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의 일상에서 낭만주의를 포기하지 않길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사랑일까"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다시 알랭 드 보통의 연애 소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소설이 아니라 일기나 에세이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리묘사가 세밀하다. 정말이지 이건 본인의 이야기인 것이 확실하다는 의심을 몇 번이나 갖게 만든다. 그리고 매우 격하게 공감되는 감정 표현과 심리 묘사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재치 있고, 풍부한 묘사와 표현 덕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낭만적 연애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는 사랑일까"에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일상에서 우연인 듯 필연처럼 만나서 낭만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남녀의 이야기는 언제든 재미있고, 흥미롭다. 하지만 1부 낭만주의에서 읽게 된 낭만은 조금은 익숙하고, 빛바랜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다. 우연히 다시 듣게 된 옛날 노래는 요즘 새롭게 알게 된 노래보다 외형적으로는 단조로울지 몰라도, 감정적으로는 몇 배나 복잡하고, 다양한 느낌과 생각을 전달해 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옛날 노래는 금방 플레이리스트를 떠나게 되는데, 자주 많이 듣는 것보다 가끔 들을 때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딱 그 정도 느낌일 뿐이었다. 조금은 아쉽게도.
솔직히 조금 지루했다. 그 후의 일상이 지루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길 바라지만, 어쨌든 라비와 커스틴의 결혼 이후의 일상 이야기는 조금 식상했다. 번뜩이는 재치와 표현들로 흥미롭게 남녀 사이의 감정을 풀어냈던 지난 이야기들과 비교할 때 더욱 실망스러웠다. 물론 재미있게 다양한 각도에서 결혼 후의 일상을 이야기해주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잘 만들고, 부족함이 없는데, 끌리지 않아서 막막하고 당황스러운 대충 그런 느낌이다.
감정수업이라는 책에서 철학자 강신주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륜이라고 했다. 가족애의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 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며, 이것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기존의 관계를 부정하는 불륜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 가서 이 이야기를 꺼내면, 불륜이라는 단어 자체의 파급력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논란이 된다. 하지만 주변의 부부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나 미디어 속의 묘사를 보더라도 부부 사이의 사랑은 이미 동지애나 가족애에 가깝다. 스킨십이나 애정표현도 매우 박하며, 가족끼리 그러는 것 아니라던가, 의리라던가, 애 때문에 산다는 둥의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과 표현들이 가득하다.
정말 사랑은 부부가 아닌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부부의 사랑은 낭만주의와는 다른 것인가? 확실한 것은 연애는 여행이나 일탈과 같다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는 과정이며, 그 순간의 짜릿함은 모험과 탐험 이상의 경험이며, 경외와 감탄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껏 들뜬 시간을 보내게 된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혼 이후의 일상은 그런 모험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내용일 수도 있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내용일 수도 있는 그 이야기들이 소설 뒷부분에 가득 채워진다. 일상의 무료함과 반복되는 평온에서 갑자기 찾아온 자극과 갈망 그것이 갖는 의미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가 차곡차곡 채워져 있다. 하지만 마지막은 솔직히 좀 실망했다. 조금은 교훈적이고 따분한 결말이었다. 알랭 드 보통이 그 후의 일상에서 낭만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낭만적 연애에 못지않은 순간들로 일상을 채워가는 내용으로 후속작을 준비해 주길 기대해 본다. 제목은 The Course of Love: par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