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음악 그리고 믹스테이프

나의 오디오 디바이스 연대기

by Minimum

아침에 일어나면 잠이 덜 깬 상태로 라디오를 켠다. 운동할 때, 운전할 때, 요리할 때, 글 쓸 때, 늘 버릇처럼 또는 의식처럼 TPO에 맞는 적절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카페인이나 니코틴 중독처럼 음악과 일상 아니 인생을 별개로 생각할 수가 없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초등학생 꼬맹이 시절, 팝송과 영화 마니아였던 오빠의 영향으로 팝송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지구 반대편의 신비로운 음악은 꼬마 소녀에게 몽상과 낭만, 동경을 불러일으켜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AFKN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 방송해주는 빌보드 차트 방송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고 새벽에 방송하는 뮤직비디오를 보기 위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1년에 한 번 그래미 시상식이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가 방송될 때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총출동하여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황홀하게 지켜보며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듯 행복해했다.


1980년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매체는 LP와 카세트테이프였다. CD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집에는 오빠가 수집한 수많은 LP가 있었는데 노을 지는 어스름한 저녁 오디오 시스템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멋진 음악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빌리 조엘의 'Leave a tender moment alone', 티어스 포 피어스의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 조지 마이클의 'Kissing a fool' 같은 노래들...

오디오는 거실에 있었기에 각자의 방에서는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필자가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가 출시되었는데 그것은 청년들에게 가히 기적의 선물과도 같은 디바이스였다. 왜냐하면 그 신문물로 인하여 좋아하는 테이프를 복사하거나 나만의 컬렉션으로 믹스테이프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출시된 대*전자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월플라워>에는 주인공 찰리(로건 레먼)가 친구인 샘(엠마 왓슨)에게 믹스테이프를 전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절 우리 주위의 친구들도 서로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복사해준다던지 자신만의 컬렉션으로 믹스테이프를 만들어서 선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실 믹스테이프를 물질적인 값어치로 따진다면 공테이프 가격에 지나지 않겠지만 만든 사람의 정성과 마음을 고려한다면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의미 있고 소중한 선물이었다. 물론 선곡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려 책장에서 먼지를 고이 뒤집어쓰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1990년대부터는 CD가 보편화되면서 가정용 오디오 시스템도 바뀌었고 휴대용 음향기기도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에서 휴대용 CD플레이어로 교체되었다. 초창기에 출시된 휴대용 CD플레이어의 경우 평평한 바닥에 놓고 평행이 잘 유지되어야만 재생이 되었는데 기술이 발전하여 휴대해도 재생에 문제가 없는 'Anti-shock' 기능이 있는 기기가 나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시절 나의 큰 가방에는 가뜩이나 책과 화장품 등 짐도 많은데 CD플레이어에다 CD 케이스(CD 10장이 족히 들어가고도 남는)까지 들어 있었으니 그 무게의 사악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일상 음원 중독증(?)을 앓고 있던 나에게 휴대용 음향기기는 외출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제주도 PLAY K-POP 에 전시되어있는 CD플레이어와 MP3플레이어


2000년대부터는 모든 음악이 디지털 음원화 되어 작디작은 mp3 플레이어나 아이팟 하나면 CD 수십 장 분량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마저도 사라지고 지금은 스마트폰의 앱 하나로 세상의 모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부피 큰 CD 플레이어와 CD 케이스가 들어있던 20년 전 내 가방 속 모습을 누군가 사진 찍어두었다면 훗날 생활사 박물관에 전시될 웃픈 한 장면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세상도 사람도 변했고, 음악을 담는 매체도 재생해주는 디바이스도 이렇게나 다이내믹하게 변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음악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아름답게 빛나고 우리의 영혼을 울리고 정화시켜준다. 지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직전 듣는 한 두 곡의 노래는 하루 동안의 피곤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무한한 행복감을 준다.


오늘 밤엔 어떤 음악을 타고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