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은 두려움이다
회피형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마도 도망가라는 말을 많이 봤던 것 같다.
회피형은 상황을 직면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숨었다가 자기 혼자 감정을 다 추스르고는 다시 돌아오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럼 그 상대는 혼자 기다리는 거다
끝나지도 않은 상태로 하염없이
기다린다고 해서 돌아올 거란 보장도 주지 않는다
그저 정말 자기 혼자 자기 맘대로다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짝사랑을 하는 기분인 채로다
나는 회피형 인간이다.
그런 내가 회피형인 너를 만났다.
임자를 만난 거다.
정말 너는 제 멋대로 도망 다니더구나.
체면이라는 것도 없이 말이다.
미친놈인 줄 알았다.
나는 너랑 다른지 잘 모르겠다.
너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므로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무섭다.
책임지지도 않을 마음을 내게 마구 투척하며 다가와놓고서는 감흥이 식으면 멋대로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싫다.
자기들 멋대로 나를 봐놓고, 막상 내가 그 바라던 이상형이 아닌 것을 깨닫고 나면 과대광고한 음식이라도 먹은 듯이 가버린다.
그게 너무 진절머리가 났다.
이 끝없이 반복되는 가까워짐과 멀어짐이.
아니? 나 자신이.
끝없이 믿고, 추락하고, 그 모든 결정이 나였음을 알고 있는, 알면서도 하는 나 자신이.
모르고 하는 것보다.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게 더 큰 죄라고 하던가.
나는 그럼 얼마나 큰 중죄인인가.
나는 너와 이렇게 멀어질 것도, 이런 상황은 반복될 거란 것도. 오랜 나의 학습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가 달라져도 보고, 너는 다를 거라고도 희망을 가져보고.
덧없다. 인생이.
그래놓고 나더러 가식이었다고 말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너는 꼭 그러더라? 자기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고.
무슨 소리야. 계속 나였잖아. 계속 나잖아.
왜 이제 와서. 모든 걸 가지고 나서야 반품을 하려는 거야.
나는 이미 너덜거리는데 왜 차라리 그래. 차라리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먼저 다가오지나 말지.
다 견딜 수 있을 것처럼. 다 괜찮다고. 다 이해한다고. 너는 다르다고. 믿어보라고.
네가 그게 몇 번째 사람인지 너는 아니.
나는 또 나를 검열한다. 내가 탓을 할 수 있는 건 나밖에는 없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그 마음이 소중하고 고마운 것은 맞으나 나는 감당할 수 없기에 거리를 둔다.
외롭다 당연히, 공허하기도 하다. 그러나 함께여도 혼자인 것보다는. 함께였다가 혼자가 된 기분을 느끼기보다는 차라리 혼자였던 채로 살아가는 게 더 편하다.
사람을 좋아한다. 정이 많다. 거절을 못한다. 그래서 이제 더는 자리가 없다. 다 쓰고 남은 휴지조각 같아져 버렸다. 그래서 이제 줄 마음이 안 남았다.
잘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