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다 세계여행 Nov 01. 2019

인도와 파키스탄의 숨막히는 댄스배틀

와가보더 국기하강식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0.

 국경이 관광상품이 될줄은 몰랐다. 다 큰 성인남자들이 과장된 몸짓으로 기싸움을 한다. 발도 쿵쿵 구르고 발레리나처럼 다리도 하늘로 뻗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가슴을 내밀고 턱을 쳐든다. 아이돌이 아니고 군인이다. 인도-파키스탄의 와가보더다.


1.

 한국인에게 국경은 특별하다. 영토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유일한 국경은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전쟁상태(정확히는 휴전)인 국가와 맞대는 국경은 살벌하다. 총든 군인들이 적국을 감시하고 줄지어 늘어선 양국의 대포들은 서로를 겨냥한다. 당장 총성이 들려도 이상하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식은땀이 흐르는 긴장의 연속이다. 한국인에게 국경은 그런 이미지다. 그래서 나도 몽골에서 중국으로 처음 육로국경을 넘을 때는 마음이 두근거렸다.

대강 이런 숨막히는 이미지 말이다.

 그런 국경이 관광지가 되었다. 와가는 인도 서북부 도시인 암리차르(Amritsar)에서 서쪽으로 32km 떨어진 국경지대다. 이곳에서는 매일 일몰 두시간 전에 국기하강식(이하 하기식)을 진행한다. 하기식은 군대에서 매일 하는 일이지만 이곳의 하기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기식 간에 벌어지는 양국 군인들의 기싸움이 '진지한데 웃기기' 때문이다. 원체 유명하다보니 아예 주정부에서 매일 관광버스를 운영한다. 300루피(한화 5천원)를 내고 버스에 탔다.


2.

 하기식의 주인공, 인도와 파키스탄은 정말 사이가 나쁘다. 가까운 나라들은 사이가 안좋은 경우가 보통이지만 이들은 독보적이다. 1974년 인도가 핵개발에 성공하자 파키스탄도 '인도가 우리에게 핵을 쏠지도 모르니 우리도 핵이 있어야 한다'며 핵 보유국이 됐다. 인도야 제3세계의 리더이자 세계 2위의 인구대국이지만, 파키스탄은 그때나 지금이나 잘 사는 나라는 못된다. (파키스탄의 인구는 인도의 1/6, 1인당 국민소득은 3/4이다.) 핵개발을 하겠다고 떼쓰니 국제사회가 경제제재를 실시했지만 파키스탄의 고집을 막진 못했다. 없는 살림에 쥐어짜서라도 핵을 만들만큼 두 나라의 적대감은 대단하다.

인도의 국기를 불태우는 파키스탄인들.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양국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는 팔레스타인과 함께 영토분쟁의 연관검색어다. 2019년 2월, 인도가 파키스탄을 공습했다. 2주 전 카슈미르 지방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인도경찰 4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인도가 그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고, 이튿날 보복으로 인도를 공습했다. 이 과정에서 대응차 출격한 인도 전투기 두대를 격추했고 조종사 한명을 포로로 잡았다. 이후 영공을 봉쇄하며 '인도를 출발해 파키스탄을 지나는 항공기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격추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와가의 하기식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3.

 1시간을 달려 국경에 도착했다. 외국인도 많지만 현지인이 훨씬 많다. 인도인들에게도 신기한가보다. 관광객이 많아도 국경은 국경이다. 소지품 검사가 철저하다. 큰 가방, 칼 등 뾰족한 물건, 보조배터리 등의 물품은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검사를 통과하고 500m쯤 걷는다. 하필 폭우가 쏟아져 냅다 뛰었다.

 하기식 장소는 스포츠 경기장 같다. 국경의 문을 중심으로 도로가 뻗어있고 그 주변을 양국의 관중석이 둘러싸고 있다. 인도의 관중석은 2단이다. 거대전광판도 두개나 있다. 야구장에서나 보던 설계다. 건너편 파키스탄 관중석은 조촐하게 1단이다. 외국인 자리는 파키스탄과 가까운 곳이다. 국력을 과시하려는 인도의 선전이다.


 폭우가 그치지 않아 다들 지붕이 있는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러다 공치고 돌아가는거 아닌가 싶다. 그때 인도인 한 무리가 갑작스레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몇 명이 따라 들어간다. 음악도 뭣도 없는데 사나운 빗줄기 속에서 춤을 춘다. 다 같이 미치니 보기좋다.

이곳이 볼리우드의 나라입니까?

 다행히 얼마 뒤 비가 그치고 음악이 나온다. 경기장 분위기도 더 뜨거워진다. 사람들이 도로로 뛰어들어 단체로 춤을 춘다. 백주대낮에 술도 안마신 말짱한 제정신인데 강남의 클럽보다도 잘 논다. 15분도 넘는동안 지치지도 않는다. 우물쭈물하다 나도 끼어보려고 내려갔다가 곧 식이 시작한다며 뺀찌먹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인도인들은 음악만 있으면 춤출 준비가 되어있다.


4.

 본격적인 식이 시작하면 군인들이 하나둘 발을 맞춰 나온다. 대개 둘 아니면 넷씩 짝지었다. 특공대마냥 검은 두건, 선글라스, 방탄조끼, 바지, 군화까지 올블랙 깔맞춤한 총든 군인이 있는가하면 비무장 군인도 있고 여군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동작이 과장되다. 경례를 할땐 온팔을 휘두르고, 걷는 속도는 2배속에 팔은 주먹이 어깨보다 높게 올라가는 큰 걸음이다. 거위 행진(goose marching)이란 별명까지 있다. 분명 본인들은 진지한데 보는 입장에선 웃기다. 이 와중에 마이크를 둔 군인이 함성을 유도한다. 팔을 휘두르는 모습이 대학교 응원단장한테 군복을 잘못 입혀놓은것 같다. 관객들은 그의 지휘에 깃발을 펄럭이고 힌두스탄(인도의 옛 애칭)을 연호한다. 거의 축구 국가대항전이다.

 국경의 문이 열릴 때부터가 하이라이트다. 양국의 군인이 중앙에서 만난다. 무릎을 가슴까지 들어올려 발을 구르고, 누구 코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경쟁하듯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내려다본다. 그것도 1대1 댄스배틀마냥 한명씩 나와서 붙는다. 어찌나 뜨거운지 서로 정분나겠다. 수컷 공작이 자신의 꼬리를 한껏 화려하게 펼쳐 짝짓기 경쟁을 한다던데 딱 그 모습이다. 정작 국기를 내리는건 금방 끝난다. 서로 똑같은 속도로 국기를 내리고 나면 누가 더 칼 같은 각으로 국기를 접어 퇴장하는지를 겨룬다. 국기가 퇴장하면 식이 끝난다. 관중들도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

고무고무 다리!
파키스탄 군인의 발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5.

 이 즐거운 행사는 1959년부터 시작됐다. 양국정부는 이 행사가 형제애와 협동심에 기반한 라이벌 의식을 상징하길 바라며 행사를 승인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국경 중에 와가였을까? 시계를 더 돌려보자.


 1947년 영국의 식민지던 인도제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독립했다. 영국은 2차세계대전(1939~45) 동안 식민지에게 전쟁참여를 강요했다. 인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도의 주민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종전 후 독립을 약속받았다. 인도군은 일제가 남아시아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는 큰 성과를 올렸다. 영국 입장에선 인도의 독립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고, 전쟁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 식민지를 유지할 능력도 없었다. 영국은 인도를 독립시키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인도제국을 그대로 독립시킬 수가 없었다. 인도는 힌두교가 절대강세인 나라다. 2위가 이슬람교인데, 비중은 적더라도 인도의 인구수를 곱하면 이슬람교도의 수도 무시할 수 없다. 무슬림들은 별도의 이슬람 국가를 요구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인도 전역에서 벌어진 무슬림과 비무슬림 간의 충돌로 수십만 명이 죽었다. 영국은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은 파키스탄으로 분리하기로 약속한다. (참고로 간디는 하나의 인도를 외치다 힌두교 과격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1947년 8월 16일, 캘커타의 다이렉트 액션 데이를 시작으로 인도 전역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충돌했다.

6.

 두개의 나라를 만들어야 하니 일이 하나 늘었다. 국경선 획정이다. 얼른 발을 빼고 싶은 영국은 귀찮았다. 영국은 시릴 드클리프(Cyril Radcliffe)라는 변호사에게 일을 맡겼다. 그는 이때까지 인도 땅을 밟아본 적도 없었는데, 영국은 그를 가장 공정한 사람이라고 포장했다. 영국은 그에게 인도독립까지 남은 5주의 시간동안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의 국경을 획정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7,000km가 넘는 길이다. 지리의 전문가도 아닌 사람에게 말도 안되는 주문을 했으니 일이 제대로 처리될리가 없었다.

래드클리프에겐 안타깝게도 그가 제출한 국경선은 오늘날까지 래드클리프 라인으로 불린다.

 영국이 더욱 비난을 피할수 없는 것은 국경의 발표시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1947년 8월 14일에, 인도는 15일에 독립했다. 국경의 발표는 17일이었다. 래드클리프가 일을 늦게 처리한것 아니냐고? 그는 자신이 판단한 국경을 9일에 제출했다. 영국이 의도적으로 늦게 발표했다. 졸속으로 그어진 국경이 문제를 가져올 것을 알았던 영국은 발표시기를 독립 이후로 미룸으로써 책임을 떠넘겼다.


7.

 국경의 발표가 늦어지니 코미디가 벌어졌다. 국경의 사람들은 '독립은 했는데 우리집이 인도인지 파키스탄인지 모르는' 상황이 연출됐다. 어떤 마을에선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기가 함께 올라갔다. 국경이 발표된 순간, 양국 합쳐 1,400만 명이 난민이 됐다. 자기 나라를 찾아 이주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인류 최대의 이주다. 제대로 준비돼 있을리가 없었다. 지옥도가 펼쳐졌다. 굶주림, 전염병, 열사병이 덮쳤다. 상대종교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광신도들이 이주행렬을 습격했다. 그 중엔 얼마 안되는 재산을 약탈하려는 강도도 껴있었다. 몇 명이나 죽었는지 추산조차 할 수 없다. 최소 20만에서 최대 200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이 지옥같은 열차마저도 못탄 이들은 수백 km를 걸어야했다.

 자신이 그은 국경선이 가져온 결과에 회의감을 느낀 래드클리프는 모든 자료를 불태우곤 영국으로 돌아갔다. 영국 정부가 지급한 4만 루피(64만원)의 수고비도 거절했다. 그는 다시는 인도에 돌아오지 않았다.


 래드클리프가 후회한다고 혼란이 사그라들진 않았지만, 이 혼란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와가보더다. 당시 와가보더는 인도군 1개 연대의 관할이었다. 공표된 국경은 실제 지형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이전까진 하나의 국가였으므로 사전에 그어진 선도 없었다. 쏟아지는 피난민 때문에 최소한의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지면에 국경을 명확히 그리기 위해서는 파키스탄과 공조해야 했다. 다행히 파키스탄 관할군의 지휘관이 자신의 생도시절 동기였다. 덕분에 와가보더에선 양국의 협조가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혼란이 빠르게 수습되었다.


8.

 와가보더의 이야기는 어떤 혼란도 서로간의 대화와 이해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에서의 첫 기억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인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처음보는 현지인이 '친구야(my friend)' 소리를 하거나, 사진찍는 것만 보면 옆에서 같이 찍자고 할때면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야'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와가보더에서 그들이 춤을 추며 웃는 모습을 보니 원래 이런 민족이구나 싶었다. 그들을 이해하자 나오는 길에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가벼워졌다.

인도인들은 어린 아이부터 중년까지 항상 사진을 찍자고 다가온다.

 2019년 3월, 파키스탄은 자신들이 생포했던 인도군 조종사를 인도로 인계했다. 와가보더를 통해서였다. 확전을 막기 위한 평화의 제스처였다. 1947년부터 이어져온 평화의 전통은 지금도 계속된다. 오늘도 와가보더에선 양국의 깃발이 함께 올라가고 함께 내려온다. 그 과정에서 양국이 펼치는 기싸움, 이런 귀여운 전쟁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기식 동영상(2분) : https://www.youtube.com/watch?v=Jstp2J2Vn9k

 더 궁금하신 분들은 wagah border retreat ceremony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준다구요? 왜요?"입니다. 국적도, 종교도,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재워주는 '암리차르 황금사원'의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11월 4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에 공개됩니다.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


※ 이미지 출처 (출처 생략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 By M. Gevicki on Getty Images

2. 판문점 : tourdmz.com

3. 불타는 인도국기 : 중앙일보

4. 인도국민의 응원 : By Dinodia Photo on Getty Images

5. 다리뻗는 군인 : By Feng Wei on Getty Images

6. 춤추는 군인 : By Dinodia Photo on Getty Images

7. 래드클리프 라인 : indiatimes.com

8. 다이렉트 액션 데이 : siliconindia.com

9. 이주행렬 : asiasentinel.com

10. 악수 : By Nadeem Khawar on Getty Imag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