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경찰관직무집행법 2조에 대한 단상

by polisopher

- 경찰이죠?

- 네 파출솝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 미안한데 좀 도와줄 수 있으세요.

- 아 그럼요. 그럼요. 도와드려야죠. 말씀하셔요.

- 여기 MinPe빌딩 1층 화장실인데요. 화장지가 떨어져서요. 도움 청할 때가 없어서... 진짜 미안한데 휴지 좀 가져다주실래요.

- 에? 화장지요?...... 신고자 분 급한 사정은 알겠는데 경찰은 긴급한 상황에 출동하게 되어 있어요.

- 그래서 말씀드렸잖습니까. 미안하다고. 그리고 저도 아주 급합니다. 나가야 되는데 벌써 10분도 넘게 쭈그리고 있어요. 신고하는 지금도요.

-......


지어낸 거 같지? 뻥 아냐. 레알이야 레알. 언 놈이 이런 무개념 신고를 할까 생각하겠지만 너희는 상상도 못 할 기상천외한 소재들이 112 상황실로 쏟아지고 있단다.


이런 것도 있었어. 요즘 데이트 폭력 장난 아니잖아. 스토커 때문에 불안하다고 신고하길래 죽어라 뛰어갔지.


- 경찰인데요. 근처 왔거든요. 지금 어디세요?

- 데비리너스 인데요.

- 커피숍요? 알바 하세요. 남자가 거기서 알짱거리는 건가요?

- 아뇨. 커피 마시러 왔어요.

- 에? 아. 커피 마시러... 그럼 남자는 요?

- 혹시 쫓아왔을까 봐 무서워서요.

- 남자가 거기 있는 건 아니고요?

- 그건 아니고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 같아서 겁나서 죽겠어요.

- 아...... 그럼 경찰이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 그냥 커피숍 주변 순찰 좀 돌아주시면 안 돼요?


뭐 저런 신고도 있었어.


첫 번 째 똥 휴지 가져 달라던 신고 출동했을 거 같니? X 팔 결국 놈의 똥냄새나는 화장실 가서 몇 호실에 있냐고 묻고는 문 아래로 처넣어주었지.


두 번째 커피 마시는 동안 보디가드 해달라는 신고? 휘트니 휴스턴의 '앤 다이야'*를 부르며 주변에 좀 머물며 사방을 야려야 했지.


경찰 말이다. 그렇게 쩨쩨하지 않아. 그래서 신고 같지 않은 신고 와도 웬만하면 다 나가. 아! 혹시 순찰차 옆구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 본 적 있나? 어떤 남자가 전화기 붙들고 상담 신고는 110, 긴급 범죄는 112 하는 홍보 사진 말이야. 이게 무슨 뜻이야? 뭐긴 뭐겠냐. 경찰한테는 긴급한 사건사고나 범죄 관련 신고만 하라는 얘기다. 왜 이딴 것까지 붙여놨겠어? 쓸데없는 신고 좀 작작 하라는 거야.


똥 휴지 가져달라는 게 긴급하냐? 시내 한복판에서 커피 마시며 막연히 불안하다는 게 범죄 관련 신고냐고? 니들 입장에서는 급하다고 하겠지. 그러니까 112를 눌렀을 것이고. 그런데 말이다. 이 딴식으로 112 찍어 대면 어떻게 될 거 가터?


"개가 짖는다 조용히 좀 하게 해주라."
"죽은 쥐 좀 치워 달라."
"술 먹고 나간 친구 좀 찾아달라."
"주변에 버스 정류장이 없다 태워달라."
"친동생이 너무 취했다 집까지 태워 달라."


좋다. 이런 일들 당사자에게는 다급하는 거 알겠어. 그런데 급해도 니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 그리고 그렇게 해야 맞잖아. 꼭 경찰을 불러야 쓰겄냐? 그리고 대한민국에 경찰밖에 없냐?


경찰 한번 써먹어 본 놈들은 야 요즘 세상 참 좋아졌네. 짭새들 민주경찰 다 됐네 어쩌네 하면서 좋아라 할 수 있어. 그런데 공짜 심부름센터처럼 112 마구 불러대면 진짜 급한 사람 못 도와줘. 너 똥 휴지 가져다준 사이 저 반대편에서 사람 칼 맞고 강도질당하면 어쩔래?


너 여유 있게 커피 즐기라고 '앤 다이야' 외치고 있을 때 성폭행당했다고 벌벌벌 떨고 있을 피해자 생각이나 해봤냐?


경찰이 왜 방검복 입고, 38 권총에 테이저건 차고 수갑에 삼단봉 찼는지 알아? 위험 감수하더라도 시민들 목숨 구하고 재산 지키라는 거잖아. 그런데 그런 것들 치렁치렁 걸치고 똥 휴지나 가져다주는 게 말이나 되냐?


좀 불편을 감수해라. 필요하면 돈도 좀 쓰고. 그리고 말로 될 것 같으면 대화 좀 하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도 청해 봐. 주댕이는 술 처마시고 애먼 경찰들한테 지랄하라고 달려있는 게 아냐.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112 누르기 전에 생각 좀 해봐 달라고.


귀찮다고 경찰한테 미루지 마. 너 시민 이잖아. 시민의 의무 알지? 경찰한테 신고했다고 시민의 의무를 다 한 게 아냐. 그리고 있잖냐. 112 상황실에서 다른데 알아보라고 안내하면 경찰이 출동하네마네 제발 잡소리 좀 하지 마. 그냥 관련 기관에 직접 연락해서 알려줘. 니가 급한거지 경찰이 급한 거냐? 왜 경찰에게 미루냐. 니가 해야 할 일을.


제2조(직무의 범위) 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직무를 수행한다.
1.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
2.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3. 경비, 주요 인사(人士) 경호 및 대간첩·대테러 작전 수행
4.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5. 교통 단속과 교통 위해(危害)의 방지
6. 외국 정부기관 및 국제기구와의 국제협력
7. 그 밖에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


경찰관 직무집행법 2조의 내용이야. 경찰이 해야 하는 일들을 소개하고 있지. 자! 눈 씻고 찾아봐. 그리고 너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두뇌로 해석해봐. 어느 구절에서 똥 휴지 가져다주라는 말을 뽑아낼 수 있는지...


뭐라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로 폭넓게 해석 가능하겠다고. 그니까 니 말은 똥 싸고 있는 시민들에게 죄다 휴지 돌리면 그것이 곧 공공이고 똥 닦게 된 시민들로서는 안녕하지 않겠냐. 뭐 그런 거여? 지랄한다. 지랄을 해. 아니 아예 똥구녁도 닦아달라지 그러냐.

니 딴에는 총 찬 경찰이 똥 휴지 가져다주니까 뭐라도 된 거 같지? 너는 문턱 낮아진 공권력에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어. 기특한 마음도 들 거야. 그런데 112 누를 때는 제발 신중해라.

왜 경찰 업무를 법으로 정해 놨게. 그렇게 당하고도 기억 안나는겨? 총과 몽둥이를 가진 경찰이 일제 때, 군부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냐 이 말이야.


경찰이 낄 때 안 낄 때 다 끼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디? 경찰 눈에 밟혀 안 걸릴 사람 있는 줄 알아? 공짜 경찰 너무 밝히다가 죄다 뱉어내야 할 때가 있다 이거야. 이러다 우리나라 경찰국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다. 경찰이 시민의 디테일한 일상에 너무 깊이 개입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야.


부디 시민으로서 품격과 의무 좀 지켜주라.


부탁 좀 하자. 어떻게?


112


꼭 긴급 범죄 신고 때만 누르면 되는 거야.




* '앤 다이야'란 1992년 캐빈코스트너, 휘트니휴스턴 주연의 영화 '보디가드' 사운드 트랙의 가사의 한 대목

'And I~'로 시작하는 가사 일부분을 너도 나도 '앤 다이야'로 패러디해서 불렀음. 들어보면 바로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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