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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Feb 28. 2022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 전문(全文) 분석

조의제문(弔義帝文)과 무오사화(戊午士禍) (1)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초한전쟁 당시 항우에게 시해당한 초의제(義帝)를 기리는(弔) 글(文)이다.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경우, 조의-제문으로 발음하는 사람이 많은데 조-의제문으로 읽는 것이 맞다. 연산 4년(무오년,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원인이 됐다.


조의제문과 무오사화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한다. 우선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내에 실린 조의제문의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 나름 열심히 조사를 해서 설명을 덧붙인 전문 해석을 써보았다.(연산 4년 7월 17일 참조)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것들인데 쓸데없이 시간이 많이 들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작업을 하게 됐다. 가져다 쓰는 걸 다 내가 어떻게 할 순 없겠지만 출처는 표기해주길...

조의제문이 실린 조선왕조실록 연산 4년 7월 17일 기사


김종직(金宗直) - 조의제문(弔義帝文)


丁丑十月日(정축십월일), 余自密城道京山(여자밀성도경산), 宿踏溪驛(숙답계역),

정축(1457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밀성(密城)에서 경산(京山)으로 향하던 중 답계역(踏溪驛)에서 묵었는데,

夢有神披七章之服(몽유신피칠장지복), 頎然而來(기연이래),

꿈에 칠장복(七章服)을 입은 헌칠한 신(神)이 나타나서

칠장복: 곤복의 한 종류로 국가 주요 행사 때 군주가 입는 옷이다. 중국 황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十二章服), 왕은 구류면 구장복(九章服), 왕세자는 팔류면 칠장복(七章服)으로 구분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명(明) 보다 2등급이 낮은 친왕제가 시행됨에 따라 왕은 구장복, 왕세자는 칠장복을 입었다(구장복 - 군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예복).
어쨌거나 생전에 양위를 한 단종(노산군)과는 달리 초의제는 황제로 죽었다. 그런데 그런 초의제가 굳이 칠장복을 입었다고 묘사한 것에서 의제가 아닌 노산군에 대한 이야기임을 추측할 수 있다.

自言(자언): "楚懷王 孫心爲西楚霸王所弑(초회왕 손심위서초패왕소시),  沈之郴江(침지침강)。" 因忽不見(인홀불견)。

「나는 초(楚)회왕의 손자 심(心)(초의제 웅심)인데,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의 칭호)에게 살해되어 침강(郴江)에 잠겼다.」라고 말하곤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余覺之(여각지), 愕然曰(악연왈): "懷王 南楚之人也(회왕 남초지인야), 余則東夷之人也(여칙 동이지인야)。 地之相距(지지상거), 不啻萬有餘里(불시만유여리), 而世之先後(이세지선후), 亦千有餘載(역천유여재)。 來感于夢寐(래감우몽매), 玆何祥也(자하상야)?

내가 꿈에서 깨 놀라며 생각하기를 「회왕(懷王)은 남초(南楚) 사람이요, 나는 동이(東夷) 사람으로 지역의 거리가 만여 리가 될 뿐이 아니며, 세대의 선후 역시 천 년이 훨씬 넘는데, 이제 내 꿈속에 나타나 감응하니, 이 무슨 상서로운 일인가?

동이(東夷) : 동쪽의 오랑캐라는 뜻, 중국에서 소위 중원의 동쪽에 사는 이민족을 일컫는 일종의 멸칭이지만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조선을 일컫는 말로도 쓰였다. 예를 들면 중국과 조선을 함께 언급할 때 중국에 비준할 만한 조선의 입지(소중화사상 등)에 대한 내용에 쓰인다거나.

且考之史(차고지사), 無沈江之語(무침강지어), 豈羽使人密擊(기우사인밀격), 而投其屍于水歟(이투기시우수여)? 是未可知也(시미가지야)。" 遂爲文以弔之(수위문이조지)。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초의제가)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정녕 우(항우, 項羽)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강에 던진 것일까?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드디어 문(文)을 지어 조문한다.

김종직은 조문 내용의 상당수 묘사와 비유를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따왔다. 그런데 정작 <사기>에는 항우의 의제 시해에 대해서 강 위에서 쳐 죽여라 명했다고 분명히 적혀있다(擊殺之江中). 심지어 김종직이 위 문장에 적은 표현 그대로 격살(擊殺)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조의제문' 자체가 당시 유학에 밝은 대신들조차 한 번에 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기>의 표현이나 묘사를 그대로 따왔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김종직이 의제 시해 내용을 놓쳤거나 잊어버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참고로 김종직이 말하는, 강에 잠겼다는 말이 없는 임금은 당연하게도 단종이다. 실록에 단종은 주변 인물들이 죽임을 당하자 이를 듣고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고 기록돼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었고 그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설이 나돌았다.

惟天賦物則以予人兮(유천부물칙이여인혜),

하늘이 세상의 법칙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孰不知尊四大與五常(숙불지존사대여오상)?

어느 누가 사대(四大) 오상(五常) 높일 줄 모르리오.

사대: 하늘·땅·도·왕(天地群部)의 네 가지 근본
오상 :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다섯 가지 윤리(五常)

匪華豐而夷嗇(비화풍이이색), 曷古有而今亡(갈고유이금망)?

그것은 중화라서 풍부하고 동이라서 인색한 바 아니요, 또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故吾夷人(고오이인), 又後千載兮(우후천재혜), 恭弔楚之懷王(공조초지회왕)。

그러기에 나는 머나먼 타지 사람에다 시간도 천 년이나 지난 뒤지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한다.



昔祖龍之弄牙角兮(석조룡지롱아각혜), 四海之波(사해지파), 殷爲衁(은위황)。

옛날 조룡(祖龍)이 아각(牙角)을 농(弄)하니, 사해(四海)의 물결이 붉어 피가 되었다네.

아각을 농하다는 직역하자면 '이빨과 뿔을 멋대로 놀리다'라는 뜻이다. 조룡은 진시황을 가리키므로 위 문장은 즉,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며 폭정을 일삼아 세상이 피바다가 됐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鱣鮪鰍鯢(수전유추예), 曷自保兮(갈자보혜), 思網漏而營營(사망루이영영)。

큰 물고기든 작은 물고기든 간에 어찌 스스로 보전할 수 있었으랴. 그저 그물을 벗어나기에 급급했소.

전유(鱣鮪)는 철갑상어와 다랑어로 매우 큰 물고기를, 추애(鰌鯢)는 미꾸라지와 도롱뇽으로 작은 물고기를 일컫는다. 즉, 이들은 전국시대 진(秦)을 제외한 육국을 일컫는다.

時六國之遺祚兮(시륙국지유조혜), 沈淪播越(침륜파월), 僅媲夫編氓(근비부편맹)。
당시 육국(六國)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편맹(編氓)과 짝이 되었다오.

편맹(編氓) : 새로 편입한 백성이란 뜻이다. 편맹과 짝이 되었다는 말은 본래 신분을 숨기고 평민으로 살게 됐다는 뜻이다.

梁也南國之將種兮(량야남국지장종혜), 踵魚狐而起事(종어호이기사)。

량(항량(項梁), 항우의 숙부)은 남쪽 나라(초)의 장종(將種, 무장 집안의 자손)으로, 어호(魚狐, 진승과 오광)를 이어 일을 일으켰네.

항량은 초나라 최후의 명장 항연의 아들이다.
어호(魚狐)는 물고기와 여우인데 앞서 난을 일으킨 진승과 오광을 의미한다. 물고기와 여우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진승과 오광이 부하들을 포섭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은 비단에 붉은 글씨로 ‘진승왕(陳勝王)’이라 써서는 누가 잡아온 물고기 뱃속에 넣어 두어 후에 그 물고기를 삶아 먹다 뱃속에서 글귀가 나와 사람들이 놀랐다. 또, 오광에게 여우가 우는 듯한 소리로 “대초(大楚)가 일어나고 진승이 왕이 된다.”라고 외치게 해 두려워한 이들이 그들을 섬기게 됐다고 한다.(<사기> 中 세가 : 진섭세가)

求得王而從民望兮(구득왕이종민망혜), 存熊繹於不祀(존웅역어불사)。

백성이 소망하는 왕(초의제)을 찾았으니, 끊어졌던 웅역(熊繹)의 제사를 보존하였도다.

웅역(熊繹)은 초나라의 2대 국군이다. 웅역의 통치 당시, 그 가문이 주나라에 의해 공식적인 제후로 인정됐기에 그가 초의 시봉조(始封祖)가 됐다. 웅역의 제사를 보존했다는 건 그 후손 웅심을 왕으로 세워 초나라를 재건했다는 뜻이다.

握乾符而面陽兮(악건부이면양혜), 天下固無大於芈氏(천하고무대어간씨)。

건부(乾符)를 쥐고 남면(南面)하니, 천하엔 진실로 미씨(芈氏)보다 더 높은 이 없도다.

건부(乾符) : 천자의 표시로 갖는 부서(符瑞))
남면(南面) : 임금이 신하와 대면할 때 남쪽을 향해 앉았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제위에 오르다'는 뜻이다.
미씨(芈氏) : 초나라 왕족의 성(姓), 전국시대 즈음까지 중국에선 성(姓)과 씨(氏)가 별개의 개념으로 존재했다. 이중 현재 성(姓)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씨(氏)다(즉, 초의제 웅심(熊心)은 웅(熊)이 씨(氏)고 미(芈)가 성(姓)이다).

遣長者而入關兮(견장자이입관혜), 亦有足覩其仁義(역유족도기인의)。

장자(長者, 유방)를 보내어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했으니,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볼 수 있도다.

장자(長者)는 유방(劉邦)을 의미한다. 초의제는 먼저 관중에 입성한 사람에게 진나라의 왕위를 준다고 선포하였는데 인의로 명성을 쌓던 유방을 더 빠른 길로 보내고, 항우는 대장군 송의의 부장으로 삼아 더 시간이 소요되게 만들어 견제했다

羊狠狼貪(양한랑탐), 擅夷冠軍兮(천이관군혜), 胡不收而膏齊斧(호불수이고제부)?

양흔낭탐(羊狠狼貪, 항우)이 멋대로 관군(冠軍, 송의)을 죽였으니,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하지 않았는가?

양흔낭탐(羊狠狼貪) : 양처럼 제멋대로고 승냥이처럼 탐욕스럽다는 말로 항우를 가리킨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선 항우의 상관 송의는 항우의 출정 요청을 거부하며 "사납기가 호랑이 같고(猛如虎), 제멋대로이기가 양 같고(很如羊), 탐욕스럽기가 승냥이 같고(貪如狼), 부릴 수 없을 정도로 고집이 센 자는(彊不可使者) 모두 목을 벨 것이다(皆斬之)."고 하였는데 이는 항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양흔낭탐(羊狠狼貪)이란 표현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이 구절에선 세조를 의미하기도 한다.
관군(冠軍) : 경자관군(卿子冠軍), 송의(宋義)는 상장군에 임명됐고, 항우는 차장, 범증은 말장이었다. 이어 여러 별장들이 송의에게 속하게 됐고, 그를 경자관군이라 불렀다고 사마천의 <사기>에 언급된다. 이 구절에선 김종직 등을 뜻하기도 함.
제부(齊斧) : 질서를 잡는 도끼. 제부에 기름칠하지 못했다는 건 상관을 살해한 항우(더 나아가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를 군령으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嗚呼(오호)! 勢有大不然者兮(세유대불연자혜), 吾於王而益懼(오어왕이익구)。

아아, 형세가 전혀 그렇지 못해서, 오히려 왕이 더욱 두려워해 그런 것이구나.

爲醢腊於反噬兮(위해석어반서혜), 果天運之蹠盭(과천운지척려)。

끝내 배반당하여 해석(醢腊)이 되었으니,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도다.

해석(醢腊) : 젓과 포, 고로 해석이 됐다는 건 말 그대로 시체가 젓갈로 담겼다는 뜻이다...

郴之山磝以觸天兮(침지산오이촉천혜), 景晻愛以向晏(경엄애이향안)。

침강의 산은 우뚝하여 하늘까지 솟았거늘,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날은 저물었도다.

郴之水流以日夜兮(침지수류이일야혜), 波淫泆而不返(파음일이불반)。

침강의 물은 밤낮으로 흐르니, 물결은 넘실거려 돌아올 줄을 모르도다.

天長地久(천장지구), 恨其可旣兮(한기가기혜), 魂至今猶飄蕩(혼지금유표탕)。

천지가 장구한들 그 한이 어찌 다하리, 혼은 지금도 떠돌고 있도다.

天長地久(천장지구) :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치 않는다'는 뜻으로 이 구절에서는 '시간이 아무리 흘렀어도' 정도로 해석 가능

余之心貫于金石兮(여지심관우금석혜), 王忽臨乎夢想(왕홀림호몽상)。

내 마음이 금석(金石)을 꿰뚫었으니, 왕(초의제)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자신의 충성심이 쇠나 돌도 뚫을 만큼 굳세다고 대놓고 표현하고 있다... 일종의 자뻑이다.

循紫陽之老筆兮(순자양지로필혜), 思螴蜳以欽欽(사진윤이흠흠)。

자양(紫陽, 주자)의 노련한 필법을 본받고자 하니, 떨리는 마음을 공손히 가라앉힌다.

자양(紫陽) :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朱熹, 주자라고 높여부른다). 자양은 주자의 별호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필력이 주자에 버금갈 정도라는 자뻑...

擧雲罍以酹地兮(거운뢰이뢰지혜), 冀英靈之來歆(기영령지래흠)。

술잔을 들어 땅에 부으며 제사 지내니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향(歆饗)하소서.

흠향(歆饗) : 신명(神明)이 제물을 받아서 먹음

조선왕조실록에선 계속 침강(郴江)을 빈강으로 번역하는 등 자잘하고 큰 오류가 너무 많다. 이는 비단 해당 기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다 이러니 읽을 때 주의를 요한다.


다음 글에선 조의제문과 그로 인한 무오사화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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