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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민 Jan 12. 2024

부디 작별하고 싶은 마음

프랑스 메디치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 <작별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서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을 먼저 접하고 책을 펼쳐서일까. 

인물들의 세심한 배려와 애정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차 없이 혹독하고 잔인한 상황들 속에서도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심하고 애정 어린 시선과 태도를 잃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완전히 낯선 타인인 노인을 염려하면서도 그의 불편함을 의식해 끝끝내 다가가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는 경하. 

본인의 안전이 위태롭고 다급한 상황에서조차 손가락을 고문당하고 있을 인선을 생각해 그에게 전화할지 문자를 보낼지 고민한다. 애초에 죽으려고 유서까지 써놓은 경하가 매서운 눈을 뚫고 인선의 집까지 찾아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앵무새라는 한 생명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닐까. 

눈밭에서 얼어 죽을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다다른 인선의 집에서 갑작스레 전기와 물이 끊어져도, 단 한 번도 인선을 탓하거나 그에게 분노를 품지 않는다. 

남의 새라 사랑한 적 없다면서도 죽은 아마 앞에서 눈물 흘리며 최선을 다해 새의 마지막 길을 살뜰히 챙겨준다.


또 다른 한편에는 습도에 민감한 앵무새들을 위해 가스레인지를 바꿀 정도로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는 인선이 있다. 

경하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무려 100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고 조용히 작업한 그. 

경하와의 출장에서 늘 묵묵히 기다려주고 일을 진척시킨 일등공신.


인물들의 바로 이런 면모들 때문에 작가는 이 소설을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표현한 게 아닐까.


이 작품을 읽기 쉽지 않았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놀랄 만큼 뛰어난 묘사력 때문이다. 

봉합한 인선의 손가락 신경을 되살리기 위해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손가락을 반복적으로 찔러대는 장면에서도, 경하가 눈보라 속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을 때도, 소설 속 장면들이 지나치게 생생한 탓에 읽는 내내 신경이 곤두서고 긴장을 늦출 수 없어 괴로웠다. 


게다가 과거와 현실, 꿈과 환상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전개를 따라가느라 쉴 틈이 없었다.


간신히 책을 완독하고 나서야 '과연~한강 작가의 글이 가진 힘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 실제에 버금가는—오히려 실제를 뛰어넘는!—그의 상상력과 묘사력에 내가 압도당했음을 깨달았다. 

눈송이의 결정체 하나 놓치지 않고 세밀히 묘사하는 작가의 치밀함이란!


이 책이 겨울, 특히 눈과 어울리는 책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하얗고 깨끗하고 고귀한 눈, 기존에 내가 가졌던 눈에 대한 이미지가 흐려지고 시체의 얼굴을 뒤덮은 눈, 추위로 무감각해진 경하의 얼굴에 닿던 눈, 상처를 아프게 스치던 눈으로 치환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무척 속상하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부디 그 이미지들과 작별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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