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명 네이밍의 비하인드
내 이름은 재스민 리.
'라이크 제니~~'도 아니고 웬 재스민 리?
그다지 독특하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은 이름이라서 굳이 저자 이름 작명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까, 누가 궁금해 하기는 할까 싶다. 그럼에도 내 책 브랜딩(?)의 기원이기도 해서, 짧게나마 설명해보려 한다.
사실, 나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한자 이름 석자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제법 마음에 들었다.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면,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싶었다. 그게 작가명이든,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는 공식 이름이든. 그럼에도 한국어 이름이 아닌 영어 이름을 작가명으로 정한 이유는 단순히 내 한국어 이름이 흔해서다.
브랜딩의 '브'자도 모르지만, 네이밍에 있어 가장 큰 원칙은 '흔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이름은 안된다’임을 (상식선에서)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기 한참 전부터 이름에 대한 고민, 정확히는 번역가로서의 활동명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도 했다. 한국어 이름에 대한 애착이 매우 컸지만, 성도, 이름도 모두 흔하므로 개명을 해야 할까? 아니면 따로 필명을 만들어야 할까? 오래도록 망설이고 고민하기를 되풀이했다. 한번 바꾸면 다시는 되돌릴 수없을 것만 같은 부담감을 느껴졌기에, 나를 대표하는 간판이자 내 정체성과 다름없는 이름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언젠가 독서 모임에서 어느 여행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나의 이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듣더니 “이름이 흔하고 이미 업계에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동명이인이 있다면, 경력이 더 쌓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활동명을 바꾸는 게 좋다”며, 본인도 동명이인 때문에 필명을 지어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바꾸고 나서 진작에 바꿀걸, 후회했다고 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들으니 하루빨리 활동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름을 바꿔야겠다, 큰 마음먹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SNS 팔로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제 이름이 너무 흔해서 고민이에요.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활동해야 할까요?"
'네', '아니요'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주며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뜻밖의 반응을 얻었다. 한국어 이름 그대로 사용하라는 의견이 과반수였다.
흐음... 뭐지, 이 반응은?
아무래도 번역가 통역사라는 직업은 신뢰가 중요한 직업이다 보니 한국어 실명에 많은 표를 던진 게 아니었을까, 가 나의 개인적인 해석이다.
그렇게 설문 결과를 반영해 다시 이름 변경 계획에 대해 무효화 선언을 하려던 찰나.
지인이 내 이름 고민 포스팅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그냥 자스민 리 하면 안 돼?"
(참고로 그는 나의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내 영어이름이 Jasmine Lee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럼 그냥 심플하게 영어 이름으로 할까? 굳이 개명하지 않아도 되고, 이미 나를 Jasmine으로 아는 사람도 꽤 많고.
내가 처음 Jasmine이 된 건 아주 오래전, 나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Jasmine은 아마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제법 익숙한 영어 이름일 것이다.
자스민 공주를 좋아해서 자스민이 된 건 아니고, (디즈니 공주들 중에는 자스민 공주가 제일 마음에 드는 캐릭터이긴 하다. 어쩌면 나와 동명이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애착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지만ㅎㅎ)
어릴 적 미국에서 살던 시절, 처음 삼촌네 집에 놀러 갔다가 얼떨결에 삼촌이 지어준 이름이다.
"지민이는 Jasmine 아니야?"
내 한국어 이름 '지민'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는 Jasmine이란 이름을 제안받은 이후로, 나는 미국 생활 내내 이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할 때도 영어 이름이 필요할 때마다 줄곧 Jasmine을 썼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친구들은 미국에서 살다 온 나를 Jasmine이란 애칭으로 부르곤 했다. 그리고 졸업 후, 이를테면, 나의 첫 직장이었던 어느 외국계 회사에서 일할 때도 이 영어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 당시 친한 직장 동기들은 나를 "스민아~"하고 부르기도 했다 (Jasmine에서 첫 글자Ja를 뺀 애칭).
발음을 많이 굴리는 사람은 줴~스민~,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사람은 쟈스민, 또는 자스민.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발음으로 불려 왔다.
그렇게 나는 Jasmine이란 영어 이름을 다시 살리기로 한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이미 한국어 이름으로 오랜 기간 활동했기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영어 이름을 내세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직접 에세이를 독립출판으로 만들면서 다시 이름에 대한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 첫 공식 저서에는 확실히 Jasmine이란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알리자!
직업이 직업인지라, 번역가인 내게는 외래어를 마주하면 그것을 공식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국어 표기로 바꾸는, 이른바 ‘음차‘하는 나만의 사소한 습관이 있다.
국어 국립원 사이트에 들어가 외래어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한글 표기를 제안해 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번역 중에 만난 외래어를 의미로 옮기는 대신, 발음 그대로 살려 옮기고 싶을 때 요긴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문득 왜 이제껏 Jasmine이 자스민인지, 쟈스민인지, 제스민인지, 재스민인지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왜 그동안 한 번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책을 만들며 표지에 들어갈 저자명을 궁리하다 보니, 세상에 처음 선보일 내 이름의 공식 표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어 국립원 사이트에 들어가 Jasmine Lee를 입력해 보니, 표준 표기가 '재스민 리'라고 했다.
바로 인터넷 검색 창에 쳐보니 쟈스민 리나 자스민 리(국회의원 이자스민)는 종종 보여도, 다행히 아직까지 '재스민 리'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공식 저자명을 자스민도, 쟈스민도, 제스민도 아닌 '재스민 리'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어 이름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 켠에 조금 남아있던지, 어느 날,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한 지인에게 토로했고다. 그리고 그로부터 돌아온 답변.
"가수 존박이 한국어 실명을 사용했다면 지금처럼 영어 잘하는 교포 느낌이 났을까요? 존박의 한국어 이름보다 존박이 훨씬 영어 잘해 보이잖아요."
그렇게 확신의 답변을 받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내 이름은 재스민 리. 나는 재스민 리다.
그리고 최근 알게 된 사실.
알고 보니 같은 업계에서 내 한국어 본명과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동명이인을 넘어 동명삼인, 아니 동명사인까지 있었다는...! 생각보다 더욱 흔한 이름이었다.
(대학원 동문 소식 담당자에게 이름 수정을 요청했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대학원 동문만 그렇게 같은 이름인 사람이 많은데, 어쩌면 대학원 동문이 아닌 동명오인, 동명육인이 있을지도…)
역시, 영어 이름으로 활동하기로 마음먹고 재스민 리란 이름으로 책 내기를 잘했다.
아직까지 저자, 번역가 ‘재스민 리’로 검색되는 사람은 나 한 명뿐이다.
앞으로도 나의 책들이 '재스민 리'라는 나의 이름을 널리 알려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네이밍 고민의 과정을 툰으로 정리해봤어요!
올해 출간을 준비 중인 에세이 《오 마이 작가님! 번역가인데요, 혼자서 책을 내버렸습니다》(가제)에 대한 더 많은 소식은 인스타그램(@by_jasminelee)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