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취약성과 정치적 안일함이 부른 전산 재앙
주제: 국가 데이터센터 화재가 드러낸 ‘디지털 정부’의 민낯
지난 9월 29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정부 전산망 647개가 동시에 마비되며 국민 생활 전반이 흔들린 이 사태는, ‘예고된 재앙’이자 ‘시스템적 부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결과였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디지털 정부’의 화려한 구호 이면에 가려진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정부는 2017년 ‘정부24’를 개통하며 디지털 행정을 앞세웠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시스템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핵심은 구조적 취약성과 이중화 부재, 그리고 정치적·재정적 안일함이다.
국정자원 대전센터는 2005년 옛 KT 전화국 건물을 개조해 세워졌다. 서버와 배터리가 60cm 간격으로 붙어 있는 구조는 화재 위험을 키웠다. 이미 2022년 카카오톡 먹통 사태 후 민간 IDC에는 배터리·서버 분리를 의무화했지만, 국가 핵심 시스템은 늑장 대응에 머물렀다. 그 결과, 불이 난 공간뿐 아니라 전체 서버가 셧다운되며 전국민이 행정 서비스 마비를 체감해야 했다.
문제는 단순한 행정 불편이 아니다. 주민등록, 우체국 금융, 보훈시스템 등은 국민의 생계와 안전과 직결된다. 일부 데이터는 하루·한 달 단위로만 백업돼 이번 화재로 ‘증발’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디지털 시대에 정보의 소멸은 단순한 기록 손실이 아니라, 국민 권리와 국가 신뢰의 붕괴를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는 행안부가 요청한 대전센터-공주센터 이중화 예산 75억 원 중 61%를 삭감했다. 세수 결손을 이유로 했지만, 국가 기반망의 안전을 뒷전으로 미룬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간도 당연히 하는 이중화를 정부가 미뤘다”며 책임을 인정하고 전 부처 점검을 지시했다. 그러나 사후 점검만으로는 이미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땜질식 대응이 아니라 근본적 재설계다. △데이터센터 전면 재배치 △실시간 이중화 시스템 구축 △주기적 모의훈련 △독립적 감시체계 도입이 시급하다. 특히 예산 문제를 이유로 안전을 미루는 관행은 중단되어야 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국가 존립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디지털 정부’의 편리함을 체감해왔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그 편리함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 보여주었다. 정부가 외치는 ‘스마트 국가’는 예산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허상일 뿐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시스템은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 사실상 국가 안보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경고는 이미 수차례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예고된 재앙’을 방치할 수 없다. 국가 인프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은 화려한 구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쌓아가는 대비와 투자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이번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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