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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Nov 04. 2019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준다구요? 왜요?"

인도 암리차르 황금사원을 탐방하다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0.

 아.묻.따.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뜻이죠. 기업들이 약관읽기 힘들어하는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일이 생기면 '이건 뭐때문에 이래서', '저건 뭐때문에 저래서' 안된다는 비겁한 변명에 속 터지죠. 그런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묻따로 밥도 주고 재워도 준다면 믿겠습니까? 아, 조건이 있긴 해요. 신발도 벗어야 되고 두건이나 터번으로 머리카락도 가려야 됩니다. 그거 말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종교도 아묻따죠. 못 믿겠죠? 저도 못 믿겠어서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암리차르 하르만디르(Harmandir)입니다.

전설의 '그' 광고 (Ft. 대마그룹 회장님)




1.
 암리차르(Amritsar)는 인도 서북부의 도시입니다. 별다를것 없는 이 도시가 특별한건 시크교의 성지이기 때문이죠. 시크교가 뭐냐구요? 시크교는 15세기 인도에서 창시된 종교입니다. 4대종교가 최소 1500년의 전통을 가졌음을 감안하면 신생종교죠. 하르만디르는 시크교의 총본산입니다. '신의 집'이라는 뜻이에요. 황금으로 만들어진 중심건물이 워낙 유명한 바람에 영어로는 황금사원(Golden Temple)으로 불려요.

시크교의 문장(좌)과 터번을 한 시크교도 군인(우). 이슬람식 터번과는 차이가 있죠?

 사원입구에 도착하면 식수대가 가장 먼저 보입니다. 단순히 수도꼭지 몇개 갖다놓은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한컵씩 물을 떠줍니다. 당연히 돈받고 파는건줄 알았는데 다들 깊은산속 옹달샘을 마시는 토끼마냥 물만 쏠랑 먹고 갑니다.
 "마셔도 되요?"
 물을 떠주는 아저씨가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물맛 좋네요.

 식수대 옆에는 신발보관소가 있습니다. 인도의 거의 모든 종교적 건축물에 들어갈땐 신발을 벗어야 해요. 신발을 맡기면 보관표를 주는데 세상에, 3780번입니다. 아침인데도 이런데 대체 하루에 몇명이나 왔다가는 걸까요? 신발을 맡기면 입구에서 머리를 싸매고 들어갑니다. 모르고 온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두건도 나눠주죠.




2.
 입구로 들어가면 정면에 황금사원이 보입니다. 전체 사원은 정사각형 모양이죠. 사원 가운데엔 호수가 있고 호수 중앙에 황금사원이 떠있습니다. 이 호수의 물은 성수로 여겨져서 발과 몸을 씻는 분들도 계셔요. 대부분의 종교장소가 그렇듯 인도의 사원과 성당들은 하나의 입구를 갖습니다. 특이하게도 하르만디르는 사방으로 문이 나 있어요. 힌두사원은 19세기 초반까지도 하위 카스트의 방문을 금지했어요. 하르만디르는 완공된 1585년부터 모든 이들에게 개방됐습니다. 시크교의 개방성을 보여주죠.

식사대기 인원. 참고로 오후 두시반 경입니다.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 호수를 따라 걷습니다. 금속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네요. 식당입니다. 입구에서 조그만 원형식판을 나눠주죠. 식사행렬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갑니다. 넓은 홀에 중간중간 멍석이 깔아져 있어요. 멍석에 앉아 식판을 내려놓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음식을 채워줍니다. 특히 커리를 주는 분들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빠릅니다. 두 종류의 커리와 짜파티라는 인도식 빵, 쌀로 만든 달콤한 죽을 줘요. 호화롭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아요. 부족하다구요? 걱정마세요. 앉은 자리에서 손만 들면 언제든지 다시 채워줍니다. 다 먹고 나면 1층에 식판을 반납하세요. 출구에서는 짜이(인도식 밀크티)도 마실 수 있습니다. 먹는 입이 많으니 대형 정수기에서 차를 따라줍니다.

하이테크놀로지 급수차

 차마시는곳 옆에는 수십 명이 바닥에 앉아있습니다. 뭔가 했더니 식재료를 다듬고 있습니다. 마늘도 까고 콩도 까고, 나오는 껍질들만 몇 포대에요. 하루에 7만 5천명의 식사를 제공한다니 일이 산더미겠죠. 재밌게도 이 모든 활동이 자원봉사로 이뤄진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넘쳐나요. 설거지라도 도와볼까 들어가봤더니 공장식 싱크대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네요? 빵이라도 구워볼까 부엌에 들어가보니 역시 자리가 없습니다. 물을 떠주는 사람도 있으니 봉사자가 얼마나 많은 걸까요? 게다가 물잔도 다 재로 소독하고 씻기까지 하니 관리가 철저합니다. 이 많은 봉사자로 이렇게 관리를 하니 대단하네요.

빵굽는 아저씨들
무급 설거지도 일자리가 없네요...


3.
 이런 공동식당의 전통은 초기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시크교에선 이를 구루 카 랑가르(Guru Ka Langar)라고 불러요. 펀자브어로 '구루의 부엌'이라는 뜻이죠. 구루는 종교지도자 혹은 멘토입니다. 과거의 힌두교는 카스트에 따라 밥도 따로 먹었습니다. 시크교의 창시자 구루 나낙(Guru Nanak)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꿈꿨어요. 그래서 다 같이 밥을 먹는걸 강조했고 자신이 앞장서서 신도들과 함께 바닥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 원칙이 어찌나 꼿꼿한지 심지어는 무굴제국의 황제가 왔을때도 별도의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고 다함께 바닥에서 밥을 먹었어요.

황제도 바닥에서 먹게하는 꼿꼿함

 시크교의 쿨시크한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죠. 시크교가 창시될때 펀자브 일대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시크교는 이 둘을 극복하려는 개혁종교였어요. 우선 카스트를 부정합니다. 인도는 카스트에 따라 자신의 직업이 결정됐었죠. 카스트는 핏줄로 이어지므로 몇대씩 운명의 굴레가 이어졌어요. 그렇다보니 성씨로도 그 사람의 카스트를 알 수 있었어요. 시크교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간단해요. 남자는 싱(Singh), 여자는 카우르(Kaur)으로 성을 통일했습니다. 각각 숫사자, 암사자라는 뜻이죠. 그래서 인도에서 싱은 정말 흔한 성입니다.


 기존의 사회질서에 반발하니 시크교는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특히 무굴제국 중기부턴 정말 심각했어요. 구루가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시크교도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단련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대개의 힌두교도들이 먹지 않는 고기도 먹습니다. 신체단련도 꾸준히 하죠. 남자여자 가리지 않고 키르판(kirpan)이라는 호신용 단도를 몸에 차고 다닙니다. 슬픈 역사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죠.

시크교도는 여자도 단검을 들고 다녀요.

4.
 밥을 먹고는 숙소에 가봤습니다. 가운데가 뚫려있는 네모난 아파크 모양이네요. 분위기는 빈민구호소보단 가족아파트에 가깝습니다. 성지라서 그런가 가족들끼리 오신 분들이 많아요. 못해도 천명은 재울 수 있는 규모입니다. 외국인 숙소는 한켠에 작은 규모로 있어요. 이번에도 역시나 아묻따 재워줍니다. 방명록에 이름만 작성하면 되요. 숙소는 어둡긴 하지만 침대도 있고 공용 화장실에서 샤워도 할 수 있습니다.

어둡긴 히지만 무료숙소로는 손색 없습니다.

 한바퀴를 다 돌고 호수에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립니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사원을 보면 신기합니다. 이 돈이 다 어디서 나왔지? 답은 기부와 자원봉사죠. 아까 시크교가 육식도 하고 신체단련도 한다고 했죠? 그래서 시크교식 터번을 한 사람들은 체구가 듬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신체적 특징으로 인도군 장성 중에 시크교가 많고, 총리 경호원도 전원 시크교도입니다. 더군다나 주요 교리에 '재능에 맞춰 열심히 일하라'는 내용도 있어서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도 많죠. 인도의 전 총리 만모한 싱도 시크교도였습니다. 사회각지에서 성공한 신도들이 보내는 기부금과 자원봉사로 이 큰 사원이 돌아가고 있죠.

5.

 낮에도 멋있던 모습은 밤이 되면 더 멋집니다. 사원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호수 주위를 걷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고, 사원을 바라보며 함께 경전을 외고 절을 합니다. 세속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종교가 없는 저로서는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진 못합니다. 그래도 그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아요. 긴 겨울을 버텨온 인동초가 꽃을 피웠습니다. 박해를 받았던 종교가 훗날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숱한데, 이 꽃은 자기의 향기만을 퍼뜨리기로 했습니다. 왜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냐는 물음에 그들의 답은 원론적입니다. "구루 나낙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서쪽으로는 로마, 동쪽으로는 베이징까지 순례를 할때 그도 걸식을 했어요. 그 은혜를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평등하니까요." 교과서에서나 보던 평등이란 단어가 이런 울림을 주는건, 이들의 행동이 진심을 보여주기 때문이겠죠. 저는 종교가 없지만 이런 종교라면 다가가보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인가요?
 시크교의 성지, 암리차르 하르만디르가 묻습니다. 구독자님의 댓글로 답해주세요 :)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빼앗긴 티베트에도 봄은 오는가"에요.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와 티베인들의 슬픈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11월 8일 금요일 오전 7시 30분에 공개됩니다.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


※ 이미지 출처 (출처 생략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 The Tallenge Store

2. 아묻따 광고 :  유투버못된소년YSMA엔터테인먼트

3. 문장 : simple.wikipedia.com

4. 터번 : vancouversun.com

5. 바닥에서 밥먹는 황제 : dailysikhupdat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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