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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섬세 Aug 18. 2021

캐나다로 가려고 합니다

"네가 왜?"

회사에 존경하는 사람이 사라졌을 무렵, 퇴사를 결심했다. 나는 해외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어디가 좋다며? 어디 가서 살면 참 좋겠다.' 이렇게 유학을 꿈꾼 경우가 나는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가족과 함께 어쩌다 유학을 갔다. 그때 더 성실하게 공부했다면 다르게 살았을 수도 있겠다.


어느 날 눈을 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니다.' 

다시 한국을 나가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그 날 불현듯 '지금 움직여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어도 20대에 하고 싶었던 것들은 다 해봤다고 생각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이지만 크고 작은 굴곡의 끝에 이렇게 같은 매일을 살기 싫었다. 평범한 삶을 꿈꿨는데 평범해지기가 더 힘들었다. 유학을 가서 특별해지고자 했던 게 아니라, 꾹꾹 눌러 놓았던 꿈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팀장님께 눌러 담았던 이야기를 말씀드리던 날, '너도 가는구나' 하던 그 공허한 눈빛을 기억한다. 국장님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정된 퇴사 날짜. 퇴사를 결심하기까지는 구만리였는데 입 밖으로 내뱉으니 일사천리였다.


동료들에게 퇴사의 이유를 밝혔을 때, "잘됐다" "그래, 얼른 가라." "넌 잘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확신이 없었다. 현실에는 실패가 98%고 성공은 2%라는데, 내가 내 생각대로 유학하고 취업에 성공하며 이민까지 서른의 시작에 가능할까. 


그리고 다른 산이 남았다. 오래 사귄 남자 친구였다. 그는 내가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퇴사 후 아이엘츠를 공부할 때까지도 그는 내가 이직해서 가지 않고 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없이 말했음에도, 우린 대척점에 서 있었다. 떠날 사람과, 떠나지 않을 사람. 슬프게도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캐나다로 오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VFX 회사들이 많았고, 이민자에게 항상 문제인 비자문제가 제일 빠르게 해결되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과 호주는 이민의 문을 닫고 있었고, 캐나다는 더 많이 열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해외 유학을 다녀오거나,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 캐나다 만큼은 다시 살라고 해도 다시 가고 싶어. 괜찮아. 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case by case여도 '괜찮다' 라는 말이 생각보다 한국 밖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서 한번도 겪어보지 않고도 캐나다였다.


캐나다에서 토론토라는 지역을 선택하는데는 회사가 가장 컸다. 1) 회사와 내가 원하는 잡 포지션이 많은 곳, 2) 내 학과가 PGWP(Post-Graduation Work Permit)를 지원해주느냐로 선택했는데, 밴쿠버와 몬트리올은 PGWP가 안되거나 짧았고(1년) 토론토의 센테니얼 컬리지는 2년+코옵 과정에 3년 워킹비자가 나왔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토론토에서도 어떤 학교를 갈 건지, 어떤 학과를 갈 건지 많이 고민했는데 한국형 학벌주의에 쪄든 사람이라 대학원 이야기가 가족들 사이에서 또 나왔다. 다 지나고 보니, 학벌은 그저 한 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인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연구과 교수에 따라 달라질테다. 그저 나는 학문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니, 다시 컬리지였을 뿐이다. 미국이었다면 또 VFX 관련학과의 대학원을 갔을지 모르겠다. 돌아보니 실용에 기반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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