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심사

도망치지 않는 용기

by 서수

중간 심사에는 턱걸이로 통과하였다. 심사가 한 번이면 얼마나 좋으랴. 이게 끝이 아니라 나에게는 최종 심사라는 진짜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 심사 이후 최종 심사는 그다음 달에 비공개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심사에서는 작은 회의실에 나와 지도교수님, 심사위원 두 분 교수님만 참석해서(학과 조교도 참석할 수 없다) 중간 심사 때 지적받은 사항들이 어떤 식으로 수정되었는지를 확인한다. 그래서 최종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연히 모든 학생들이 수정을 해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의 없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끝까지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종 심사에는 심사위원 교수님들께서 중간 심사에서 지적하신 사항들이 내 논문의 몇 페이지에서 어떻게 수정하였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견표와 수정된 논문 초고를 다시 심사 일주일 전에 학과 사무실에 제출한다. 중간 심사 때 논문 요약본을 20분가량 발표했다면 최종 심사에서는 이 조견표를 같은 시간 동안 발표한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글의 구성이었으므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듬었고, 논문의 서론에서 기존 연구들에 대한 분석이 없다는 점 역시 지적받았으므로 서론에 기존 연구 분석 및 나의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서술을 추가하였다. 뿐 아니라 본문의 1장, 2장, 3장에 대한 내용적 부분에서도 한 가지씩 지적을 받았으므로 하나씩 서술하다 보니 조견표는 10장으로 완성되었다. 이 조견표 역시 나는 영문으로도 준비해 갔다.


최종 심사 당일,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도교수님께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개인 사정으로 최종 심사에 불참하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 (알아서) 임하라는 내용. 그 사정은 불참하실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으므로 나는 덜컥 겁이 났지만 담담하게 (알아서) 잘 하겠다는 답변을 드렸다. 논문 심사에 지도교수님이 불참하신다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가 스스로 나를 디펜스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에 도착해서 심사 시간에 회의실에 들어가자 두 분의 교수님이 마주 보고 앉아 계셨고 나는 교수님들을 바라보는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비공개 심사이기 때문에 최종 심사의 분위기는 캐주얼했고 참석 인원이 세 명뿐이었으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하였다. 나는 준비해 간 조견표를 읽으면서 수정된 부분들을 짚어 드렸는데 중간 심사에서 나를 호되게 나무라신 심사위원 교수님께서는 내가 수정해온 부분이 역시 마음에 안 드셨던지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셨다. 그 내용은 현대 프랑스 미학에서는 합의가 되어 통용되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영어가 짧아 한국어와 영어를 병행하여 어떻게든 설명을 드리는 와중에 답답하셨던지 프랑스 미학 전공의 외국인 교수님께서 지도교수님 대신 디펜스를 해주셨다는 웃지 못할 스토리가 펼쳐졌다. 그렇게 버스 안에서는 최종 심사가 악천후로 접어들리라던 나의 예상과는 반대로 심사위원장 교수님이 적극적으로 나의 논문을 디펜스 해주신 덕분에(물론 교수님은 프랑스 미학 자체를 애정하시는 마음이셨겠으나) 최종 심사는 지도교수님 없이도 무사히 끝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는 또 논문은 나의 의지를 넘어서 있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2016년 6월 22일. 바야흐로 대학원에 입학한 지 6년 가까이 지난 그 초여름 날에, 나는 학과 조교로부터 논문 최종 심사에 통과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당시 나는 집 근처의 한 작은 카페에서 계속해서 논문을 수정하고 있었다. 나를 극한의 두려움과 공황으로까지 몰아붙였던 논문이라는 괴물을 드디어 물리친 것이다. 논문을 쓴 시간과 과정에 비해, 그리고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겪었던 두려움의 크기에 비해 논문 심사 자체는 오히려 단순하기까지 했다. 준비된 글을 읽고 그 잠깐의 쪽팔림을 참아내기만 하면 이미 지나가 있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 끝이 보이지 않다고 내가 느낄지라도 그것은 나의 느낌일 뿐 끝은 나에게 다가오는 중인 것이다. 끝이 있다고 믿고 내가 시작한 것에 대해 고통스러운 과정을 인내함으로써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는 꽃길도 있고 진흙탕도 있겠지만 내가 포기하고 뒷걸음질 치지 않는 이상, 이 땅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버텨 나가다 보면 어느새 다 지나가 있고 긴 긴 터널의 끝에 빛을 맞으며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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