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한계에서 마주치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by 서수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지도교수님의 학부 수업에서 조교를 할 때, 그 수업의 첫 과제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에 대한 경험을 이미지와 음악, 텍스트, 영상 등으로 구성해서 5분 분량의 PPT로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 수업은 교양 수업이었고 인기 강좌여서 매 학기 100여 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강을 했다. 하여, 중간 과제를 점검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 많은 학생들이 제출한 파일 하나하나를 다운로드하고 열어보고 꼼꼼하게 내용을 체크하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물론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에 이해하는 데에 큰 장애는 없었지만 워낙 개인적인 경험들에 대한 고백이다 보니 판단하기가 까다로운 과제였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그 수업을 세 학기 보조했으므로 거의 300여 명의 학생들의 아름다운 날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어떤 패턴이었다. 학생들 개개인에게는 유일하고도 독특한, 하나의 개별적인 경험이었을 터이나 그 경험들을 모아놓고 보니 몇 개의 패턴으로 카테고리를 지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익숙하게 경험해왔던 일들이 갑자기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들, 예를 들어 하굣길에 마주친 벚꽃이라든지 교실을 가득 메운 햇살이라든지 하는 것, 에 대한 것과 아예 일상을 벗어나 새롭고 낯선 곳에서 마주하게 된 경험들,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서 느끼는 새로움이나 유럽의 어느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마주했을 때 혹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통해 일상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짜릿함을 느꼈던 순간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기억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과 방과 후에 했던 놀이들이나 여고시절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까르르하고 웃었던 순간들에 대한 것. 마지막으로 타인에게서 얻어지는 아름다운 경험, 사랑하던 연인과의 매 순간, 부모님의 사랑, 친구와의 우애 등이 주는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나는 이런 경험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공통 요소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남'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나를 '나'로 살게 했던 어떤 정체성을 벗어난 것이며,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나를 '나'라고 구획 지어놓았던 그 한계선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이 어떤 날이냐고 물었을 때 학생들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한 다음에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이러이러한 날들이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를 벗어난다는 것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머물러 사는 그 편안한 삶에서, 그 관성의 삶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일상의 경험이 아닌, 어떤 특별한 경험인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학생들은 과제를 해야 하니 정해진 날짜까지 그 순간들을 억지로라도 생각해서 제출해야만 했지만, 나는 그것이 과제가 아니었으므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은 어떤 날이었는지 지금까지도 생각 중이다. 이미 익숙해진 것들의 낯선 경험, 일상을 벗어나 마주친 것들, 지금 현재의 나를 벗어난 과거의 나, 나의 바깥에 있는 '타인'에 의해 촉발되는 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갇혀있지 않고, 나의 주관과 나의 관점에만 갇혀있지 않고 나를 벗어난 것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여유와 겸손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아름다움이란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어떤 하나의 미적인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한계에서 타인과 접촉하는 그 경험 자체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야 나는 비로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들에 대해 나 자신에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아름다운 경험은 '글쓰기'의 경험이다. <논문일기>의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 글쓰기를 통해 매 순간 나를 벗어나는 내 글에, 그리고 나 바깥의 타인에게 가 닿는 내 글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여, 논문을 '쓰는' 전 과정은 나에게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물론 다른 요소들이 나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져다주기는 했어도 '공동체 미학'에 대해 쓸 때, 무용함과 붕괴가 목적인 예술작품에 대해 쓸 때, 미학적 감각에 대해 쓸 때 나는 자주, 한껏 벅차올랐다. 간간히 글의 논리적인 연결점을 찾을 때도 그러했다. 그렇지만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기보다는 좀 더 감성적인 사람에 가까웠으므로 글의 논리적인 형식이 주는 아름다움보다는 단어가 주는, 문장이 주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이 더 좋았고 미학적인 경험을 나의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지만, 나의 한계에 가 닿는다는 것은 충격과 고통을 동반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관성의 '내'가 찢겨야 하므로. 찢어발겨져야 하므로. 그로 인해, 아름다움이란 행복과 만족감과는 다른 것, 오히려 괴로움과 슬픔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저항을 호명하기도 하는데, 일상의 나로 편안히 살아가고자 하는 낯섦에 대한 저항과, 일상의 갑갑한 나를 벗어나고자 하는 나태에 대한 저항 양자에 있어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양가적인 감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용하든 거부하든 아름다운 경험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나에게 다가오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아름다운' 경험으로서 감각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 논문을 쓰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지. 바라기는, 자신이 찢어발겨지는 그 고통 속에서도 실낱 같은 아름다움의 한 요소를 꼭 발견할 수 있기를.


논문을 쓰는 괴로움과 슬픔의 길을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이 땅의 논문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지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냅니다.


지금까지 <논문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논문일기 번외 편으로 인문학 전공의 석사학위과정 일반에 대한 짧은 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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