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로 가는 길
내가 대전에서 멈춰있는 시간 속에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시간은 여전히 나를 기만하지 않은 채 흐르고 흘러서 논문의 완성이야 당연한 것이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심사를 위한 여러 과정들을 거쳐야 하는 때가 이르고야 만 것이다.
첫 번째 관문은 논문자격시험에 응하는 것이었다. 우리 학과의 논문자격시험(이하 논자시)은 총 세 개의 시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 시험, 제2외국어 시험, 그리고 전공시험이다. 각각 정해진 커트라인 점수 이상을 받아야 논문 심사를 신청할 수가 있다. 졸업한답시고 논문에만 파묻혀 있다가 이런 형식적인(그렇지만 필수적인) 절차에 하자가 생겨 정작 가장 중요한 심사를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런 부분도 늘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해놨다가 잊지 않고 잘 챙겨야 한다. 위의 세 가지 시험은 대학원 입학할 때도 치르는 것인데, 그중 영어 시험 성적과 제2외국어 시험 성적은 소멸되지 않고 살아 있어서, 대학원 입학 시 커트라인을 넉넉하게 넘겼다면 굳이 논문 심사를 위해 또다시 준비할 필요는 없다. 영어성적의 경우 중간에 대학원 입학 당시의 기준보다 상향 조정된 관계로 만약 변경된 점수보다 미달이라면 다시 준비해서 영어점수를 만들어 놓은 뒤에야 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 그래서 방학 때는 연구실 책상 위에 각자 자기 전공의 책이 아닌, 조금 낯선 영어시험 문제집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다행히 두 가지 시험 모두 입학 당시 성적이 괜찮았으므로 다시 준비해야 하는 수고는 던 셈이다.
하지만 전공시험은 이와 관계없이 새롭게 치러야 한다. 우리 학과에 있는 세부 전공(독일 미학, 프랑스 미학, 영미 미학, 동양 미학, 미술이론) 별로 문제가 나오는데, 내 전공이 아닌 다른 전공 1개에서 각 1문제씩, 그리고 내가 속한 전공에서 3문제를 선택해서 총 4개의 서술형 문제를 1시간 동안 풀고 나와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각 전공시험의 채점은 교수님들이(혹은 강사 선생님들) 하시므로 이 또한 공들여 작성해야 사후에 얼굴 팔릴 일이 없다. 한편 논자시의 응시 시기는 교수님들마다 상이하다. 논자시는 보통 매 학기 초에 시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신청해도 되는데, 우리 교수님은 그동안 나의 프로포절을 검토하시면서 논문 심사를 받아도 되겠다고 결정을 하신 뒤에야 논자시 응시를 허락하시기 때문에 논문 심사 학기가 포함된 해당 학기 초에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교수님과 논자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완료되면 학과 사무실이나 선배들로부터 논자시 족보를 받아서 공부를 한다. 보통 독일 미학이나 동양 미학을 선택하는데 외우기가 쉽기 때문이다. 독일 미학에서 가장 많이 출제되는 칸트나 헤겔의 경우, 미학과 학부 시절부터 주구장창 배워왔던 거라 익숙할 터이고, 동양 미학의 경우 '석도의 일획론을 논하라'는 식으로 외우기 편한 문제가 나올 터였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하는 암기용 공부라 처음에는 잘 외워지지 않는다. 암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이다. 손으로 직접 쓰면서 암기했는지, 입으로 소리를 내며 읽으면서 암기를 했는지, 아니면 그냥 눈으로 보고 읽으면서 머리로 암기를 했는지. 나는 독일 미학의 문제를 선택하려고 이미 결정을 했지만 독일 미학에서 칸트가 나올지, 헤겔이 나올지, 바움가르텐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몽땅 다 외워놓는 것이 상책이다.
학과에서 정해준 일정에 맞춰 논자시를 보고 나면 일-이주일 정도 뒤에 학교 포털 사이트의 내 정보에서 시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공부를 하고 답안을 잘 썼으면 웬만해서는 합격이다. 논자시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논자시를 통과하면 논문 심사원을 작성하여 교수님께 가져가 서명을 받은 뒤 학과 사무실에 제출한다. 이 심사원은 교수님께서 학과의 논문 심사에 나를 피심사자로 올리겠다는 공식적인 문서이다. 심사원을 제출하면서 논문 심사료도 이체하여 이체증을 함께 제출한다. 심사료는 논문 심사에서 떨어지면 환불이 된다고 하니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절대 이 심사료가 내 계좌에 다시 반환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다시금 다짐한다.
3월에 위의 과정들을 거치고 나면 4월에는 각자 전공에서 실시하는 예비심사를 거쳐야 한다. 물론 이 예비심사는 어떤 필수적인 절차는 아니지만 본 심사를 대비하기 위한 최종 리허설이 될 것이므로 모든 전공에서 실시하고 있다. 지도교수님과 강사 선생님들, 박사과정 선배들, 석사과정 선후배들이 자리를 채워 둘러앉으면 많으면 20명, 적으면 10명 정도가 된다. 그 앞에서 나는 20분 발표에 맞춘 적절한 분량의 발표문을 읽는다. 발표문을 다 읽고 나면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된다. 발표문이야 내가 미리 작성한 것이고 수없이 읽어본 것이지만, 질의응답은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나올 수 있는 시간이기에 가장 떨리는 시간이다. 여기에서는 침착하게 질문의 요지를 잘 파악하고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조리 있는 대답을 해야 한다.(이 조리 있는 대답은 내가 평소에도 잘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모든 질문은 내 논문 전체의 세세한 내용 하나하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발표문에 요약되어 있는 주요 내용에 대한 질문이나 내 논문의 전개에 대한 논리적 연결성이나 의의 등에 대한 질문이 될 것이므로 대답 또한 방대하게 준비해서는 안 되고 발표문을 토대로 간략하지만 명확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1은 무엇이냐", "1+1=2라고 한 수학자의 이론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1+1=2가 된다고 주장하는 너의 이유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므로 언제나 대답할 말을 나의 언어로 준비해 놓아야 한다.
예비심사가 끝나면 지도교수님과 예비심사에서도 나타난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받고 이를 통해 중간심사 때 발표할 최종 발표문과 초고를 수정한다. 그러다 보면 학과에서 중간심사 일정에 대해 이메일을 보낸다. 이 일정에 따라 중간심사일 일주일 전까지 학과에 초고와 발표문을 각각 세 부씩 제출해야 한다. 나는 심사위원에 외국인 교수님이 계시므로 영어로 된 발표문을 추가로 준비해야 한다.
모든 일정들을 한두 달 앞서서 준비한다고 준비했는데도 나는 초고 제출 당일까지도 밤을 새워 새벽까지 준비했고, 제본도 당일에 학교에서 허겁지겁 한 뒤에 제출을 완료했다. 이는 마치 정신적으로는 부지런하게 준비해서 목표지점까지 빠릿빠릿하게 가고 싶은데 몸은 천근만근 하여 내 육체가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턱 밑까지 차오르는 깊이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헤엄을 치는데 내 눈은 육지를 바라보고 있지만 내 몸은 여전히 그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는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열심히, 빨리 하자고 외칠수록 내 몸은 이에 저항하듯 점점 더 느려지고 게을러졌다. 어쩌면 내가 빨리할수록 그만큼 심사일이 앞당겨져 오는 것처럼 느꼈기에 다가오는 그 날짜를 회피하고 싶어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맞다, 나는 뼛속까지 회피형 인간이었는데 논문을 쓴다고 내 안의 회피적인 자아를 무시하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떼를 쓰며 우는 아이를 달래듯 내 자아에게 조금만 있으면 끝나니까 지금은 참으라고,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라고 거짓으로 위로했다. 그때 철저하게 외면받은 나의 자아는 지금 회복되어 있을까. 잘 모르겠다.
게임의 퀘스트마냥 이 과정들을 단계별로 완료하고 나면 그제야 논문 심사의 8부 능선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본 심사. 본 심사는 공개로 진행되는 중간심사와 비공개로 진행되는 최종 심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간심사를 통과해야 최종 심사로 넘어갈 수 있다. 중간심사를 통과하더라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2016년 1월부터 최종 심사가 끝나는 6월까지 장장 6개월간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채찍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