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글쓰기에 대하여
최종 심사 이후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번아웃이 되어 있었다. 긴장이 다 풀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는 일들이 있었고, 이 일들을 다 처리해야만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내 몸과 정신을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최종 심사 이후에 진행되는 일정은 다음과 같다. 최종 심사에 합격한 다음에는 나의 글을 마저 다듬고 도서관에서 알려주는 논문 규격에 맞춰 쪽 여백과 글자 크기, 형식 등을 수정한 뒤 논문 인준지에 지도교수님과 심사위원 교수님들의 친필 서명을 받은 뒤 제본을 맡기면 된다. 인준지 원본이 붙은 양장본은 도서관에 제출하고 남은 논문은 지도교수님을 포함한 학과의 다른 교수님과 강사 선생님들과 선후배, 동학들에게 나눠주고 졸업식에 참석해서 학위기를 받으면 비로소 진정 끝이 나는 것이다.
나는 제본하기 전 내 논문을 출력한 뒤 스프링으로 제본하여 꼼꼼히 읽었고, 오탈자를 찾아 내 수정하였으며, 장장 180 페이지에 육박하는 글에 달린 각주와 참고문헌의 표기 형식들을 체크하였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병기된 단어들의 스펠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한글 본문과 다른 폰트를 적용하면서 자간을 조정하였다. 논문 주제상 참고 도판이 많았으므로 논문의 뒷부분에 붙는 참고 도판의 번호와 본문에 인용되는 도판의 번호가 같은지 확인하고, 인용되는 작가 이름과 작품 제목의 원어명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논문의 맵시를 가다듬는 가운데, 본문의 내용은 거의 수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인즉슨 그 자체로 완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내 논문이 완벽에 가까운 글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수준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최대치이자 최선의 글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보다 더 나은 글을, 더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논문에 매진해 있던 그 고독한 시간 동안, 나는 물리적으로 내 정수리가 뜨거워지기까지 하면서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경험을 한 톨도 남김없이 쥐어 짜내어 이 글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도 했고,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으므로.
그래서 나에게 과거로 되돌아가 논문을 좀 더 완벽하게 쓸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준다고 하여도 나는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인데, 이미 지나온 이 고통을 다시 겪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과거로 돌아갈지언정 이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에게 남은 것은 만족감, 뿌듯함, 대견함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부터 심사에 통과하기까지 이 한 편의 논문에만 매달린 약 5년이라는 시간 동안(중간에 직장을 다닐 때를 제외하고) 나는 쉼 없이 노동했기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없이 개인적이고 고독한 노동의 과정이었지만 그 시기를 지남으로써 결국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학위를 마쳤기에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기특한 것이다.
하여, 지금 논문 심사의 과정을 모두 마쳤으나 본인의 글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그 글은 이미 완성이 된 것만으로도 최선의 결과이며 그 자체로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책에서 인용한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 나는 소설 쓰는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아연해진다.(중략) 만일 그가 써낸 이야기가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소설 따위를 쓰는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 힘껏 일했다는 노동의 증거, 그것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레이먼드 카버의 <글쓰기에 대하여>를 인용한 부분을 재인용, 현대문학, 2016, p.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