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생선을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갈치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은갈치는 제주를 대표하는 생선으로 유명하다. 여행자의 일정에는 갈치구이, 갈치조림, 갈칫국 같은 갈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빼놓지 않고 들어간다. 갈칫국은 구이나 조림에 비해 생소한 음식이다. 제주에서는 그냥 물을 끓여 생선을 넣고 소금, 청장, 된장 등으로 간을 해 생선국을 끓였다. 갈칫국도 갈치와 배추, 늙은 호박을 넣고, 소금과 청장으로만 간을 한다. 누구는 이 국을 보고 비릴 거로 생각하지만 제주의 갈칫국을 포함한 생선국은 전혀 비리지 않다. 제주 사람들은 비린 생선으로 음식을 조리하지 않았다. 생선이 비려지기 전, 신선할 때 조리하기 때문에 맑은국을 끓일 수 있다. 요즘도 갈칫국 전문점에서는 당일 조업해서 잡은 신선한 갈치를 사용해 맛있는 국을 끓여 낸다.
제주에 지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행 중에 지인 찬스를 한 번은 써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찬스는 맛집 물어보기에 사용한다. 그런데 제주 도민에게 제주 음식을 추천받으면 갈치 요리가 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나에게 갈치구이 맛있는 집이 어디야? 라고 물어본다면 나 또한 선뜻 추천해 줄 식당이 생각나지 않는다. 제주 사람에게 갈치는 쏘울 생선이 아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제주의 음식들은 제사상이나 잔칫상에서 여전히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갈치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리는 생선은 갈치가 아닌 옥돔이었고, 잔치에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갈칫국이 아닌 몸국을 대접했다. 어디에서도 갈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제주도에서 생선이라고 하면 곧 옥돔을 의미했다. 생선국을 끓인다고 하면 그건 옥돔국이었다. 옥돔에 미역, 무 등을 넣고 끓인 국을 제주 사람들은 옥돔국이 아닌, 그냥 생선국으로 불렀다. 재밌게도 옥돔 외에 나머지 생선들은 고등어, 갈치, 자리 등 고유의 이름으로 불렀다. 그만큼 제주에서 생선은 곧 옥돔, 옥돔은 생선 중의 생선이었다. 옥돔은 제사, 명절에 반드시 사용했다. 옥돔의 배를 가르고 펴서 살짝 말린 뒤 구워 그대로 상에 올렸다. 중국산 옥돔이 구울 때 흐트러지지 않고 모양이 잘 잡힌다는 설도 있지만 제주 사람들은 여전히 의례용으로는 굽는 난도가 있는 제주산 옥돔을 고집하기도 한다. 옥돔은 예로부터 귀한 생선이었다.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생선은 아니었다. 그래서 옥돔을 구할 수 있을 때 미리 사서 앞으로 있을 큰일에 대비하기도 했다. 옥돔을 생물이 아닌 말린 옥돔을 사용한 건 미리 준비한 옥돔의 보관을 위해서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 말렸다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제주를 바라보는 두 집단은 서로 다른 생선을 제주의 으뜸으로 친다.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제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재밌다. 옥돔도 갈치도 모두 제주의 모습이고 난 옥돔은 옥돔미역국, 갈치는 갈치조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