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텐스로그] 불안을 잠재우는 수미 에세이 <애매한 재능> 속 문장들
소설 쓰기 수업을 듣습니다. 기자, 에디터로 논픽션 글만 써오다 지난해에 어쩌다 장편, 단편 소설 초고 of 초고를 쓰게 됐어요. 한 번도 제가 소설을 쓸 거라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무엇에 홀린 듯 쓰고 싶어졌고, 끝내 썼습니다.
재능이 없다면 자기만족에서 끝낼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허구라는 특성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한 없이 풀어냈거든요. 그런데 쓰고 보니 욕심이 나기 시작했고, 욕심을 주체하지 못해 몇몇 지인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위험한 말들을 들어버렸죠.
당연한 수순으로, 퇴고를 하며 저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놀라울 일도 아니어서 자연히 소설 쓰기 기초 수업을 찾았습니다. 열정적인 열댓 명의 문우들과 함께 더 열정적인 선생님께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저의 무모함과 무지를 깨닫고 또 깨달으면서도 주책맞은 열정은 사그라들 생각이 없어 보여 난처하기도 합니다.
탈고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단기간 내 등단이나 출판은 감히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밥벌이 글을 써온 지난 세월과 식지 않는 열정만으로 버티기에는 애매한 시도 같기도 합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희박한 가능성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쪼그라드는 순간도 많습니다. 그럴 때 <애매한 재능>의 문장을 꺼내 불안을 잠재우곤 합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좀 더 지독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밖에 없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든 없든, 애매하든 모호하든,
내가 원하는 풍경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
'검색해도 안 나오는 작가'였지만 '계속해서 쓰는 사람' 수미 작가님의 <애매한 재능>에는 여러 결에서 위로받고 나를 긍정하게 만드는 문장이 가득합니다. 여러 이름으로 글을 쓰고 밥벌이를 했음에도 여전히 나만의 글쓰기가 고픈, 작가로 불리기도 했지만 어디 가서 스스로를 작가로 소개하지 못하는 "문필업 하청업자"로 "수상하게도 세상에 잊히는 기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밥벌이 글쓰기의 신산함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준비하는 게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며 긍정하고 끝내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펴낸 수미 작가님의 존재가 괜스레 든든합니다.
내일도 저는 써지지 않는 고통에 머리를 쥐어뜯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필 받은 (내일모레 지워질 확률이 큰) 문장을 써놓고 득의에 찬 얼굴을 하기도 하겠죠. 고통과 기쁨, 매일 한 문장 한 문장 쌓아 올리는 이 변덕스러운 일은 신기하게도 시름을 잊게 합니다.
그러니 가능성이 있든 없든, 애매하든 모호하든 원하는 풍경으로 계속 걸어나가 보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답정너' 같은 결말에 출사표 같은 오글거림이 덧붙여진 이 글을 견디고 글밍아웃의 증인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written by 치즈
<수미 작가의 책을 싶다면>
- 두 번째 책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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