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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Jun 03. 2024

취향이 자꾸 바뀌네요

제주도립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후기

가끔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젊은 작가들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작품을 만나는 건 재밌고 신선했습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보며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고요. 자연스럽게 회화로 대표되는 전통 미술을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2021년 4월, 이건희 회장이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 3천여 점이 국가에 기증되었습니다. 개인의 재산이 공공 자산으로서의 환원을 실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일이죠.



내가 정작 부러워하는 것은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그들의 마음자세나 태도다.

한마디로 그들[외국]은 자신들의 문화적 자산을 일상생활에서 잘 활용하고 있다.

(중략)

우리는 일단 문화라고 하면 먹고 사는 일상생활과는 다른 ‘특별한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는 21세기에 필요한 문화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문화적인 소양이 자라나야 한다.


이건희, 21세기 앞에서, 이건희 에세이, 조선일보 1997. 9. 30.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부터 이건희컬렉션 지역순회전을 개최합니다. 그리고 올해 그 아홉 번째 전시로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지난 4월 23일부터 특별전 <시대유감 時代有感>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한국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40명의 작품 82점을 4개의 섹션(시대의 풍경, 전통과 혁신, 사유 그리고 확장, 시대와의 조우)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예술의 접근성이 많이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제주에서 수준 높은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건희컬렉션 지역순회전은 제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아주 소중하고 감사한 전시입니다. 덕분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동안 통통 튀는, 날 것 같은 작품을 쫓다 오랜만에 묵직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표현이 올바른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공부한 적이 없고, 아니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동안 작품을 마주할 때 눈을 통해 뇌와 가슴에 전달되는 느낌으로만 감상하는 일반 관람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80여 점의 작품을 하나하나 천천히 감상하다 보니 이젠 또 연륜의 작품이 좋아집니다. 예술에 대해 취향, 신념, 철학 같은 건 갖고 있지도 않은 문외한이니까요. 이 압도적인 작품들은 절대 고리타분한 그림, 조각이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잔상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절구질하는 여인 Woman Pounding Grain

박수근, 1957, 캔버스에 유채, 130x97cm

독특한 질감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습니다. 유화의 특징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절구질하는 여인이 그림 속에 있습니다. 아이를 업고 한 손은 절구통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절구질하는 모습이 내 절구질은 일상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애달파 보이기도 하고 평온해 보이기도 합니다. 업힌 아이는 곤히 잠을 자고 있네요.


망금강산 Looking at Geumgangsan Mountain

노수현, 1940, 종이에 먹, 색, 34.5x139cm

웅장합니다. 마치 바위에 서서 뒷짐을 지고 금강산을 바라보는 그림 속 인물이 된 것처럼 생생하게 금강산이 느껴집니다. 마냥 바라보는 것 말고 어떤 행동도 다른 생각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노수현 화백의 고향이 황해도인걸 알고 나서 단순히 바라보는 금강산을 그린 것인지 그리워하는 금강산을 그린 것인지 궁금해 집니다. 산 중 깊이 숨어 있는 산사도 놓치기 싫습니다.


산사 Mountain Temple

김기창, 1980년대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180.5x120.5cm

개인적으로 단순하게 표현하지만 임팩트가 있는 작품을 특히 좋아합니다. 거친 선과 단순한 색으로 표현된 수묵화는 산속 깊이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굵은 선으로 그려진 바위와 거친 선 위 짙은 녹색의 표현은 깊은 산 속의 사찰로 안내합니다.


굴비를 든 남자 A Man holding a Yellowtail Fish

천경자, 1964, 종이에 채색, 150x120cm

동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중절모를 쓴 남자는 엮인 굴비를 들고 있습니다. 방금 비가 그쳤는지 하늘을 바라보며 우산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한 여인은 춤을 추듯 두 팔 벌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행복한 저녁이 될 것 같습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시대유감’이 전시 중입니다. 오는 7월 21일까지 전시가 이어지고, 시간이 나는대로 또 다녀올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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