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O번 호출하신 분!
90년대 중후반 나의 대학시절은 아날로그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디지털 시대가 태동하던 과도기였다. 20대 청춘들 대부분이 삐삐는 갖고 있었지만 핸드폰은 시티폰을 거쳐 90년대 후반에야 저변이 넓어지기 시작했기에, 나의 학창 시절에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카페나 술집 등 밖에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싶을 때는 가게 전화번호로 삐삐를 치거나 음성 메모를 남길 수 있었다. 이동통신이 진일보한 덕분에 선배 세대에 비해 밖에서 서로 연락하기가 용이해져서 상대방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영문도 모르고 바람맞는 경우는 드문 일이 되었다. 다만, 한 가게의 전화번호로 여러 손님들이 삐삐를 치다 보니 쉬지 않고 위와 같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기에 가게 안은 다소 시끄럽고 산만했던 기억이 난다.
커피값이 비교적 비싸고 테이블마다 다른 번호를 가진 전화가 놓여있는 카페들도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훨씬 수월하고 우아하게 친구와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카페를 가게 되면 얼음잔과 함께 서빙되는 닥터 페퍼나 밀러 병맥주를 앞에 두고 특별한 용건 없이 괜스레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연락을 돌리기도 했다.
저녁 술자리는 좀 이야기가 다른데, 삐삐가 대중화되었다고 한 들 100%의 학생들이 모두 다 갖고 있지는 않았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 앞 서점 사장님께서는 매일 서점 바깥 벽에 새하얀 대형 모조지를 붙여 놓으셨는데 누구든 동아리나 과, 소모임 등의 술자리가 열리고 있는 시간과 장소를 써놓으면 술 생각 나는 사람들은 그 메모를 보고 하나둘씩 모여들곤 했다. 지금은 서로 연락하기가 너무도 쉽고 메시지의 양도 과도하게 많아져서 공해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엔 여럿이 번개모임을 하기 위한 소통 방법 (지금의 그룹채팅 등과 같은)이 마땅치 않았기에 이토록 아날로그 감성과 낭만이 물씬 풍기는 방식으로 소통을 했더랬다. 전화통화와 삐삐 호출, 음성메시지 정도를 제외하고는 지금처럼 다양한 SNS 플랫폼이나 메신저가 없었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분을 쌓기 위해서는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그래서 사람이 그리운 청춘들은 거의 매일 여기저기에서 술판을 벌였고 신입생들은 매일 이어지는 지나친 음주 모임이 버거워 도망다니기도 했다.
그럼 이제 그 시절 술자리로 돌아가 술상 위를 좀 관찰해보자. 주종은 피쳐나 500ml 잔에 담겨 나오는 생맥주, 빨간 라벨의 진로 소주, Green 소주, 그 이후 출시된 다소 낮아진 도수의 참이슬, 산소주 그리고 레몬소주(유사품 체리 소주, 수박 소주, 파인애플 소주 등) 등이 주류였다. 졸업 후 회사에 취직을 하고 나서 위스키, 보드카, 테킬라 등 다양한 주종을 접하게 되었지 학생 때는 무조건 소주와 맥주였다. 그 중 레몬소주는 참이슬과 같은 낮은 도수의 소주가 출시되기 전 20도가 넘는 독한 소주에 거부감이 있는 여성들이 선호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소주에 레몬즙도 아닌 레몬맛 가루, 토닉워터 또는 사이다를 넣고 섞은 일종의 칵테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안주는 어땠을까? 맥주 안주는 치킨, 골뱅이, 감자튀김, 어포류, 과일, 마른안주 등 이었고 소주 안주는 알탕, 햄치찌개(햄을 넣은 김치찌개로 부대찌개와 비슷), 어묵탕, 파전, 김치전 등 현재의 메뉴와 별반 다를 것 없다. 그중 요즘 술집 메뉴판에서 사라져버린 추억의 안주가 몇 가지 있는데 일명 쏘야라 불리는 소시지 야채볶음과 과일화채다.
쏘야는 칼집 낸 비엔나소시지, 양파, 당근, 피망 등에 케첩과 칠리소스(?) 등을 넣고 볶아낸 요리였고 과일화채는 알다시피 잘게 썬 과일에 얼음, 우유, 사이다를 넣고 섞어 시원하게 떠먹는 안주였다. 화채에 넣는 과일은 여름철 수박을 제외하고는 생과일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고 가성비 좋은 통조림 후르츠믹스를 넣었는데 그 안주를 시킬 때면 요즘 밀크티에 넣어먹는 코코넛 펄 비슷한 투명하고 네모난 젤리를 골라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쏘야나 화채를 일반 가정에서는 여전히 해 먹는 음식일런지는 몰라도 술집 메뉴판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1998년까지 새벽 2시 영업제한이 있었다. 방황도 고민도 많았던 시절, 단골 술집 사장님의 배려로 셔터를 내리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어울리던 시절이 가끔 사무치게 그립다.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요즘 들어 나는 생각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즉 디지털이 만연하기 전에 청춘을 보낸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이었는지를...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법이 지금처럼 온•오프라인에 만연하지 않았기에 그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어야 비로소 끈끈한 연대감이 생겼다. 타인에게 닿기 위해 내 번호나 음성메시지를 남기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한 시대였지만 돌아보면 그 기다림은 지루하고 힘들기는커녕 마냥 설레고 행복했다. 답이 빨리 오면 반갑고 행여 늦거나 오지 않더라도 아련한 여운이 남았다.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직진보다는 먼 길을 돌아 우회해야 했다. 번거롭고 수고롭고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한번 그렇게 이어진 유대는 무엇보다 견고했다.
모든 것이 막막하고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가열차게 방황하고 후회 없이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 시절, 헤아릴 수 없이 퍼마신(?) 술과 그들과 함께 쌓은 어마어마한 시간들이 내 영혼의 3할 이상쯤은 성장시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