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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Nov 08. 2019

빼앗긴 티베트에도 봄이 올까요

잊혀가는 자유에 대한 항변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0.

 Q. 티베트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저는 무서운 사원, 빨간 승복을 두른 승려, 티벳여우(?), 새들이 시체를 뜯어먹는 조장이 생각나네요. 정확히 떠오르는게 없는 분들도 '생과 사를 뛰어넘은듯 초연한 눈빛의' 티벳여우 짤을 보며 빵 터지셨을 겁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신비로운 느낌의 티베트. 종교가 없는 저에게는 그 신비로움이 무척 궁금했어요. 제가 만난 두 개의 티베트를 얘기해볼게요.

수..수련하겠습니다..!




1.

 처음 만난 티베트는 중국입니다. 먼저 티베트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부터 짚어볼게요. 티베트는 7세기부터 9세기경까지 당나라 서쪽에 있던 왕국의 이름입니다. 세계사 수업때 토번 왕국이라는 이름을 들은 기억이 나세요? 거기가 여깁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티베트족이고 , 이들의 왕국이 있던 땅이 티베트 고원이에요. 오늘날 티베트의 대부분은 중국 땅이고 대부분의 티베트족도 중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짱티베트자치구, 윈난성, 쓰촨성 서부, 칭하이성, 간쑤성 등 중국 내륙에 가시면 많은 티베트 자치마을을 볼 수 있습니다.

티베트 문화권입니다. 엄청 넓죠?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흰색 혹은 붉은색 벽에 황금빛 지붕을 얹어놓은 티베트불교 사원이에요. 마을마다 큰 사원 하나씩은 있습니다. 도시 곳곳에 빨간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돌아다니고, 티베트불교의 수행방식인 오체투지를 하는 구도자들이 보이죠. 과연 티벳여우의 나라입니다.

마을 곳곳에 티베트 승려분들이 계세요.

 왜 이토록 신실할까요? 환경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티베트 땅은 우리나라의 20배가 넘어요. 하지만 평균고도가 4천 미터가 넘기 때문에 큰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비가 잘 오지 않으니 쌀에 비해 인구부양력이 낮은 밀농사를 짓죠. 고기는 짐을 옮기기 위해 기르던 야크가 노쇠해지면 도살해 먹습니다. 늙은 고기다 보니 질기고 누린내가 나요. 토양이 비옥하지 않아 신선채소와 과일도 부족합니다. 이렇게 식량사정이 좋지 않으니 인구밀도가 낮아 사람들은 띄엄띄엄 떨어져 살았습니다. 이들을 묶어주던 것이 종교였어요. 그래서 티베트는 오늘날까지도 강한 종교적 색채를 띱니다.

티베트식 칼국수와 만두인 뚝바와 모모. 맛은 한국이랑 비슷합니다.


2.

 티베트하면 독립운동도 떠오르죠? 저도 그랬어요. 걱정 많이 했는데 마을의 분위기는 평화롭습니다. 별다른 갈등도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친하게 지내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샹그릴라라는 마을에는 '홍군대장정 박물관'이 있어요. 이 앞에는 동상이 있습니다. 홍군(공산당 군대)이 국민당에게 쫓겨 대장정을 하는 동안 이 마을의 티베트 사람들이 우릴 반겨줬다는 내용이에요.

티베트와 공산당은 칭구칭구~

 경제개발도 적극적이에요. 중국은 내륙과 해안의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서 정부가 티베트에 돈을 뿌리고 있습니다. 티베트의 세금은 티베트 내에서 소비돼요. 대학 등록금은 면제입니다. 시짱대학에는 최첨단 빅데이터 센터가 설치됐죠. 이걸로도 부족해 중앙정부의 세금을 티베트에 떼줍니다. 중앙당의 의지가 이토록 확고하니, 중국인들의 돈도 라싸에 들어오고 있어요. 그래서 라싸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중입니다. 개발이 한창인 티베트에 분쟁의 기미는 보이지 않아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외국인은 티베트의 중심인 시짱티베트자치구를 혼자 여행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를 받고 가이드를 고용해야 돼요. 이게 문제인게, 7일짜리 투어의 비용이 1,400달러입니다. 하루에 23만원이죠. 티베트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인 포탈라궁을 꼭 보고 싶었지만, 이 비용을 내면서까지 여행하고 싶진 않아서 작은 마을들만 봤습니다. 그래도 황금빛 건물과 톤 높은 티베트 음악, 경건한 구도자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오체투지를 하는 구도자. 직접 보면 기분이 묘해요.




3.

 두 번째 만난 티베트는 인도였습니다. 인도 북부에는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요.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이곳을 관리하던 사람의 이름을 딴 마을입니다. 이곳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원이 있어요.


 달라이 라마, 정확히는 몰라도 이름은 한 번씩 들어보셨을 거예요.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불교의 지도자입니다. 아까 티베트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댔죠? 그래서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정신적 지주입니다. 비단 티베트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불교 중에서는 티베트불교의 인지도가 높아 세인들의 존경을 받죠. 어느 정도냐면 영어로는 달라이라마 성하(His holiness Dalai Lama)라고 불리는데 이는 교황과 동일한 존칭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 호칭이 통용되는건 교황, 정교회 대주교 그리고 달라이 라마 등 셋뿐이에요.

성하(聖下) 3대장!

 그런데 이상하죠? 달라이 라마가 왜 중국의 티베트가 아니고 인도에 있나요? 티베트 정부가 인도로 망명했기 때문입니다. 1959년 중국정부는 공산화 정책에 반발한 티베트의 무력시위를 완벽히 분쇄합니다. 중국 내에서는 더 이상의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죠. 인도로 망명을 결정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도와 중국은 사이가 안 좋으니 중국정부는 강하게 반발했죠. 물론 인도는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4.

 그 망명정부가 있는 곳이 맥그로드 간즈입니다. 기대를 많이 했어요. 중국에서 봤던 티베트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달라이라마 사원을 찾으면서 꽤 헤멨습니다. 숨겨져 있냐구요? 아뇨. 대로변에 있어요. 그럼 왜 못 찾냐구요? 건물이 누추하거든요. 달라이라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에요. 사원도 아니고 평범한 2층짜리 건물입니다. 대문에 쓰여있는 글씨가 아니었으면 끝까지 몰랐을 거에요.

이게 어딜 봐서 티베트 불교의 총지도자가 살고 있는 곳인가요...

 입구를 지나치면 바로 왼쪽에 게시판이 있습니다. 티베트 독립시위가 분쇄되는 사진, 중국이 어린 판첸라마(티베트불교의 2인자)를 납치해 감금한 사실 등을 보여주죠. 조금 더 들어가면 동상이 있습니다. 티베트 독립운동 기념비에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같은 모습일 거 같죠? 아뇨. 독립을 부르짖으며 분신자살을 하는 승려의 동상입니다.

 보안검색을 통과하면 사원으로 들어갑니다. 안에도 별거 없습니다. 별도 공간도 몇 개 안되고 전체 크기도 작아요. 건물도 평범해서 승려들과 명상하는 사람, 오체투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빼면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티베트의 유산들이 여행객들에게 화려한 과거를 보여주는 동안 티베트의 심장은 이곳에 묻혀 있었습니다. 제가 보려 했던 라싸의 포탈라궁, 과연 그게 진짜 티베트였을까요.

티베트의 현실은 조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5.

 티베트의 눈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석되고 잊히고 있어요. 완전한 독립은 불가능하단 걸 달라이 라마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치를 요구하지만 중국정부는 강경합니다. 아까 판첸라마가 납치됐다고 했죠. 티베트불교는 윤회를 믿습니다. 이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에게도 적용돼요. 지금의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판첸 라마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를 찾고 그를 달라이 라마로 인정합니다. 중국 정부는 어린 판첸라마를 납치해 그가 가짜라고 주장했어요. 그러고는 새로운 판첸라마를 내세웠습니다. 새로운 판첸라마의 부모가 공산당원이란 사실은 우연의 일치겠죠?

판첸라마 11세의 납치를 폭로하는 게시물

 현재의 달라이 라마 14세는 환생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원래의 신념일 수도 있지만, 판첸라마의 경우처럼 중국정부가 허수아비 달라이 라마를 세울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에 중국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중국 정부의 소관이다. 개인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며 무신론을 외쳤는데, 공산당은 마르크스를 버렸나 보네요. 마오쩌둥이 있으니 괜찮나 봐요?

뉴욕타임즈는 이 얘기를 듣고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돌아누울 일"이라고 비웃었습니다.

 달라이 라마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독립운동도 잊히고 희석됩니다. 티베트로 점점 더 많은 한족들이 이주하고 있어요. 공산화 교육으로 티베트 집안에 시진핑의 초상화가 걸리는 지경입니다. 전 세계에 돈을 뿌리는 중국의 눈초리를 무시하고 'Free Tibet'을 외치는 국가는 거의 없죠. 외국인은 가이드를 끼지 않고서야 티베트에 들어갈 수 없는데,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 순간 '중국정부가 허락한 티베트'만 볼 수 있습니다.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석연치 않아요. 그렇게 티베트는 점차 멀어지고 있습니다.

'티베트의 자유'가 점점 멀어지는것 같은건 기분 탓일까요.


6.

 만리장성 방화벽과 외국인 출입장벽으로 둘러싸인 티베트. 이를 똑 닮은 나라가 있습니다. 북한이에요. 장막 안 티베트는 어떤 모습이고, 1935년생인 달라이 라마 14세가 입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맥그로드 간즈의 환한 햇빛이 서럽습니다.

 티베트 청년과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글을 마칩니다.




 산책할 겸 산길을 올랐다. 티베트 음악 특유의 꾀꼬리 고음이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티베트 공연예술센터가 나온다. 야외무대에서 남녀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무대 밑에 서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공연 준비하나 봐요?"
 "맞아요. 3주 뒤에 큰 명절이 있는데, 그때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어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에서 왔어요."
 "아, 한국! 내가 좋아하는 한국사람 있어요."
 "누구요? 강남스타일?"
 "아뇨.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에요."
 박지성을 좋아한다는 그의 이름은 니마. 티베트어로 태양이란 뜻이다. 몇 마디 더 얘기하다 질문을 던졌다.
 "아까 부모님이 중국에서 인도로 왔다고 했죠? 그럼 니마는 중국 사람이에요, 인도 사람이에요?"
 "티베트 사람이에요."
 내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 같아 다시 물었다.
 "네, 티베트 사람 맞는데 국적이 중국이냐 인도냐 물어보는 거에요."
 "티베트인이죠."
 차마 한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얼굴에 '티베트는 국가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 질문을 끝으로 그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전까진 아름답던 노랫소리가 갑자기 구슬프게만 들린다.

 티베트인인 니마는 티베트에 갈 수 없다.
 티베트의 태양은 얼어붙은 고원을 녹일 수 있을까.
 빼앗긴 티베트에도 봄은 올까.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히피에게서 행복을 배우다"에요. 오직 요가를 배우겠단 생각만으로 인도에 온 히피들, 그들에게 행복을 물었습니다. 11월 11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에 공개됩니다.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


※ 이미지 출처 (출처 생략 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TibetanReview.com

2. 티벳여우 : curatio.tistory.com/33

3. 지도 : vermonttibet.org

4. 달라이 라마, 프란치스코 교황 : wikipedea.org

5. 바르톨레오 대주교 : cristiantoday.com

6. 달라이라마 사원 외벽 : adventuresofagoodman.com

7. 신문기사 : nytimes.com

8. 맥그로드 간즈 풍경 : tourmyin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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