 건 모르는 사람들의 다정한 한 마디 덕분이었고.


누구라도, 무너질 듯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무수한 다정들이 네 곁에 있다.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어린아이처럼 마음 가는 대로 너를 풀어줘도 된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돌아오면 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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