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 친구 필요 없어. 쭉 엄마랑 아빠의 아이로 살 거야. 이 집에서 영원히.” 굳은 다짐을 하듯 비장한 얼굴로 너는 말하지. 그래, 나도 어릴 땐 그런 말 했었어. 그리고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남자 친구를 사귀었지. 인생이 그렇단다. 생각한 대로 잘 안 흘러가.
엄마와 아빠가 누구보다 널 사랑하는 건 맞아. 너도 세상에서 우리를 제일 사랑하지. 우리 셋만 함께 해도 충분하다는 기분도 전혀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너도 점점 나이를 먹으면 ‘너만의 사랑’을 원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우리를 벗어나 다른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한대도 우리의 사랑은 끝나는 게 아니야. 그러니 미리부터 겁먹고 엄마 아빠랑만 영원히 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그 다짐이 전혀 귀엽지 않은 날이 곧 오게 될 테니. 하하. 지금은 서운해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너도 알게 될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사람이 어느 때는 공부하고 또 어느 때는 취직하고 어느 때는 당연히 제 짝을 만나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야. 그런 건 나도 사양했으니까. 네가 극구 연애를 하지 않겠다면 나는 너의 의견을 존중해. 하지만 앞서 말했듯 사랑이라는 게 계획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사랑은 늘 불시에 거대한 불덩이처럼 나를 훅 덮치더라. 그리고 달뜬 마음으로 지상에서 몇 센티쯤 붕 뜬 기분으로 살아가게 만들지. 온전히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게 만들고, 나 자신이 이제까지 알던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기분을 들게 하지. 사랑은 참 좋지. 연애만큼 인간관계에 대한 다양한 배움을 주는 것이 또 없더라. 누군가 나와 꼭 마음이 맞아 서로의 짝이 되어주기로 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그 모든 불꽃이 사그라들고 이별을 맞이한다 해도, 돌이켜 미소 짓게 만드는 사랑의 순간들은 삶에 큰 힘이 된단다.
오늘은 언젠가 다가 올 네 사랑의 날을 위해 소설 2권을 추천하려 해. 연애를 잘하는 방법이 담긴 지침서냐고?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선 나쁜 연애가 무엇인지 일단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사람이 눈이 멀면 그때는 남들이 뭐라고 해도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법이거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집착으로 한 집안을 풍비박산 내버리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사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비극적 죽음을 맞게 되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아무리 마음이 앞서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잘 구분하는 사람이 되어 보자꾸나.
폭풍의 언덕이라니. 제목에서부터 뭔가 느껴지지 않니? 그야말로 이 소설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폭풍이 휘몰아친단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히스클리프야.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자신과 친남매처럼 지내던 캐서린 언쇼지. 히스클리프는 언쇼 집안에 입양아로 들어오게 된 인물이야. 고아로 부랑아처럼 거리를 헤매던 그를 언쇼 씨가 데려와 키우지. 죽은 첫아들의 이름인 히스클리프를 그의 이름으로 주기도 해. 그 때문에 둘째 아들인 힌들리는 히스클리프에게 증오심을 갖게 돼. 언쇼가 죽고 가정을 꾸린 힌들리가 황량한 언덕 위 언쇼댁 집주인이 되고 히스클리프를 하인처럼 부려 먹으며 온갖 학대를 일삼아. 졸지에 가족에서 하인으로 전락하며 캐서린과도 멀어지지. 그렇다고 캐서린마저 히스클리프를 하대하는 건 아니야. 다만 재산권을 가진 오빠가 집안의 권력으로 군림하기에 그녀 또한 별 권한을 갖지 못해. 그래서 캐서린은 자신이 다쳤을 때 머물렀던 스러시크로스 저택의 린튼 집안의 아들인 에드거와 결혼을 하려 하지. 에드거 집안에서 자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 집안의 재력을 이용해 히스클리프를 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거든.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겨. 캐서린이 하녀인 넬리와 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한 말, “내가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품위가 떨어진다.”라는 말을 당사자가 들어버리거든. 차라리 이때 박차고 들어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따졌으면 좋으련만. 히스클리프는 그 말만 들은 채 상처를 받고 집을 떠나버리거든. 캐서린이 그를 두고 자기 평생의 사랑이며 그는 자신과 영혼이 같다고 한 말은 듣지 못한 채. 캐서린은 그를 찾아 헤매다 비를 쫄딱 맞고 병에 걸려. 그리고 에드거와 결혼을 하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히스클리프가 다시 워더링 하이츠, 즉 힌들리가 차지한 언쇼 집안으로 다시 돌아와. 비상한 머리 덕에 히스클리프는 재산을 많이 모은 상태지. 부인이 죽어 상심에 빠진 힌들리의 재산을 노름으로 차지한 히스클리프. 이제 집안의 권력으로 급부상한 그는 본격적인 복수를 진행하지. 그리고 정말 폭풍이 쉼 없이 몰아치게 된단다.
소설 속 묘사를 보면 히스클리프는 잘 생긴 외모를 가졌어. 그 짧은 시간에 도박으로 돈을 벌어들인 걸 보면 머리도 좋은 사람 같아. 캐서린이 아니라고 해도 그는 충분히 새 출발이 가능했을 사람이야. 하지만 오로지 캐서린에 대한 집착으로 그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한단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에드거의 여동생과 결혼을 하지. 오로지 복수를 위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찾아 헤맬 때 얻은 질환이 재발해 죽음을 맞이해.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멈췄을 거야. 사랑하는 대상이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 이상의 복수가 무슨 의미를 지니겠어?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문제적 인물이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그런데 사실상 따지고 보면 캐서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질병과 그 발병도 모두 히스클리프 때문인데 이거 너무 적반하장 아닌가?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또 그의 다짐이 꼭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결국 그는 주변 사람을 피 말리게 하면서 자기 파멸의 길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거든.
캐서린도 보통 캐릭터는 아니었어. 그 시대의 지고지순한 여인상은 절대 아니지. 포악한 면도 있고 다혈질적이야. 히스클리프와 영혼의 한 쌍임을 증명하는 장면들이 꽤 등장해. 보통 여자가 아니지. 두 사람만 지지고 볶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운명의 소용돌이에 언쇼와 린튼 집안사람들을 모두 끌고 가지. 그 모든 폭풍의 순간을 목도한 넬리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돼. 우리도 세입자인 록우드처럼 폭풍의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밖에 없지. 도대체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괴로운 마음이 들면서도 섣불리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펼쳐 볼 수 없는 점이 에밀리 브론테라는 걸출한 작가의 재량을 증명하지. 실제로 폭풍의 언덕에 등장하는 배경은 웨스트라이딩의 벽촌 호어스 언덕에 지어졌던 작가의 집이라고 해.
소설이 출간되고 나서는 비윤리적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아. 게다가 연애 한 번 못해본 여자가 이런 거칠고 깊은 주제의 소설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작가에게 모욕을 주기도 했지. 아무튼 이 소설은 지금 보아도 꽤나 충격적인 내용이긴 해. 요즘 말로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그런 내용이잖아. 사랑에 배신당한 불타는 복수심 하나로 살아온 히스클리프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오소소 소름이 돋는 순간이 많지. 집착의 끝판왕을 고르자면 히스클리프를 따라 올 사람이 있을까 싶어. 히스클리프의 지독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캐서린은 죽어서도 지상에 발목 잡혀 구천을 떠도는 유령이 되었단다. 히스클리프의 유령도 목격되는 걸 보면 두 사람은 죽은 뒤에도 함께 떠돌고 있는 모양이야. 어차피 지옥에 가게 될 운명, 그럴 바에야 여기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도 이루자 뭐 이런 심산인지 두 유령은 지나가던 양치기 소년을 놀라게 하지. 정말 지독하지 않니? 죽어서도 두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심장을 떨게 만들다니. 뭐 이런 웃기는 짬뽕 같은 영혼의 한 쌍이 다 있다니!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한 사람과 한 집안 전체를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 건지. 혹자들은 히스클리프가 감내해야 했던 힌들리의 학대를 이유로 그의 복수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도 하지만, 그게 정말 히스클리프의 행동에 대한 제대로 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히스클리프가 힌들리에게 당한 수모가 정당화될 수 없듯이, 히스클리프가 설령 피해자라고 해도 학대를 대물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물론 히스클리프가 힌들리의 아들이자 캐서린의 조카인 헤어튼에게 물리적 학대를 행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그를 완전히 방임해버렸지. 아이러니하게도 헤어튼은 그 방임 속에서 자유를 얻었지만. 헤어튼은 아주 특수한 경우지.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 낳은 딸인 ‘캐서린’을 유인 및 납치, 감금한 뒤 자신의 아들인 린튼과 결혼하게 만들었어. 물론 캐서린의 딸 캐서린은 헤어튼의 영향을 받아 히스클리프에 대한 악감정을 털어 버리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저항할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와 어느 정도의 가스라이팅이 수반된 체념이 만들어낸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결과가 어떻든 히스클리프가 보이는 행동은 대부분 비도덕적이며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지. 그만큼 캐서린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 효과를 나타내긴 하지만 이런 남자를 잘못 만나게 되었을 때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래도 캐서린만큼은 손 하나 대지 않고 지켜주지 않았냐고 히스클리프는 항변할지 모르지. 하지만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듯 자신의 행동이 캐서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결정적 이유였으니 그에게 변명의 기회는 주고 싶지 않네.
500페이지가 넘는 이 광폭한 사랑의 행보를 보고 나면 어쩐지 숨이 가빠져. 마치 내 영혼도 난도질을 당한 듯 으스스한 기분마저 들지. 히스클리프가 소설 속 인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도 뉴스를 장식하는 현실의 히스클리프들을 만나면 내가 지금 소설을 사는지 현실을 사는지 아득해진단다. 상대를 향한 집착과 광기를 핑계 삼아 저지르는 온갖 범죄들. 매년 수많은 여성들이 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네 말처럼 차라리 우리의 사랑스러운 딸로 영원히 남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망상을 하곤 해.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더 좋은 사람들이 많고, 소수의 폭력으로 네 인생의 기회를 말살하기엔 너의 삶은 아름다우니까 걱정은 접어둘게. 아직까지 세상은 사랑과 연대, 이해와 공감에 더 가닿아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물론 이런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동요하게 만드는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반짝이는 불빛처럼 내 마음의 등불을 켜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다정한 이들을 기다리리!)
내가 소설 속 인물을 너무 씹어댄 탓에 네가 이 소설을 읽기 겁날 수도 있겠지만, 오해는 금물! 사랑이라는 주제 속에 인간의 모순되고 격정적인 감정을 한 가문의 역사와 함께 그리는 대서사시 이노니. 격동하는 감정만큼이나 거칠고 강한 필체로 독자의 흥미를 한시도 놓치지 않게 만드는 소설이란다. 시간이 흘러도 읽히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너도 꼭 폭풍의 언덕으로 통해 1800년대 영국 요크셔를 느낄 수 있길!
사랑에 빠지면, 지독하게 상대를 사랑하면 정말 마음속에서 폭풍이 일기도 해. 내 안에 이런 감정이 있었나 의아할 만큼 격동의 시기를 겪기도 하지. 평온한 사랑을 하다가도 소설 속 인물처럼 오해가 생겨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어. 그럴 땐 소설 속 인물들처럼 무작정 떠나거나 마음에도 없는 일들로 기싸움을 펼치지 말고 차분히 앉아 대화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 한없이 사랑하고 모든 걸 줄 수 있는 상대도 어쩔 땐 너를 떠나야 할지 몰라. 충분히 풀어나갈 수 없는 문제라면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마음도 가지길 바라. 보내주는 마음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 옆에 두고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만큼이나 성숙한 이별을 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이별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사랑의 과정이야. 아픈 마음을 잘 털어내면 그만큼 단단하고 성장한 내면을 가질 수 있으니 설령 영원히 그 사람과 볼 수 없대도 너는 큰 보물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야. 무작정 좋은 사람을 기다리기보다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며 너 스스로가 네가 바라는 사람의 모습을 갖추길 바라. 그러면 네 주변은 절로 좋은 사람들로 채워질 테고 그중 너의 마음에 훅, 하고 더운 숨을 부는 멋진 사랑이 나타날 거야. 가끔은 가만히 지켜보고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가 사랑을 고백할 줄 아는 멋진 여자로 성장하길 바라!
엄마와 아빠의 만남에도 수없이 지나간 사랑들이 있었어.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는 서로가 되었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지. 너에게도 여러 사랑과 이야기들이 존재할 거야. 처음에는 미숙한 탓에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네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 상대방에게 화가 나기도 할 거야. 다툼도 있을 테고 반목하는 순간도 있을 테지만 심장 전체를 꿀에 절인 듯 달콤한 순간들에 취해 사랑이 삶의 전부같이 느껴지는 순간들도 오겠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보면 절로 중심을 잡는 법도 배우게 돼.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사랑을 하든지 우리는 너를 응원해. 설령 홀로 남겨진다 해도 너에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충분히 사랑받은 만큼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거야. 너는 정말 소중해. 그 소중함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사랑이 네게 찾아오길 진심으로 바란단다.
그럼 이젠 폭풍의 눈을 벗어나 뉴욕으로 가보자.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라는 경계는 부의 계급만이 아닌 사랑 또한 갈라놓고 있으니!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함에 앞서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이 책을 통해 배워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