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쪽팔림

모든 것은 끝이 있다

by 서수

다행인 것은, 즐거운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어쨌건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나는 작년 봄에 제3자의 두려움을 가지고 참석했던 논문 심사장에 이제는 피심사인의 자격으로서 홀로 앉아 있다. 이 날 역시 변함없이 화창하고 따뜻한 5월의 봄날이었다. 이 심사를 위해 나는 3월에 논문자격시험을 치르고, 논문 심사원을 제출하고, 논문 초고를 완성했으며, 이 초고를 4월에 지도교수님과 같은 전공의 다른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예비심사를 치렀고, 논문 심사 일주일 전까지 학과 사무실에 초고와 국/영문 요약본을 제출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심사장에 들어가 타원형의 테이블 가장 중앙에 착석하였고, 심사위원 교수님 두 분과 지도교수님, 그리고 발표시간과 질의응답 시간을 체크해 줄 학과 조교 1명이 내 양 옆에 착석하였다. 같은 전공의 선후배들 뿐 아니라 다른 전공일지라도 내 논문 주제와 비슷한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이거나 심사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참석한 다른 전공의 학생들도 숨 죽여 착석하였다. 조교의 진행으로 심사위원장 교수님이 시작을 선언하셨고, 나는 준비한 논문 요약 발표문을 20분가량 읽어 내려갔다. 수없이 연습하고 소리 내어 읽었던 나의 글이 밝고도 조용한, 가볍고도 묵직한 공기 중으로 흩어져 나갔다. 내 목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고,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 사라졌다. 외로웠다.


교수님들께 제출한 초고는 사실 형식적으로 매우 불완전했다. 일주일 전에 제출해야 하는 거라 그전부터 준비는 해왔지만 논문의 마지막 3장을 텍스트를 읽으면서 작성하느라 시간을 많이 소모해버려서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형식적인 측면, 즉 문단의 나눔이라든지, 본문에 인용문을 길게 따올 때 글자체와 크기, 상하좌우 여백 설정을 다르게 해야 된다든지 등을 놓쳤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수정만 하면 될 일이었는데도 그 당시에는 제출 당일 새벽 동틀 때까지 초고와 요약문을 작성한 뒤 바로 씻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온 뒤 학교에서 출력하고 제본하고 제출할 수밖에 없어서 마음에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논문을 포함해서 모든 '글'은 내용의 완결성은 당연하고, 형식적으로도 완결되어야만 '글'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일진대, 그런 측면에서 내 글은 아직 글이 아니었고 모양이 갖추어지지 않은 하나의 찰흙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이 기본적이고도 석사 수준에서는 나올 수 없는 형식의 미숙함이 내 논문 심사에 있어 첫 번째 지적사항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적이라기보다는 매우 호되고 따끔한 호통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내 발표가 끝나자마자 심사위원 교수님은 기다리셨다는 듯 땀까지 뻘뻘 흘리시면서 기나긴 호통을 이어가셨다. 공개 심사였기에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고 그 앞에서 나는 소위 말해 개망신을 당했다. 이때 이미 나의 지도교수님은 의자 등받이에 깊게 눌러앉으신 채 눈을 감고 계셨다. 포기하셨다는 증거이다. 이번 심사는 물 건너갔다는 무언의 제스처. 물론 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뒤이어 외국인 심사위원 교수님의 영어로 된 질문에는 앞서 호통에 당황한 나머지 영어 답변을 무수히 연습했음에도 어눌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교수님은 프랑스 미학 전공이시므로 나의 비루한 영어에도 그 철학적 개념들을 찰떡같이 알아들으셨고, 성격 좋기로 유명한 Canadian 답게 시종일관 나의 논문이 매우 흥미롭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 전공에 있어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들. 이 이론을 이 예술작품에 적용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이 작가가 정말 그런 의도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지에 대한 의심들. 이 경우에 섣불리 심사위원 교수님을 가르치는 톤으로 말을 꺼낸다거나, 그 자리에서 설득시키려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 석사논문 심사의 불문율이다. 석사학위논문 심사에서는 모든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에 내가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심사 시간 동안 나의 동학들이 녹음해 준 파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열어 볼 용기는 아마 죽을 때까지 나지 않을 것이다. 심사를 마치고 지도교수님과 나를 포함한 제자들은 국수를 먹으러 갔고, 나는 국수를 먹으며 이번 심사는 말아먹었다는 자폭 드립으로 그날 심사를 마무리지었다. 당시 나의 심경을 노트에 기록해 놓았는데, 나는 이렇게 써 놓았더랬다.

"오늘 나는 무사 만루에 볼 세 개를 던지고 있는 노경은(전 두산 베어스 투수, 원래 선발투수였으나 한 시즌에서 12승을 거두고 그다음 시즌에서 와르르 무너져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으나 그마저도 극복하지 못한 비운의 투수)의 심경이다. 스트레스받는다. 과연 나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 노경은보다는 김성근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 열두 개로 무사 만루를 만든 송창식(한화 이글스 투수, 긴 말은 생략한다)이 더 낫겠다."


나는 작년에 졸업한 내 동기들의 중간 심사 때처럼 조용하고 순탄한 분위기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케이스는 아니었고, 게다가 그날따라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참관하러 들어왔는 데다가 첫 심사의견부터 강한 어조의 호통이었으니 다른 학생들에 비해 터프한 심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다 내 불찰이었긴 하지만). 그렇지만 내가 지적받은 형식이야 수정하면 되는 것이고, 내용에 있어 크게 무리가 되거나 치명적으로 비논리적인 부분은 없었기에 심사에서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심사위원 교수님 세 분 중에 두 분만 설득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끝이 났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태는 음악과 같을 것이다. 결국은 흘러가게 마련인. 오늘 내 노트는 약간 불협이었지만 이 또한 아름다운 완성을 위한 소곡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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