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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춘기를 위한 지침서

(2) 데미안과 호밀밭의 파수꾼

by 존치즈버거

이제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나는 성인이 된 후에 이 소설을 보았어. 존재는 알고 있었지. 10대들에게 늘 추천되는 소설이었으니까. 너무 유명해서 읽지 않았는데도 이미 서너 번 읽어버린 느낌이 들었달까? 데미안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성장소설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지.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라는 데미안 속 한 구절을 듣는 만큼이나 너는 빈번하게 이 책을 추천받게 될 거야. 나 또한 그랬어. 주변에서 자꾸 보라니까 더 보기 싫은 마음이 들더라. 나도 남들 말 안 듣고 한 반항하기로 유명했거든. 전 세계적으로 7000만 부가 팔렸다는 경이로운 기록을 가진 소설을, 10대의 끝자락에 다다를 때까지 열심히 외면하다 20대의 어느 저녁 펼쳐 들었지. 심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대체 호밀밭의 파수꾼이 뭐지? 호밀밭에서 뭘 지키는 거지? 새들이 호밀을 쪼아 먹을까 봐 거길 지킨다는 건가? 게다가 그게 10대의 요동치는 내면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세상에나. 심드렁하게 책을 펼쳤지만 나는 곧 이야기 속에 완전히 몰입하고 말았어. 무엇보다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라는, 뭐랄까 어른의 세계에 잔뜩 혐오감을 드러내면서도 그 누구보다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고 제 발에 자꾸만 자기가 넘어지고 툭하면 덤비다 꼴좋게 얻어터지고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누구보다 통쾌한 복수를 일삼는, 누구보다 세상에 찌들었으면서도 아이들의 낙원을 꿈꾸는 이 소년이 정말 나와 같았거든. 당시에 나도 그랬어. 어른들이 보여주는 위선에 잔뜩 이골이 난 상태였지. 물론 난 20대였고 주민등록상 나이로는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인 상태였지만 마음속에는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가 매일 같이 절규를 내지르고 있었어. 어떤 날에는 잔뜩 어른인 채 하다가도 어떤 날에는 영원히 아이에 머물고만 싶은 혼돈의 나날들이었지. 그때 홀든 콜필드를 만난 거야. 내성적인 나의 10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탈을 일삼는 그 아이를 보며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말이야. 내가 홀든 콜필드다!라고 말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실제로 J.D. 샐린저는 자신이 홀든 콜필드라고 주장하는 독자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받기도 했다니까. 가끔 집 앞에 찾아오기도 했다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역이었겠지만, 그래도 굉장하지 않아? 내가 쓴 이야기 속 인물이 소설 밖 사람들에게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있었다는 게. 여전히 말이야.


그렇다고 홀든이라는 아이가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이기만 한 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아까도 말했지만 책 속에서 그 아이는 자주 얻어맞는 단다. 심지어 끝에 가서는 추운 겨울 내내 밖으로 돈 탓에 폐렴까지 걸려. 사립학교 기숙사를 박차고 뉴욕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이유도 다섯 과목 중 네 과목에서 낙제를 해 퇴학을 당했기 때문이야. 어차피 나올 거 얌전히 나왔으면 좋겠지만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의 도발로 싸움이 붙어 1차로 흠씬 얻어맞고 나온 상태야. 갈 데도 없으면서. 집에 가서 석고대죄하고 뜨끈한 이불 밑에서 여동생이랑 귤이라도 까먹으면 좋으련만 10대가 하면 안 되는 온갖 비행은 다 저지르고 다니지. 홀든 콜필드의 행실만 보자면 시쳇말로 ‘양아치’가 따로 없어. “이 녀석은 커서 뭐가 될라고.” 그 옆에서 혀를 차며 눈알을 굴릴 어른들의 얼굴이 선할 정도야.


“그럼 나도 사춘기 오면 이렇게 막살아도 되는 거야?” 내가 아는 너라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물어보겠지. 그럼 나는 말하겠지. “아니, 절대, 노, 네버!” 치밀하게 나를 속이며 위험을 감수하겠다면 말릴 수야 없겠지만, 모든 위험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지. 주인공들은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 스릴 넘치는 위험에서 발을 삐끗했을 땐 너의 존엄성이 다칠 수도 있단다. 그러면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이 폐허가 될지 몰라. 그런 경우의 수를 각오하고 무작정 막 살기엔 우리 생은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 그래서 내가 소설을 추천하는 거야. 소설만큼, 가보지 못한 다양한 생을 안락한 침대 위에 누워 간접 체험할 수 있는 통로가 어디 있냐 이 말이야!


홀든 얘 진짜 왜 이래,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아이의 섣부른 치기와 잔뜩 찌푸린 얼굴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야. 그래, 읽는 그 순간에는 도리어 완벽하게 와닿지. 입이 부르트고 눈에 시퍼런 멍이 들어도 뻗대고야 마는 건 용암같이 부글부글 끓는 분노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 분노의 시발점에는 홀든을 상처 입힌 어른들의 무신경함과 폭력이 있지. 어쩌면 그 녀석이 당하는 물리적 폭력은 그 아이가 당한 내면의 폭력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지. 홀든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어른이자 선생님도 홀든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해버렸거든. 홀든이 소설 내내 어른들을 씹어대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믿고 기댈만한 어른을 만나지 못한 탓이겠지.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화가 난 채로 사는 사람들 중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 어떤 사람들은 사실 매우 상처 받고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사람들이란 걸.


홀든은 자기보다 어린아이들에게 의지해. 남동생 앨리와 여동생 피비가 그 대상이지. 친구도 얼마 없는 외로운 홀든에게는 이 두 사람이 유일한 안식처와 같지. 물론 앨리는 백혈병으로 예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앨리의 죽음은 홀든에게 큰 영향을 주었어. 빨간 머리의 귀여운 남동생을 어른들은 지켜주지 못했어. 홀든은 화가 난 나머지 유리를 주먹으로 쳤고 아물지 않은 마음속 상처를 상징하듯 녀석은 여전히 손이 불편해. 주먹이 쥐어지지 않지. 왜 그런 캐릭터 있잖니. 아무렇게나 툭툭 말을 내뱉고 문제투성이인데도 어쩐지 가여워 어깨를 두드리고 싶은 사람. 홀든 콜필드가 그래. 아슬아슬한 뉴욕에서의 2박 3일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그 아이에게 차라리 집으로 가라고 권유하고 싶었는지 몰라. 솜털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짐짓 상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약한 녀석이거든. 숨 쉬듯이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도 여동생 학교 담벼락에 써진 욕설을 보고 얼마나 성을 내는지 아니? 홀든도 알아. 자신이 어쩔 도리 없는 문제아라는 걸. 어쩌면 그래서 더 아이들의 세계를 침투하는 어른들의 흔적에 흥분하는 건지도 몰라. 자신이 무엇보다 사랑하는 피비에게만큼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거든. 홀든을 자세히 바라봐줘. 그럼 너도 홀든의 진짜 마음이 보일 거야.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앞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에 대한 내 궁금증은 후반부에 풀렸어. 로버트 번스의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라는 노래를 피비 앞에서 인용하며 홀든은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하지. 피비가 지적하기 전까지 홀든은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이 노래를 알고 있었지. 아이들이 안전하게 아이로 살 수 있는 호밀밭을 홀든은 이미 지나쳐 왔지. 아직 나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쫓기듯 내몰렸는지도 몰라. 여전히 묵직하게 아려오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홀든은 이제 자신이 떠밀려 온 호밀밭을 붙잡아 스스로가 아이들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려 하지.


나는 홀든이 잘 성장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모든 것이 끝나고 망한 것 같다고 해도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 다시금 길은 열려. 홀든만큼 비행을 저지르지는 못(?)했지만, 내적인 방황은 거쳐 온 나도 이렇게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너라는 행복을 맛보았잖니? 더디지만 홀든의 상처에도 새살이 돋아나 누구보다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




방황이 다가왔을 땐 감정적 소용돌이 때문에 이성적 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어. 그토록 다짐하던 스스로의 신념을 어기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 내 딴에는 커다란 고민이라 생각했던 일도 남들에게 토로하면 엎질러진 물처럼 당황스럽기만 하고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아 더욱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기도 할 거야. 상심에 빠진 얼굴을 한 너를 보고 엄마와 아빠는 걱정스러운 질문을 던질 테고 그러면 넌 더 짜증이 날 거야. 결국 네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지. 하지만 좋잖아? 흔들리는 순간에 손잡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이긴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시원에 인간이 존재하듯이 지구 어딘가 이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내가 추천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규범 속 아이들이 아니지. 그들의 출발도 도착지도 그 과정도 어른들이 정해 놓은 규칙을 끝없이 이탈하며 성장을 거듭하지. 그리고 자기만의 새로운 윤리를 창조해. 방황하는 동안 많이 흔들리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정신의 멀미를 겪기도 하겠지만, 잘만 버티면 그만큼 멋진 모험이 따로 없지.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네가 직접 혼돈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라고 권장하는 건 아니라는 점 다시 한번 말할게. 단순히 방황에 휩쓸려 내려가기보다는 방황의 주체가 되어 너만의 의미를 획득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며, 세계를 둘러싼 허위와 가식들 앞에 동조하는 대신 맞설 수 있는 강해지는 힘을 이 책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길 바란 달까? 네 성장에 좋은 거름으로 이 소설이 읽히길 바랄게.


너도 언젠가 안온한 울타리를 벗어나 너만의 길을 걷겠지. 엄마와 아빠가 전혀 생각도 못한 궤도를 내달려 아무리 멀리 떠난다 해도 너에겐 돌아올 집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네가 태어나길 기다린 만큼 나는 너에게 다가올 어두운 밤들도 함께 기다려 줄 수 있으니까.



From. 네가 공차 마시고 싶다는 말에 한 번도 거절한 적 없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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