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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소, 매연 가득한 도로에 널부러진 노숙자, 그리고 맨발로 신을 숭배하며 도로를 행진하는 신도들. 현실감 없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1.
배낭여행의 끝판왕인 인도에 예정보다 빠르게 가게 되었다. 원래 중국의 티베트자치구를 거쳐 육로로 네팔에 이어 인도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티베트 여행이 무산되며 중국 청두에서 바로 인도 델리로 날아가야만 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장 1주일 뒤에 가장 두려운 나라에 떨어져야 된다니, 두렵다.
원래 생각하던 루트(라싸-카트만두-포카라-바라나시). 1일당 23만원짜리 티베트 투어를 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외국의 첫 이미지는 입국심사다. 도착비자 신청서를 두번이나 틀려서 퇴짜맞았다. 그럴 때마다 최대한 '덤벙대지만 애는 착한' 웃음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세 번째 가져오니 무뚝뚝해 보이던 심사관이 '드디어(finally)'라면서 가볍게 웃는다.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시내로 가기 전 공항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주치는 인도인들은 친절한 사람 반, 무뚝뚝한 사람 반이었다. 특별할건 없다. 이들도 그냥 사람이구나. 괜한 편견이었다고 반성했다.
2.
그리고 공항을 나서자마자 성급했던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공항 문앞에 즐비한 택시 호객꾼들부터 시작해서 현지인들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힐끔힐끔 보는게 아니다. 정말 대놓고 빤히 쳐다본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길거리의 모두가 이렇게 쳐다본다.
진짜 문제는 지하철역을 나와서다.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만나기로 했는데 지하철 한정거장 거리다. 델리의 분위기를 느껴볼겸 걸었다. 역을 나서자마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쉬지 않고 울려대는 클락션, 더운 공기에 찐득하게 묻어있는 매연, 그 난리통 속에 태연히 음식을 만드는 노점, 예약이라도 된것 마냥 자연스럽게 다가와 호객을 하는 릭샤기사. 모든걸 뿌려치고 최대한 빨리 걸었다. 거리는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하다. 그 어둠 속에서 이방인을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섬뜩하다. 몇 명은 휘파람을 불고, 누구는 손짓을 하고, 두 명은 내 손목을 잡기까지 한다. 한 명은 릭샤기사였고 한 명은 정신병자인 것 같다.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남자인데도 이러는데 체구가 작은 동양인 여자였으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가득한 혼돈 속 느리게 펄럭이는 인도의 국기
3.
다행히 호스트를 만나 차를 탔다. 안심하긴 이르다. 창문을 닫아도 클락션에선 벗어날 수 없다. 쉴새없이 끼어드는 릭샤와 오토바이 때문에 차는 급정거와 급발진을 반복한다. 아무리 봐도 3차선 밖에 안되는 도로에 버스 한대, 승용차 두대, 릭샤 두대가 낑겨있다. 참고로 차선은 없다. 차선을 안 지킨다고 욕하려 했더니 선이 없다. 500m에 한번씩 종교 퍼레이드가 한 차선을 점령한다. 나이트클럽 삐끼차량 같이 시끄러운 음악을 토해내는 차 뒤로 맨발의 숭배자들이 춤을 추며 꽁무니를 쫓는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도로 한켠엔 노숙자들이 널부러졌고 소들이 쓰레기를 뒤진다.
호스트의 집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에 있다. 오토바이로 갈아 타 5분을 더 들어간다. 가로등 불빛이 미약해 거리가 스산하다. 이번에도 현지인들의 시선은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미로같은 골목을 굽이굽이 들어가 겨우 집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서 짐을 내려놓고 밥을 먹으려 했는데 혼자 나갔다가는 돌아올 수 없을것 같아 저녁을 포기했다. 녹슨 문에선 끼이익 소리가 난다. 집 안에서는 염소가 날 맞이한다. 비현실의 연속이다.
호스트가 제공해준 소파에 짐을 풀고는 쓰러졌다. 매연을 뒤집어썼지만 씻을 생각도 안났다. 여행을 떠나고 2개월 동안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물음이 다가왔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4.
처음 만난 인도, 델리의 표정은 계속 이랬다. 다음날 아침 간신히 멘탈을 조각모음해 정보를 찾아봤다. 대부분 처음엔 힘들지만 적응하고 나면 괜찮단다. 특히 델리가 악명이 높다. 달리 의지할데도 없으니 이 말만 철썩같이 믿었다. '델리만 이럴거야, 다른 도시에 가면 괜찮을테니 조금만 버티자'라고 기도문을 읊었다.
그 믿음에도 델리는 결코 내가 견딜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베이징에서도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대기오염이 눈알과 목구멍을 강타한다. 도로는 클락션 소리가 멈추는 적이 없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어 차와 함께 걸어야 한다. 지옥같은 교통체증 때문에 버스가 1시간 동안 1km를 움직인 적도 있다. 버스는 지도의 노선과는 다른 곳에 당신을 내려준다. 그럼 릭샤를 타야 되는데, 바가지 씌우기에 혈안이 된 릭샤 기사들이 피라냐 떼처럼 들러붙는다. 소득수준이 한국의 1/16인 인도에서 심할 때는 한국과 비슷한 가격을 부른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발걸음을 돌리면 끈덕지게 들러붙는다. 하루에도 이 꼴을 몇번씩 보고 나면 흥정하기가 싫어서 릭샤는 쳐다도 안 본다. 그렇게 온종일 대기오염, 소음공해, 교통체증, 관광객 바가지, 소매치기 걱정에 시달리고 나면 집에 들어와선 여행이 아니라 퇴근이라도 한듯 피곤하다. 아니, 내겐 퇴근보다 더 힘들었다.
간신히 3일을 버티고 다음 도시인 찬디가르로 향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버스 예약앱이 먹통이라 세시간을 붙잡아서 겨우 버스표를 예매했다. 인도는 기계도 제멋대로다. 이미 녹초가 된 상태니 세계문화유산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 지옥같은 도시를 떠나고 싶을 뿐이다. 찬디가르는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계획도시다.'그래도 거긴 뭐라도 다르겠지'라는 실낱 같은 희망만 붙들고 있었다.
당장 내가 죽겠으니 봐도 눈에 들어오는게 없다.
5.
그리고 문제가 터졌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릭샤를 잡아야 되는데 릭샤기사들이 지도를 보여줘도 알아먹질 못한다. 심지어 내가 탔는데도 다른 기사들이랑 얘기해느라 출발을 안한다. 급하다고, 빨리 가줄수 없냐고 얘기해봐야 들은체 만체다. 3분을 기다리다 결국 반대쪽 차선으로 무단횡단해 릭샤를 잡았다. 워낙 급하다보니 가격은 협상할 생각도 못했다.
숙소에서 가방을 챙겨나왔다. 그래도 아직 30분의 여유가 있다. 다시 릭샤를 잡는데 이번엔 일곱명의 기사들이 날 둘러싼다. 적정가격의 세배를 부른다. 두어번 협상을 하고 우버를 부르려 하면 다른 기사가 내 어깨를 감싸며 자기 릭샤로 데려간다. 가격을 부르면 알수없는 고갯짓을 한다. 그래놓고 릭샤가 출발하기 직전에 다시 가격을 물어보면 또 바가지 가격을 부른다. 화를 내며 내리면 또 다른 기사가 붙는다. 이 과정을 다섯번을 반복했다. 살면서 단 한번도 사람을 앞에 두고 소리를 지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보는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타인의 곤경을 어떻게든 이용해먹으려는 그 모습이 시체를 뜯는 하이에나 혹은 대머리수리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다른 곳에서 릭샤를 잡았다. 적정가격의 1.5배지만 도저히 흥정할 기력이 없다.
간신히 탑승지점에 내렸는데 버스가 없다. 출발시간 2분 전이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해봐도 인도억양이 너무 심해 대화가 안된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되냐는 간단한 내용을 얘기하는데 5분이 걸렸다. 1km를 걸었다. 간신히 버스를 탔을때 나는 완전히 탈진상태였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매연으로 토할것 같고 등받이에 기대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분명히 몸은 피곤해 죽을것 같은데 잠이 안왔다. 속에서 화가 올라와 잠을 잘 수 없는건 내 인생 처음이다.
버스는 새벽 2시에 도착했다. 인도의 장거리 버스들은 터미널을 사용하지 않고 길 한복판에 사람을 내려준다. 우버를 불러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주인은 여권을 잠깐 보더니 숙박이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고 물어보는데 영어를 못한다. 숙박예약앱 고객센터를 통해 통역을 부탁하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한다. 주인은 기다리라고 하고는 숙소 밖으로 10분간 자리를 비웠다. 그러고는 돌아와 날 잡상인처럼 쫓아냈다. 새로운 숙소를 알아보게 잠깐만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쫓아낸다. 새벽 세시에 길거리에 나앉았다.
6.
거리는 쥐죽은듯 조용하다. 야심한 밤중에 길거릴 떠도는 인도인들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들개들은 거리를 떠돌며 하울링을 한다. 호텔 계단에서 노숙하던 개들은 내가 입구에 다가가면 짖는다. 노숙할 수는 없으니 일단 근처의 숙박업소를 죄다 뒤진다. 로비에서 자고 있는 주인을 깨워서 물어보면 전부 외국인은 안된다고 거절한다. 일곱번쯤 퇴짜를 맞았을까, 전화를 받았다. 숙박앱이다. 인근의 외국인 숙박이 가능한 호텔을 찾았단다. 10km 떨어져있고 원래 계획의 세배가 넘는 가격이다. 대안도 없고 이쯤되니 될대로 되라라는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다행히도 이번엔 퇴짜맞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는데 그때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뜬금없이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얼굴과 발만 씻고 쓰러졌다.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7.
네시간 자고 일어났다. 살 사람은 살아야하니 여행정보를 찾아봤다. 정보가 없다. 뭔가 이상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찬디가르는 처음부터 두개 주의 행정수도로 계획하고 만든 도시다. 지도를 보면 한칸이 가로세로 1km의 완벽한 바둑판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과정에 참여했을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계획도시라 살기 좋을지는 몰라도 관광객이 올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외국인이 관광하겠다고 세종시에 온 꼴이다.
찬디가르 지도. 각 바둑판은 가로세로 1km이고 각 섹터 호수로 불린다.
이 숙소에서 더 머물 수는 없으니 다른 숙소를 알아봤다. 택시로 30분, 버스로 1시간 거리다. 짐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20kg짜리 짐을 앞뒤로 나눠메고 걷는다. 햇볕이 뜨겁다. 거리는 델리보단 낫지만 여전히 지저분하다. 아무리 잘 계획된 도시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건 인도인이다. 델리만 벗어나면 된다던 내 환상은 무자비하게 박살났다. 간신히 정류장에 도착하니 노숙자가 엎질러져 있다. 죽은듯이 미동도 하지 않는 그의 곁을 파리들이 떠돈다. 문득 눈시울이 불거졌다. 누군가가 내게 속삭인다.
"도망쳐서 온 곳에 천국은 없어."
8.
그 후로 이틀을 앓았다. 특별히 아픈 데가 있진 않았지만 관절 마디마디가 늘어난듯 온몸이 무기력했다. 2개월 내내 쌩쌩했던 입맛도 잃었다. 인도가 싫어지니 인도음식까지 싫어졌다. 취향은 아니어도 먹을 만하던 커리들의 냄새만 맡아도 울렁거린다. 주변 식당은 온통 커리로 도배돼있다. 배도 고프지 않은데 굶을까 싶지만 어거지로라도 하루에 한끼는 먹기로 했다. 결국 30분 거리에 있는 KFC까지 걸어갔다. 소화기관이 망가졌는지 이 한끼도 소화가 제대로 안 된다.
9.
불을 끈 호텔방에서 내가 뭘 잘못했을까 돌아봤다.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인도에 온것 말고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럼 지금부턴 어떻게 해야될까. 사실 지금 힘든 것보다 앞으로 어떤 계획도, 희망도 없다는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당장 인도를 떠나긴 싫었다. 도망치고 싶진 않다. 최대한 빠르게 볼 것만 보고 나가자. 목표가 뚜렷해지니 오기가 생겼다. 인터넷을 뒤져 갈만한 도시들을 전부 찾아내어 지도에 찍어놓고는 모레 출발하는 열차표를 예매했다.
나는 그렇게 인도의 악몽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귀엽게, 전쟁"입니다. 세계에서도 사이 안좋기로 유명한 인도와 파키스탄이 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1월 1일 금요일 오전 7시 30분에 공개됩니다.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