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전공의 석사학위과정 일반에 관하여 下
대여섯 장 분량의 프로포절을 통과하는 단계까지 통과하면 앞으로 논문의 분량을 어느 정도로 잡을 것인지에 대한 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프로포절 단계에서 서론과 본론, 결론에 어떤 목차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 구상을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각 장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하면서 그 내용들이 어떤 텍스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지도 정리가 되어 있을 터이니 1장에서 참고할 문헌들, 2장에서 참고할 문헌들, 3장에서 참고할 문헌들에 대한 리스트도 나와 있을 것입니다. 각 장에서 핵심이 되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어떤 텍스트에서 어떤 부분들을 인용하고 발췌할지 어느 정도 결정을 해 놓은 상태에서 본격적인 논문 작성은 시작됩니다.
제가 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여러 선배님들과 선생님들에게 배운 중요한 점 하나는, 내가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단 세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 논법에서처럼, 대전제-소전제-결론으로 이어지는 세 문장. 그리고 논문은 이 세 문장에 살을 붙이기만 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요. 저의 경우, 제 논문의 뼈대를 이루는 단순한 세 문장을 다음과 같았습니다.
A(대전제) : 기존의 공동체 미술이 전제로 한 공동체 개념은 고정된 정체성의 공유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B(소전제) : 그러나 공동체는 고정된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나와 타자가 공동으로 존재하는 상태이다.
C(결 론) : 새로운 공동체 미술은 '공동체 없는 공동체'를 상상하게 하는 미술 실천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각각 대전제가 본문의 1장, 소전제가 2장, 결론이 3장의 주요 내용이 되었고, 1장에서는 기존 공동체 미술의 문제점을 분석할 수 있도록 국내외 공동체 미술 관련 텍스트들을 바탕으로 한 분석이, 2장에서는 새로운 공동체 개념으로 제시하고자 장-뤽 낭시의 이론에 대한 텍스트 분석이, 3장에서는 낭시의 이론이 구체적인 예술과 이어지는 지점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공동체 미술의 예시에 대한 분석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본격적인 논문을 작성하면서 습관처럼 해야 될 일들 중 하나는, 각각의 장을 서술하면서 인용하고 발췌하는 참고문헌들에 대해 각주를 그때마다 정리하고 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0-100페이지에 육박하는 논문에는 200개가 넘는 각주가 붙을 터인데, 이 각주를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논문을 작성하는 시간만큼 각주를 작성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하여, 각주는 미루지 말고 간단하게라도 표시하고 넘어가는 습관이 필요하고, 참고문헌 인용에 대한 각주가 아니라 본문에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꼭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저자의 생각이나 분석을 각주에 달 경우에도, 그리고 나중에 손을 볼 예정이라고 해도 어떤 내용을 각주에 작성할 것인지는 대략 정리하고 넘어가야 후일에 편합니다.
프로포절 단계에서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 놨던 목차는 논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나중까지도 수정을 거듭하게 되는 항목이기도 합니다. 저는 논문 심사 직전까지도 목차를 계속해서 수정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논문일기>에도 언급했었듯이, 교수님께서 제 목차를 보시고 스토리텔링이 없다고 지적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본문은 부연 설명을 위한 문장들이 많고 여러 접속사와 인용 문구들이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데, 목차는 핵심을 압축한 구절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단어와 문구를 설정하지 않는 이상, 저자의 본 의도를 나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보통 1장, 1장의 1절, 1장의 1절의 1항 등으로 구성되는 목차에서 스토리텔링까지 접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1장의 1절의 1항이 1장의 2절로 이어지고, 1장의 2절이 3절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 행위 같기도 합니다. 정말 잘 쓴 논문들을 보면 목차가 찰떡같이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잘 쓴 논문들을 참조해서 목차를 정돈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논문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내 논문에 대해 여러 지적을 받을 수 있고, 그 지적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분명 중요하지만 결국 내 글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므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말고 굳건하게 밀고 나가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쨌든 잘되도 내 덕, 망해도 내 탓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공을 돌리고, 남을 탓하지 않도록 내 글을 주체적으로, 우직하게 써 나가는 엉덩이의 힘이 정말 필요한 시기입니다.
논문을 열심히 써서 완성시킨다한들, 논문 심사 자격 미달이라면 심사에 응시조차 해볼 수 없는 낭패가 발생하기 때문에 논문을 작성하면서 틈틈이 내가 논문 심사 자격이 되는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논문일기>에도 언급했었던 것처럼, 제가 속한 학교와 학과의 규정에는 논문 심사를 받기 위해서 24학점 이상의 학점 수료, 적정 점수 이상의 영어 성적, 제2외국어 성적, 그리고 학과에서 시행하는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기준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논문 심사가 닥친 상황에서 준비하기보다 학기 중에 만들어 놓거나 수료하자마자 끝내버리는 것이 가장 속편할 것입니다.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하면 주위를 분산시키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러한 제도적인 장치뿐 아니라 논문 심사에는 지도교수님의 서명이 담긴 논문 심사원이 필요합니다. 이 논문 심사원은 본 학생이 학력, 인품, 태도 등의 면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여도 좋다는 지도교수님의 승인입니다. 물론 이 승인은 심사 단계 훨씬 이전부터 이루어져 오기 때문에 이 문서는 형식적인 문서일 뿐이지만 어쨌든 지도교수님 입장에서도 이 학생을 지도한 책임자로서 심사장에 함께 참석하시는 것이므로 형편없는 논문을 쓴 학생에게 심사원을 작성해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논문 심사료를 지불하고 그 영수증을 학과 사무실에 제출하거나 각 소속 학과의 규정대로 심사 일주일 전까지 논문 요약문과 초고를 제본하여 심사위원 수대로 제출한다는 등 여러 준비할 서류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들은 논문 초고가 완성되고 난 뒤, 심사 학기 초부터 정신없이 진행되므로 학과에서 정해준 기한들을 넘기지 않도록 달력에 잘 표시해놓고 놓치지 않도록 꼼꼼하게 챙기도록 합니다.
박사학위논문이 저자가 학계에 연구자로서 본격적인 발을 내딛는 첫 관문이라면, 석사학위논문은 학술적인 연구자라기보다는 연구의 방법과 기초를 아직까지는 배우는 학생의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래서 박사학위를 따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학위를 딸 필요는 없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석사학위과정만으로도 그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여, 석사학위논문에서는 연구 내용의 참신성과 깊이보다는 연구의 '정석'을 밟았는지, 그 기본이 되어 있는지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논문 심사에서도 심사위원들은 이 논문이 정말 잘 쓰였는지 혹은 완벽한지, 뭔가 신박한 것이 있는지를 보지 않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 나의 주장이 그럴듯한 지,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의들이 말 그대로 '말이 되는지', 논리가 건전하고 완전하고 무모순적인가 등을 보는 것입니다.
논문의 내용에서 내가 차용하는 이론가의 이론도 물론 오류 없이 사용해야겠지만, 그 이론을 이해하고 설명하기에 급급하여 논문의 주체인 '나'의 논리를 뒷전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심사에서는 보통 논문의 내용보다는 뼈대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에서 중심이 되는 나의 문제의식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나의 논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심사에서도 딱히 어려울 점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논문의 상당 부분에서 낭시의 이론을 차용했다고 해서 심사위원 교수님이 낭시의 이론의 이러이러한 부분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하지 않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낭시의 이론을 공동체 미술에 적용했을 때 제가 들었던 예시인 토마스 허쉬혼의 예술작품이 과연 제가 말하고자 한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있는가 등과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저는 낭시의 이론을 차용하여 토마스 허쉬혼의 작품을 분석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확고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야 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석사학위논문 심사는 연구자 대 연구자의 구도가 아니라, (아직은 한참 미숙한) 학생 대 (숙련된) 연구자의 구도이기 때문에 나의 논리를 저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태도로,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들을 설득시키리라는 식의 태도로 심사에 임하면 절대 안 됩니다. 오로지 겸비하고 겸허한 태도로, 심사위원 교수님들께서 지적하시는 부분을 수용하여 논문을 수정하겠다는 태도가 맞습니다. 사실 심사에 대해서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논문 심사에서 겸비한 자세를 유지하라.
논문 심사가 끝난 뒤, 학과로부터 통과되었다는 메일이 오면 아마 석사학위논문의 제본 규격과 도서관 제출 방법 등에 대해 안내를 받으실 것입니다. 그 기한까지는 계속해서 논문을 수정하고 또 수정합니다. 아무래도 내 이름으로 발간되는 논문이므로 제목이나 목차, 오탈자 등등을 더 세심하게 보아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논문의 가장 앞 장에 붙을 논문 인준지에 심사위원 교수님과 지도교수님의 친필 서명을 받습니다. 이 원본이 붙은 양장본은 학교 도서관에 제출하는 것이고, 인준지의 복사본이 붙은 버전이나 서명을 넣지 않은 버전의 양장본은 이제 교수님들을 비롯한 학과의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한 분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제대로 하고 졸업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표시를 한다고 했지만 급히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하고 그 지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제가 생각한 수준만큼 감사를 표시하지 못했었고, 그 점은 지금까지 제 마음에 남아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한 분 한 분께 직접 만나서 논문을 드리고 그동안 감사했었다는 인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는 대망의 졸업식 때, 그토록 입고 싶었던 석사 가운을 입고 졸업식에 참석하여 학위기를 받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아참, 어쩌면 주변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하지 않겠냐는 소리들을 할지 모릅니다. 저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힘들어하던 제 동기들도, 선배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것을 보고 그 말에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확고합니다만,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인문학 전공의 석사학위과정 일반에 관해 아주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정리를 해 본 이유는 인문학 전공의 대학원 과정에 대한 간략한 가이드라인이라도 있으면 실제로 대학원에 들어와서 논문을 준비하면서 겪게 될 충격과 공포를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은 무엇보다 저에게 이런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면 가장 좋았었을 것 같아서입니다. 저는 대학원에 마음의 준비 없이 들어와서 수없이 갈팡질팡했고, 논문이 주는 공포 앞에서 무장해제된 상태로 서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습니다. 인문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그리고 석사학위논문을 준비하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