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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을 위하여

by 존치즈버거

번아웃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는 수식어를 번아웃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논의가 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방면의 창구에서 터져 나올 때쯤, 생체공학 연구로 유명한 사기업 하나가 체네 에너지 충전기를 출시했다. 팔목 안에 단자를 부착해야 했기에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한 기계를 사람들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우리가 휴대폰이야 뭐야?” 호기롭게 출시된 신제품은 그 성능을 증명하기도 전에 다채로운 ‘웃짤’의 희생양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던 중 기행을 일삼기 좋아하던 외국의 CEO 하나가 그 제품을 직접 자기 몸에 박아 넣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돈, 명예, 지위를 포함해 온갖 것을 다 가진 남자였음에도 틱톡 팔로워만큼은 아직 성에 차지 않은 탓이었다. 남자는 그 제품을 자기 몸에 박아 넣는 수술부터 충전을 하고 인간 생체 기능을 넘어선 여분의 에너지가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한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중년의 CEO는 100미터를 9초에 주파했고 대마초를 한 번에 10대씩 피워댔으며 양손으로 두 대의 피아노를 동시에 연주하는 묘기를 선보이는 뮤지션처럼 양손으로 코딩을 하기도 했다. 그 기묘한 에너지와 역동성에 사람들의 관심은 절로 집중되었다. 에너지 충전기를 문의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기업이 상장한다는 소식에 현금부자들은 보자기에 돈을 쌌다. 혹자들은 에너지 충전 기업 대표의 딸이 알고 보니 그 문제적 CEO의 8번째 와이프가 된다더라, 사실은 답보 상태의 영업이익을 보이는 CEO의 기업을 위한 하나의 쇼더라, 기계의 생체 인식은 다 뻥이고 저거 다 마약 해서 그런 거더라 같은 카더라를 만들어 내며 논쟁을 부추겼다. 사람들의 주목이 높아지자 종편 채널에서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하루 종일 에너지 충전기에 대한 이야기만 주고받았다. 그 사이 에너지 충전기를 이식한 사람들의 간증이 담긴 리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에너지 충전기의 유행 이후 번아웃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발길이 끊겼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들려왔다. 야근과 격무에 시달려도 충전만 하면 힘이 생겼다. 사람들은 잠에 들지 않았고 자기 계발이 가능했다. 늦은 밤과 새벽 시간에도 영어 학원을 비롯한 각종 학원업계가 탄력을 받았다. 일이 많아 연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가 되었고 술집들은 24시간 불야성을 이뤘다. 에너지 충전기 덕분에 경기가 좋아졌다는 자영업자들의 고백이 줄을 이었다. 에너지 충전기 대표도 더 이상 웃짤에 눈물 짜는 날이 없었다. 급기야 여당의 의원 하나가 에너지 충전기의 보조금 지원 정책을 입법하며 에너지 충전기는 24개월 약정만 하면 누구나 구매 가능한 보급품이 되었다. 혁신을 부르짖던 대기업 대표 하나가 복지의 일환으로 직원들에게 에너지 충전기를 무료로 인식해주었다.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는 전문가들의 노파심과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개수작이라 한탄하는 종교계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기업은 초유의 성과를 내보였다. 곧이어 선보인 아동용 충전기는 아이들의 학업 진작시킨다는 명목과 부모들의 불안 아래 미친 듯이 팔려 나갔다. 모두가 충전기를 부착한 시대가 왔고 이는 스마트폰의 보급률보다 높다며 또한 종편 패널들은 혀를 내둘렀다. 에너지 충전기를 부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 상대자로서의 고려 사항만이 아닌 기업 입사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충전을 위한 갑작스러운 전기 사용으로 국가에서 제재를 가하겠다는 으름장에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나 때는 말이야 충전기가 무슨 벌레라도 된다는 듯 저걸 어떻게 몸에 넣어요, 사람이 로봇도 아니고 충전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러면서 벌벌 떨고 그랬다고.”


“야만의 시대였군요.”


이제 막 충전 10년 차에 들어간 부장의 말에 파릇파릇한 신입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어 댔다. 이제 충전은 인간 사회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충전기를 달았냐는 말은 일종의 농담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충전이 몇 퍼센트 되었는지 였다. 회사를 출근할 때, 등교할 때, 모유수유를 할 때, 애인을 만날 때, 충전이 저하한 사람들은 불성실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미라클 모닝과 번아웃은 사어가 된 지 오래였다. 이제는 ‘미라클 차지(charge)’라는 이름의 에세이가 들불처럼 팔렸다. 충전한 힘을 그 어느 곳에도 쓰지 않고 충전 명상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력 루팡 혹은 충전 히피라고 부르며 갈등하기도 했다. 한창 반항하는 10대들은 SNS에 ‘내가 충전기인지, 충전기가 나인지 모르겠다’라는 슬로건의 밈을 만들어 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노조를 중심으로 한 충전 거부 사태로 사회가 소란스러운 사이 대학에서는 충전공학과와 충전 철학과 같은 신종 과가 생겨났으며, 학계에서는 충전의 인문학적 해석과 충전 거부가 미치는 경제적 영향, 충전 범죄, 충전으로 인해 발생되는 정신질환, 충전을 넘어선 인간적 해법 같은 여러 가지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충전하는 자와 충전하지 않는 자로 나뉘던 세계는, 100퍼센트 충전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어 서로를 반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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