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을 키운지 햇수로 6년차다.
어릴 때는 강아지나 토끼, 병아리, 햄스터 같은 동물을 꾸준히 키웠는데 (심지어 병아리는 닭이 될 때까지 키웠다!) 형제들이 점점 커가던 초등학교 이후부터는 부모님도 벅찼는지 어떤 동물도 키우지 않았다.
그러다가 6년 전, 아빠가 퇴근길에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갑자기 돌아왔다. 강아지는 해맑게 웃으며 집안으로 뛰어들어왔고 우리 가족들은 혼비백산해서 이리저리 도망갔다.
강아지가 무서운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정말, 그토록 익숙한 집안에 낯설고 작은 생명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것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아빠는 그 강아지와 아는 사이였다. 아빠 직장 근처 아파트에서 이전 주인이 키우다가 이사를 가야 한다며 유기해버린 강아지.
이후로 뻔질나게 아빠 회사에 드나들며 밥을 얻어먹었다는데, 며칠 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난 모습이 너무 야위어 있었다고 했다. 놔두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아 그 길로 아빠는 강아지를 차에 실어 데려왔다.
긴 털에서는 계속 계속 흙이 떨어졌고 나는 아이와 인사할 새도 없이 아빠가 사온 강아지용 샴푸로 아이를 목욕 시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러면 안된다더라. 집에 온 뒤로 며칠간은 본인의 냄새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적응을 잘한다고)
두 번이나 목욕을 시키고 나서야 강아지 몸에서는 흙이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준 뒤엔 리드줄을 길게 풀어 문고리에 묶어놨다. 그땐, 아무도 없는 집에 강아지가 멋대로 돌아다니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생후 2년이 좀 지났을 거라던 강아지는 7-8살 정도의 중년이 되었고 왕의 자리를 탈환한 것처럼 우리집 터줏대감으로 세상 누구보다 당당한 견생을 살고 있다.
처음 집에 왔을 때, 심바는 이마 한 가운데에 자그마한 피딱지가 있었다. 누가 딱밤이라도 때린 건지, 아니면 어디엔가 부딪혔던 것인지 그 모습이 너무 짠해서 딱지가 저절로 떨어지기까지 혹시나 아이가 아플까봐 매일 마음을 졸였다.
강아지의 몸에 상처가 난 모습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는데, 작고 연약한 생명을 본인 손으로 학대하고 괴롭히는 인간들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은 직장생활을 하며 말라가던 인류애를 전소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 뒤로 나는 학대 받거나 유기된 강아지들에게 기부를 시작했다.
적은 돈이었지만 치료가 필요한 강아지의 병원비를 지원했고, 사설 보호소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사료나 간식비를 댔다. 복날이 다가오면 비윤리적으로 강아지를 도살하는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자행됐는데, 이를 저지하고자 몸으로 뛰는 동물보호단체에 후원금을 기부했다. 심하게 학대 받고 안락사 위기에 처한 강아지를 구조하는 비용을 모금하기도 했고 가끔은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나 돌고래, 북극곰 같은 동물들에게 가는 후원금을 선뜻 내기도 했다.
기부금을 내는 그 순간의 나는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한번에 느꼈다.
그 중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바로 무력함이었다. 기부를 해도 학대 받는 강아지는 여전히 많았고 유기된 뒤 시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다가 안락사가 되는 개들을 지켜만 봐야 했다.
동물은 여전히 상대적 약자였고, 이용 당하는 객체였으며 공감을 일으키기엔 사람보다 뒷전인 존재였다. 인간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인간임이 창피할 때가 많았다.
인생을 살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부정적인 감정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나는 무력하다고 해서 기부금을 멈추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는 이 무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더욱 무언가를 하기로 작정했다.
단기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내 행동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돈과 수익을 좇지 않고 꼭 해야겠다라고 느낀 일을 구상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사설 보호소를 차리는 일이었다.
동물들이 서로 해치지 않고 안전하게 놀 수 있고, 비와 눈이 와도 젖은 털이나 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하루의 끼니를 싸우지 않고 풍족하게 즐길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있을 법한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특별한 마음으로 긴 시간을 가지고 준비하면서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그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고 배웠다. 누군가는 웃는 표정으로, 누군가는 애절하고 절절한 말 표현으로, 누군가는 말없는 포옹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나의 사랑 표현은 내 능력과 관심으로 상대방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는 것이다. 이제껏 살아온 삶과 비교해 너무 다를지라도, 그래서 두렵도록 낯설지라도 가고자 하는 길이 더 행복하고 깊이 있는 삶이라면 선뜻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혼자서는 어려울 지 몰라도 둘이라면 약간의 용기가 생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