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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Oct 18. 2019

"딸, 엄마랑 자유여행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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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유치원생과 패키지 관광객은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1.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을 입는다.

 2. 한 사람만 쪼르르 따라다닌다.

 3. 같은 반끼리 뭉쳐다닌다.


한 사람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그들


1.

 내가 이 사실을 발견한 곳은 청두의 솽류국제공항이다. 새벽에 인도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날 밤에 미리 도착했다. 목요일 밤이라 한적할줄 알았다. 웬걸,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의자를 몇개씩 차지해서 잠 좀 자려고 생각했는데 의자는 커녕 땅바닥에 나앉았다. 빈자리가 나오는지 매의 눈으로 째려봤다. 어르신들 한 무리가 일어나길래 잽싸게 자리를 차지했다.


 3분 정도 앉아있으니 여행객 한 무리가 또 우르르 몰려와 내 주변 벤치에 앉았다. 그제서야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공항에 있는 여행객의 대다수가 중장년층이다. 눈대중으로는 80%는 돼보인다. 몇몇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여행사 깃발을 하나씩 들고다닌다. 가이드다. 젊다. 여행객들은 벤치에 앉아 왁자지껄 여행분위기를 낸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 가이드가 그들을 불러 모은다. 한명씩 이름을 불러 인원을 체크한다. 이상이 없는지 깃발을 들고 출국장으로 향한다. 30명은 돼보이는 사람들이 두줄로 졸졸졸 따라나선다. 짝꿍이랑 손만 안 잡았다 뿐이지 영락없는 유치원 소풍이다.

줄줄이 가이드를 따라나서는 모습이 유치원 소풍을 연상케한다.


2.

 이런 패키지 여행 행렬을 볼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촌스럽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뭘 보러가는지도 모르는채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을 소비하는 취향없는 대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패키지 여행을 해봐서 안다. 관광버스 하나를 타고는 우르르 내려 랜드마크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한번 듣고 20분 동안 사진을 찍은 뒤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겠지. 식사는 여행사랑 계약된 식당에서 높은 확률로 별 맛없는 음식을 먹고 기념품도 가장 상업화된 거리에서 살거다. 정해진 일정표를 따라 맘편히 가이드만 따라다니는 여행을 마치고 남는건 랜드마크 앞에서 찍은 인증샷 뿐이다. 난 지금도 베트남 일일 패키지 여행으로 들어간 동굴의 이름을 모른다. 듣긴 했는데 바로 까먹었다. 내가 찾아본 정보가 아니니 기억에 남질 않는다.


 하지만 '촌스러운' 여행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촌스럽다고 해도 될까? 내 말은, 패키지 여행이 그들의 자율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냔거다. 그들은 자유여행의 선택지가 지워진 상황에서 남은 유일한 대안인 패키지 여행을 선택했을 뿐이다. 배낭여행을 떠나는 부모님을 상상할 수 있는가?


 장년 세대를 5060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중국 장년층은 1950년대 초반부터 6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났다. 당시 중국은 선진국은 아니지만 아시아 유일의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세계 주요 국가 중 하나였다. 그랬던 중국이 대약진운동(1958~62)과 문화대혁명(1966~76)으로 절단나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중국 장년층은 이때 유년기를 보냈다. 단순히 못 사는 정도가 아니고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는걸 바라보며 자랐다. 청년이던 1978년에 개혁개방이 시작됐다. 그 이래로 시작된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초고속성장으로 국가는 G2로 올라섰다. 이들보다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은 세대, 전세계적으로도 없다.

문화대혁명에서 G2까지, 그들은 한 인생에서 모든걸 겪었다.

 세상엔 중국만 있고 중국이 무조건 제일 좋은 나라인줄만 알았다. 제도도 막혀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다. 그러다 50줄을 넘겨서야 겨우 '우리도 외국땅 한번 밟아봐야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히 여행정보를 직접 검색하고 현지에 가서 외국어로 소통하는 여행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들에게 자유여행의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이들이 그런 기력과 능력을 갖췄다고 가정해도 문제다. 리장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찾고 있었는데, 50대의 어르신이 한분 계셨다. '이런 분도 계시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호스트이길래 망정이지 만약 그분이 게스트라면 받아줄 2030의 호스트가 몇이나 있을까 싶다. 배낭여행자들의 숙소, 호스텔은 아예 이름부터 젊은이들을 위한 숙소(youth hostel)다. 장년층이라고 숙박을 거절받진 않겠지만 자기 아들딸뻘 애들만 있는 숙소에서 그들이 맘편히 쉴 수 있을거 같진 않다.

중년을 위한 유스호스텔은 없다.


 취향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에 대한 취향을 갖기에는 그들의 시대가 너무 빨랐다. 인간은 자신의 시대를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여행방식을 촌스럽다는 한마디로 요약하는건 온당치 못하다.


  그들이 자리를 떠 휑해진 벤치가 조용하다.

  지인의 사연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자유여행 오니까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걸 여지껏 모르다가 우리 딸 덕분에 이제서야 알게 됐네."
 엄마가 말했다. 바르샤바의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고기를 썰고 있었다. 폴란드에 도착한 이후로 엄마 입에 찰싹 붙어있는 말이다.
 "그럼, 여행은 자유여행이지. 그러니까 엄마도 이제 자주 다녀."
 한두번 듣는 얘기가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엄마의 입가에 어린 멋쩍은 웃음의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쇼팽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으니 인생의 절반도 넘게 사랑해왔다. 소파에 앉은 엄마와 함께 배경으로 깔리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우리집의 익숙한 전경이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수백번도 넘게 들어온 그 음악은 이제 곡을 외워버릴 지경이다.

 엄마는 언젠간 쇼팽이 태어난 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꿈을 꿨다. 그 당시엔 문자 그대로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 냉전해체와 우리정부의 북방외교가 맞물려 수교야 맺었다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어찌 한때나마 공산국가였던 땅을 밟을 수 있겠는가. 89년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었으나 여전히 해외여행, 심지어 동구권 여행은 요원한 일이었다.
쇼팽과 그의 나라 폴란드는, 엄마에게 있어서 닿을 수 없는 꿈이었다.
 그렇게 안되겠거니 마음에 묻어뒀던 꿈을 이룬 순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50이 넘은 나이에서야 딸과 함께 우상의 나라의 땅을 밟은 엄마는 공항을 나서며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외쳤다. 환하게 웃는 엄마의 모습은, 내가 앨범 속에서 봤던 싱그러운 소녀를 닮아있었다.

 이제는 엄마의 멋쩍은 미소의 의미를 안다. 엄마는 해외여행을 몰랐던게 아니라 못했던 것이고, 여전히 자유여행은 엄마 혼자서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그렇다고 매번 딸의 여행에 붙어 다닐 수는 없으니 멋쩍은 미소만 지은게다. "엄마도 자주 다녀"가 아니라 "나랑 같이 가면 되지"라고 대답했어야 됐는데.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

 쓰다보니 엄마 생각이 난다.
 전화기를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나랑 자유여행 갈까?"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연을 들려주신 GY님께 감사드립니다.

※ 이미지 출처

1. 썸네일 : 하나투어 광고 "엄마愛발견"

2. 유치원생 이미지 : go2nz.co.kr

3. 패키지여행 이미지 : 딴지일보

4. 유치원 소풍 : getabout.hanatour.com

5. 문화대혁명 : 오피니언 뉴스, "[문화대혁명①] 광기와 혼란의 시대"

6. 베이징 CBD : www.chinadaily.com.cn

7. 유스호스텔 : stocksy.com

8. 쇼팽, 바르샤바 :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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