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 뭐가 있을지 알면서도
이제 비구름은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다시 어두워졌다. 하늘이 번쩍 갈라지고 거센 비바람이 들이쳤다. 그 통에 어떤 단단한 것이 나를 때렸던 것 같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마저 멀어지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눈과 귀를 잃은 것인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쉬어본 적이 없으니 이런 생각은 덧없을 수 있다. 나는 어쩌다가 잘못 생긴 헛것이 맞을 거다. 그럼에도 하늘색 지붕 아래 있었던 옛날이야기처럼 나도 한때는 ‘있었던’ 나이길 바란다. 엄마 아빠와 막둥이가 나누는 이야기 속에 내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안으로 더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깔때기에 부은 반죽처럼 홀쭉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팠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동안 뱃속에 담았던 장면들이 나를 날카롭게 스쳐 가는 게 느껴졌다. 살이 찢어지고 멍이 들어 아프다. 나는 몸이 없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손도 없으면서 몸을 만져 보려고 버둥거렸다. 그러자 나는 퍼석하며 부서졌다. 작은 알갱이들이 되었다. 잡아당겨 부둥켜안고 싶지만 내 몸들은 가늠하기 어려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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