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olisopher Mar 23. 2018
'띵동댕 띵동댕'
'철컥'
- 아저씨...... 으아아아
- 어...... 그래그래 울지 마 울지 마. 우리 학생이 신고했구나.
- 흐흐흑
- 아저씨가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마. 응?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렸고, 그 틈으로 빼꼼히 내민 여학생이 우리를 보더니 울음보가 터졌어. 신고한 여학생이었어. 거의 동시에 학생 뒤편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쓱 나타났어. 연타로 그 그림자 옆으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지.
- 당신들 뭐여. 왜 남의 집에 들어와서 난리야. 경찰이면 다여?
- 경찰입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만......
흰색 러닝셔츠에 노란색 스트라이프 박스 빤스를 입었고 7대 3 비율로 가지런하게 가르마를 탄 건장한 40대 후반의 남자가 벌게진 얼굴에 인상을 쓰고 있었어. 학생의 아빠였던 게지. 가지런한 헤어에 러닝과 빤스는 왠지 고급 한정식집과 라면처럼 발란스가 안 맞아 보이더라. 그리고 그 옆에서 남자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던 그림자는 학생의 엄마였어.
-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와서요. 좀 들어가서 이야기 좀 들어도.....
- 무슨 소리 하는 거여. 재수 없게. 여기가 어디라고 경찰이 발을 들여.
재ᆞ수ᆞ없ᆞ게 ᆞ 경ᆞ찰ᆞ이ᆞ발ᆞ을ᆞ들ᆞ여
몇 년 전엔가 파출소 들어서면 집값 떨어진다고 지랄 떨던 기사를 보면서 욕 무지한 적이 있는데.
씨......
저 소리를 듣는 순간, 그 인간들의 낯짝이 오버랩되면서 귀가 찌릿찌릿, 미간이 병풍 접히듯 구겨지더라. 씨발 우리가 똥 묻은 개라도 된단 말인가.
- 가정폭력 신고를 받으면 관련 당사자는 다 만나보아야 하고 필요하면 집 안 상태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 쳇! 집주인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오겠다는 건데. 그럼 당연히 영장 가지고 와야 하는 거 아녀?
-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9조 4에 따라 경찰은 가정폭력사건을 조사해야 하고 관련자는 조사에 응할 의무가 있어요. 만약 거부할 시...
- 뭔 개 같은 소리야. 가정폭력이 어쩌고 피해자가 뭐 어째.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들을 줄 알았지? 나는 당신들이 상대하던 개 무식한 진상들이 아냐. 이 사람들아...
내 말을 가로챈 남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입을 쩍쩍 벌릴 때마다 고대 유적지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 따박따박 토를 달기에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상당히 취해있었어.
- 아무튼 신고한 분도 계시고 저희들은 조사할 의무가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안으로 들어갈 태세로 신발에서 발뒤꿈치를 꺼내면서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았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고한 학생을 바로 옆에서 노려보다가 시선을 아내 쪽으로 향하더니 이내 손바닥으로 아내의 머리를 밀치며 말하더라.
- 이 놈의 집구석 참 잘 돌아간다. 딸 년은 아빠 잡아가라고 짭새한테 신고하지 않나. 애미란 년은 집구석에 처자빠져 있으면서 딸 년 하나 간수 못하고...... 쯧쯧쯧
머리가 밀려나면서 뒤로 몸이 넘어질뻔한 여자는 중심을 잡고 카디건을 안쪽으로 추스르더니 내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바로 고개를 숙이더라. 0.001초 대 였지만 눈빛에 분노와 슬픔 무기력 따위가 뒤엉켜 있는 게 너무나 선명했어.
- 어어어 그러면 안 돼요. 부인을 폭행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 폭행? 야 이 냥반아 이런 게 폭행이면 세상에 쇠고랑 안 찰 사람 누가 있냐. 어?.... 뭐야 누가 들어오래. 빨리 안 나가!
나는 어느새 두 여자와 남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어.
- 이런 게 폭력이 아니라고요!!
-......
- 멱살만 잡아도 처벌받는 판에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나는 남자를 날카롭게 째려보며 호통치듯 내질렀어. 남자가 흠칫하더라.
- 아무튼 꼭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요.
- 지금 경찰이 협박하는거여?
- 경찰이 양아 칩니까. 협박이라뇨. 지금 선생님은 가정폭력 가해자로 의심받는 상황이에요.
- 개좆 같네. 씨발!
- 뭐가 그렇게 좆같은데요? 뭐가 좆같은지 조목조목 말을 하세요. 말을.
씨팔거리던 남자는 부엌 쪽으로 가더니 식탁 의자를 거칠게 끌어내 앉아서 담배 한 대를 물었어. 그리고 배꼽 아래까지 밀어내려는 듯 담뱃불을 깊게 빨아 마시더니 입과 코로 아주 천천히 연기를 내보내고 있었어.
그가 두세 모금 더 피우고 있을 때, 나는 거실 주위를 한 바퀴 스캔했어. 거실 벽과 장식대에 박사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은 남자의 모습, 국내 굴지의 엑스 대학 교수 임용 관련된 증서 같은 게 액자에 끼워진 채로 세워져 있더라. 그리고 식탁으로 걸어가 남자 맞은편에 앉았어. 정 자세로 바로 앉은 나와는 다르게 남자는 오른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삐딱하게 앉아서 거실 쪽을 보며 담배를 빨고 있었어. 담배를 꼰 손가락이 남자의 입에 대는 횟수가 늘수록 부엌과 거실이 부연 연기로 자욱해지고 있었지.
- 엑스대 교수님이세요?
-......
남자는 씨익 웃어 보이더니 최후의 한 모금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마지막 불꽃을 바스락하게 태운 후, 식탁 위 크리스털 유리잔 안에 반딧불이 같은 꽁초를 던졌어.
- 내가 엑스 대학 교수면... 왜? 학교에다 통보하시게?
- 그런 게 아니라...
-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 끌지 말고......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 아까 말씀드리다 말았습니다만 가정폭력사건의 경우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조사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 그래서 내가 폭군이라도 된다?
- 신고 내용을 듣자 하니 아빠가 엄마 따귀를 때리고 딸도 머리채가 잡히고 맞았다고......
- 이것 보쇼. 당신 처자식 있어?
-......
- 쳇! 결혼 안 했구만.
-......
- 그러니 가장의 마음을 알기나 하겠어.
그래 씨발 나 결혼 안 했다. 아니 못했다. 어쩔래. 개새야. 남자는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도 찾아낸 듯 의기양양한 표정이었어.
- 그래서 가장은 처자식을 때려도 된다? 이거요?
- 들어봐. 자식이 엇나가. 또 애미 구실도 못하는 마누라가 있어. 말로 해서 안 되어. 어떻게 할까. 두들겨서라도 바로 잡아야 하는 거 아녀?
- 저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던가요? 그래 나 잘못했으니. 맞아도 싸다. 그랬냐고요.
- 그걸 모르니까. 맞는 거지.
- 어이없네. 진짜. 그냥 본인 내키는대로 결정하고 때리신 거구만.
- 이봐요. 가장의 마음이라는 게......
- 그러니까. 그 가장의 마음이라는 게 자기 마누라와 자식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들겨 패도 되는 거냐고요.
- 훈육 차원에서 손찌검할 수 있잖아. 우리 때는 다들 그렇게 컸는데 뭐. 당신은 맞고 안 컸어?
- 나도 맞고 컸어요. 근데 씨발 좆나게 싫습디다.
-......
- 선생님 말대로 나 역시 여자와 아이들은 때려야 한다는 이념 아래서 컸고, 싫어도 저항할 수 없는 분위기였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종 친다고 좋아했는데, 웬걸 어떻게 된 건지 소위 상아탑의 지성인이라는 놈들의 폭력은 더 해. 군대 갔더니 또래 녀석들 앞에서 머리 박고, 따귀 맞고, 별의별 모욕 다 당하고. 어렵게 경찰 됐더니 이번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술만 들어갔다 하면 욕하고. 때리고...... 아우 씨팔!
아무튼 식구들 때리는 게 옳은 짓이냐 이겁니다.
-......
남자,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더라. 얼핏 보니 폭행의 추억에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꼬락서니를 보니까. 맞는 것보다는 때리는 쪽이었을 거야. 공부는 곧잘 했을 테니 집이나 학교에서는 귀한 대접받으며 자랐겠지. 끽해야 회초리 정도 맞았을라나. 그래서 맞는 자의 고통을 이해 못 할 수도...
- 선생님은 엑스 대학 교수시니 잘 아실 것 같아서요... 왜 누구는 때리는 게 당연하고 누구는 맞는 게 당연하죠?
-......
- 어떻게 딸 머리채를 잡고 때리는 게 교육이 되고, 어떻게 아내를, 그것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때릴 수 있습니까.
-......
- 선생님 말마따나 그런 행위들이 폭행이 아니라면... 같은 의미로 딸과 부인이 선생님을 쥐어박아도 괜찮겠네요. 그렇습니까?
여전히 삐딱한 자세로 앉아, 거실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들이마시며 이를 꽉 물고 있던 남자는 천천히 말 문을 열었어.
-... 그걸 왜 나한테 묻소... 그 이유는 나 보다 더 잘 아는 것 같고만...
앉은 내내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던 남자가 자세를 고쳐 바로 앉더라. 나를 쳐다보기는 하는데 시선이 안 맞는 거야. 뭐지 뭐지 하며 남자 시선을 따라가 봤더니 언제 나왔는지 모르게 내 뒤쪽으로 학생과 엄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 있는 거야. 남자는 딸과 여자를 보고 있었던 거지. 저쪽 방에서 나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궁금했던지 밖으로 나온 모양이더라. 다시 남자를 쳐다봤어. 고개를 숙여버리대. 그렇게 수십 초 간 침묵의 시간이 흘렀어.
- 선생님이 이 상황을 정리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
내 말이 끝나자 입맛을 다시며 잠시 생각에 잠기던 남자가 일어나 안 방으로 들어갔어. 5분가량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색 사우스 페이스 점퍼에 같은 상표의 바지를 입고 나왔어. 현관 앞으로 가더니 주섬주섬 신발을 신더라.
- 아빠 어디 가는데...
- 여보...
남자의 뒤를 따라붙던 두 여자가 동시에 각자의 목소리로 남자를 불렀어.
- 딸. 미안.. 당신한테도..
신발을 다 신고 돌아서 가족들에게 짧게 툭 던지듯 사과를 한 남자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어. 그의 눈은 벌겠고, 축축해 있더라.
- 경찰 아저씨. 미안요. 생각 좀... 제가 연락드려도 될라나요.
- 상관없습니다만... 괜찮으신지...
남자는 어색하게 손을 한 번 올리더니 현관 밖으로 나가버리더라. 그런데 문밖을 나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자 긴장감이 탁 풀렸어. 맞아 가정폭력 현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면 일단 마음이 놓여. 특히 폭행남이 나가 주는 걸 최고로 쳐. 당장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하거든 나중에 다시 붙는 건 생각하지 않아도 돼. 그럴 우려가 있거나 신고 들어오면 붙잡아다 처벌하면 되는 거라.
젠장.. 나는 이 지점에서 환멸을 느낀다.... 뭔가 해냈다는 천박한 생각도 싫고...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안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도 싫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가정을 지키길 원해. 단지 아빠 혹은 남편이 혼난 다음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란다고... 자식들과 남편 뒷바라지만 해 온 여자로서는 아이들과 헤어지는 슬픔, 경제적 어려움을 감당하기 어려워. 마찬가지로 자식들은 그렇게 깨져가는 가족을 지켜보면서 내면에 깊은 상처를 심어버린단 말이야.
그런데 피해자들의 바람대로 남편만 혼내준다면 어떻게 될 것 같냐? 가해자들이 깊이 반성하고 따스한 가족의 품에 안길까?적어도 내 경험상 그런 집안은 한곳도 못 봤다. 오히려 신고한 가족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품고, 분노를 태우지.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지는 폭행... 이혼이다 뭐다. 그 가정은 파탄의 벼랑으로 더욱 가까워져.
우리 경찰... 잘 하고 있는 거 맞지? 그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잘 하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하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걸까.
ᆞᆞᆞkantrolᆞᆞᆞ
* '여자와 북어는 때려야 맛' 또 교육적 차원에서 아이들 구타는 폭 넓게 용인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여전히 체벌 논란은 식지 않고 있지만.
* 영화 '부당거래'中 최철기(황정민 님)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