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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Sep 08. 2021

상을 받고도 실망하는 나라는 인간

일희(一喜)하기로 합니다



상을 받았다. 실망했다.


"결과가 아쉬우신가 봐요."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이었다. 전화로 수상 소식을 알려준 공모전 담당자는 나의 실망을 곧바로 알아챘다. 그가 전한 소식에 실망한 내가 말을 잇지 못해 정적이 흘렀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 처음 수상 소식을 전하며 "맥 빠지는 결과"라고도 말했다. 시상식에 가는 순간까지도 기쁘지 않았다. '바빠 죽겠는데 왜 작은 상까지 직접 오라는 거야'라고 툴툴 대기만 했다.


'창의상'이라니. 어딘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장려상'이란 말을 쓰지 않으려고 갖다 붙인 이름 같았다.




지긋지긋한 자기 비하



시상식이 있던 날은 하루 종일 창고살롱 시즌3 기획 회의를 했던 날이었다. 상을 받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애쓴 수많은 날 중 하나. 시상식엔 빠질 수 없고 회의는 해야 하니 시간을 아끼려고 동료와 시상식 장 앞 카페를 전전하며 회의를 이어가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늦은 밤까지 마음이 뒤숭숭했다.


'나는 상을 받았는데 왜 기뻐하지 않는 거지...?'


꼭 하고 싶은 일이었고, 그래서 애쓰고 있으면서. 그게 의미 있다고, 잘했다고 받은 상이면서 나는 왜. 기뻐하지 않고 있는 걸까. 지긋지긋한 자기비하 습관이 정점을 찍은 순간이었다.


늘 칭찬과 관심에 목마른 (언니와 남동생 사이의) 둘째 딸은 언젠가부터 기대하지 않았고, 기뻐하지 않았다. 언제나 칭찬과 관심을 받을 수 없다면 언제나 칭찬과 관심이 필요 없는 척하겠다는 거였다.


스스로에게 점점 가혹해졌고, 기쁜 일은 '겸손'이라는 거짓 포장으로 감추기 급급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라는 말은 기쁨에 적용하기 좋은 말이었다.


이 습관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뼛속까지 박힌 자기비하는 쉽사리 도려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안 됐다. 내가 나를 칭찬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데 대체 누가 그럴까.


이번에는 나를 살리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




충분히 기쁨을 누린 마음



다음날까지 쓸 발산 에너지를 끌어 모아 지인들과 가장 소통이 활발한 SNS에 수상 소식을 전했다. 일부러 호들갑 떨며 사진도 크게 찍고, '수상소감'도 길게 남겼다. 올리자마자 지우고 싶었지만 이불 킥을 각오하고 알람을 끈 채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축하와 격려로 쌓인 댓글을 확인했다. 부끄러웠다. 또 기뻐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라고 다독였다.


충분히 기뻐했고 만끽하려 노력했다. 무언가 마음속 깊이부터 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함께 기뻐해 준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는 여운이 강했다. 다음 날, 그다음 날까지도 동력이 되었다. 좋은 일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여기까지였다. 내가 이 일을 기뻐했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더 나빠질 것도 없었고, 특별히 좋아질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기쁨을 누린 마음은 개운했다. '칭찬 같은 건 바라지 않아'라며 겉으로 냉소했지만 '이만큼이나 잘했는데 왜 알아주지 않는 거야'라고 억울함으로 곪아가던 속내였다. 곪은 상처의 고름을 쏙 빼낸 것 같았다.



4년 만에 받은 상장. 자랑.



일희(一喜)하자



칭찬과 관심에 목말랐지만 충분한 피드백을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냉소'라는 방어기제를 너무 일찍 배웠다. 냉소는 나를 병들게 했다. 작은(어쩌면 작지 않음에도) 성공과 성취는 성에 차지 않았고, 늘 더 대단한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찾겠다며 10년 만에 조직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다른 형태의 일과 삶을 살고 있는 지금. 나는 나를 지속 가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조금 더 예민해졌고 어떤 일에도 쉽게 기뻐하지 못하는 내 안의 아이가 애처로웠다.


어쩌면 오만이기도 했다. 이 상은 나 혼자 잘해서 받은 상도 아니었고, 나 혼자 받은 상도 아니었다. 수상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애쓰는 동료들, 그리고 나와 같은 상을 받은 5팀과 수상하지 못한 100여 개 다른 팀들의 노고를 너무 늦게 떠올렸다. 처음부터 내게는 이 상을 축소할 자격이 없었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런 작은 상을 받다니' 자기연민에 빠져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오만에서 비롯된 마음이기도 했다.


작은 일도 기뻐하고 즐길 줄 아는 마음이야 말로 내 일과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할 동력이자 진정한 겸손일지도 모른다. 엄청난 수고가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충분히 잘했다고, 나부터 스스로 조금만 토닥여주면 되는 거였다.


일희(一喜) 하기로 했다. 잠시 잠깐, 작은 일이라도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기로.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바라기 전에 내가 나에게 칭찬과 관심을 주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을 굳이 썼다.



서른둘, 처음 사주를 보러 갔다 "우울이 잔잔하게 깔려있는 사람"이란 얘길 들었습니다. 늘 우울하지만 대단히 우울하진 않았던 나를 이해하고 끌어안은 날. 잔잔한 우울과 함께 사는 삶은 모든 게 대단한 불행도 행복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겐 대단하지 않은 것들로 이뤄진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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