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죽기 전에 파출소로 커피 한 잔 하러 와!

by polisopher

-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빨리 다 꺼져!


여자의 절규 맺힌 소리에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제자리를 잡았어. 그리고 두 손을 오므려 입가에 가져간 다음 방문 손잡이에 대고 여자의 데시벨 보다 한 톤 올려 외쳤어.


- 헌터 파출소 봉철 순경이에요!! 저랑 이야기 좀 해요!! 도와 드릴 테니까!!

- 개 X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저리 가 새꺄!! 부모 형제도 못하는 일을 니가 무슨 수로 도와!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 어떤 일을 당했기에 벌건 대낮에 뛰어내려 죽겠다고 저 난리를 피우는지. 파출소 모든 경찰과 형사들 그리고 관내 119 구급대원이 총출동했어. 50평이 넘는 아파트가 원룸 같아 보이더라.


아파트 거실 입구에는 구급대 침대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어. 구조대원들은 로프를 어깨에 메고 집 안을 분주히 오가다가 안방과 거실 베란다 창밖으로 상반신 불쑥 내밀더니 여자 쪽 동태를 살피고 있었지.


손에 수첩 하나씩을 붙들고 있던 파출소 경찰과 형사들은 여자의 부모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된 거냐고 돌아가며 질문을 하고 있었고, 역시 그들 손에 하나씩 쥐어진 무전기에서는 상황보고를 보채는 다급하고 까칠한 음성과 하울링이, 방안에서 번져 나오는 여자의 괴성과 뒤섞여 찢어진 스피커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고한 여자의 엄마는 여자가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결혼할 남자와 파혼을 하고 나서 증세가 악화되었다고 하더라. 부모 때문에 파혼당했다 생각하는 딸과 평소 잦은 충돌이 있었다는데, 오늘은 오전부터 소주를 붓 더니 저리 되었다는 거야. 심각한 건 방 안에 4살배기 조카가 함께 있다는 사실.


- 소미 씨! 소미 씨! 들리죠? 경찰관이에요.

- 시끄럽다고!! 시끄럽다고 했잖아!!


우울증을 앓고 있는 데다 술에 잔뜩 취해서 죽어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여자, 소미.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으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 방문은 굳건히 닫혀 있어서 안쪽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어. 여자뿐만 아니라 아이의 안전도 장담 못해. 젠장 너희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 돌아버리겠더라.

- 소미 씨!

-......

- 소미 씨!! 괜찮아요! 말 좀 해봐요!

-......


X팔 X팔 내지르던 여자가 갑자기 조용해졌어. 순간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고, 모두에게 입 닥치라고 눈짓했어. 내 몸짓이 상황을 제대로 전달했던 모양이야. 거실 안은 순식간에 적막에 잠겼지.


허공에 메아리는 후련하기라도 하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내 지르는 소리 때문에 목이 훅 나가버린 건 둘째치고 혈관 안쪽이 쪽쪽 마르는 것 같더라. 씨팔, 뭘로 막아놨는지 문은 미동도 없으니 원. 아파트 구조 때문에 여자 방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구조대원의 김 빠지는 소리도 들리고, 문을 부수어야 한다는 파출소장의 목소리도 들렸어.


- 이봐요. 거 젊은 사람이 뭐하는 짓이야. 철딱서니 없이. 엄마 아빠 생각은 안 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지만 상황실의 재촉을 이겨내지 못한 형사팀장이 불쑥 나타나 여자에게 쏘아붙였어.


형사팀장의 팔을 꽉 붙들었어. 쓸데없는 말, STOP! 흔히 죽겠다는 사람 포기시키려고 부모 형제 끌어들여 가족애에 호소하는데 전후 맥락 잘 따져봐. 엄마 아빠 때문에 인생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애한테 부모가 도움이 되겠냐? 모르겠으면 괜히 모닥불에 기름 끼얹지 말고 가만 있어.


- 소미 씨 그게 아니고...... 미안해요.

-......

- 소미 씨!

-......

-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까... 말이 잘못 나왔던 모양이에요.

-......

- 미안합니다.

-......

- 화 좀 푸세요.

-......

- 소미 씨!

-......


갑자기 쎄 한 게 기분이 영 이상하더라고.


- 이런 씨!!


쾅쾅쾅 쾅


- 소미 씨!! 소미 씨!!.... 야!! 씨발 소미야!!


꽉 쥔 주먹으로 방문을 부서져라 쳤어. 목소리는 고함을 넘어 확 찢어져 버리더라. 욕도 막 튀어나오고. 섬뜩해지니까. 생각할 겨를 없이 이판사판 아주 막 나가버리는 거야.


- 어따 데고 욕이야. 씨밸롬아!!


여자가 잘못됐나 싶어 똥줄 타고 있었는데 시원하게 욕을 싸지르는거보니. 별일 없었던 모양이야. 지금까지 숱하게 얻어먹은 욕이지만 방금 것은 달달하게 들리더라고.


- 아 미안! 소미 씨가 죽은 줄 알고......

-......


여자는 다시 침묵했어. 일단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시간을 더 끌 수는 없겠더라. 모진 마음 먹을 짬을 주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더욱 저돌적으로 몰아붙였지.


- 소미 씨! 제발 저랑 이야기 좀 합시다. 네! 무슨 일인지 알아야 도와드리죠.

-.......

- 도대체 얼마나 힘들 기에 죽을 마음까지 먹은 거요.

-......

누가 소미 씨를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

- 내가 죽고 싶다는 사람 여러 명 도와줬거든. 나 한번 믿어 봐요.

-......


혼자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여성 구급대원이 내 앞으로 살짝 끼어 들어서 여자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허사였어.


- 소미 씨! 제발 문 좀 열어 봐요! 일단 이야기 좀 하다가 해결 안 되면 그때 죽어도 되잖아. 어? 사람이 이렇게 사정하는데 말이야....

-......


40분 넘게 나는 구애 아닌 구애를 하고 있었어. 평소 복식 호흡으로 우렁찬 목소리를 관리해 왔지만 이날은 완전히 맛이 가버리고, 머리는 뿜 뿜. 그야말로 용천수 뿜어내듯 땀을 뿜어댔고, 그렇게 흐른 땀은 뒷덜미를 타고 등판을 흥건히 적셨어. 빤쓰도.


그런데 말이다. 골 때리는 일이 벌어졌어... 말하기가 좀 쪽팔린데...... 내가 무릎을 꿇고 있더라. 그니까... 완강히 닫힌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데다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고 있지 뭐냐. 이게 뭔 시추에이션인지.


프러포즈는커녕, 여자 한 번 제대로 사귀어 본 적도 없는 놈이 자살 현장에서 문을 사이에 두고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 매달려 애달픈 고백을 하고 있었던 셈이지. 제발 만나 달라고.


- 다 나가라고 해. 엄마고 아빠고 다 필요 없어. 다 나가라고 해.

-......


여·자·가... 요·구·했·다ᆞ


정전 때문에 암흑에 잠긴 방 안에 갇혀 있는데 갑자기 깜빡깜빡거리며 형광등이 켜지고 동시에 부웅하고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을 때. 알어?


축 늘어진 목소리로 여자는 최초로 요구 조건을 내걸었는데 옛 애인을 불러달라는 것도, 돈을 요구한 것도, 내 목숨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어. 꼴 보기 싫으니까. 모두 나가 달래. 어찌나 반갑던지.


-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내보면 나랑 이야기하는 겁니다. 맞죠? 그렇죠?

- 알았으니까. 씨팔 다 내보내!


나는 거실에 모인 형형색색의 인간들에게 현관 쪽을 가리키며 손등을 휘휘 저었어. 신속히 튀어나가라. 뭐 그런 사인이었지. 가족, 구급대, 경찰들이 썰물 빠지듯 우르르 빠져나가자 집이 휑해지더라. 그리고 즉시 모두 내쫓았다는 걸 보고했지.


딸깍

천국 문이 열리는 소리가 있다면 저 소리가 아닐까. 그 순간 영혼이 이탈하는 듯 몽환적인 체험을 했다. 여자의 죽 가능성이 해제되었기 때문일까. 가로막혔던 답답함이 해소됐기 때문일까.


무릎을 펴고 일어서서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지. 맺혀있던 이슬을 건드린 것처럼 뭉쳐진 땀방울들이 무게를 못 이기고 흘러내리는데 속눈썹들이 그것들을 머금어 버리더라. 눈썹 끝에 걸려 흔들리는 땀방울들. 눈을 꼬옥 감아 보았지. 그 기분 알겠냐? 볼을 거치지 않고 후드득 쏟아지는 땀방울의 느낌을? 샤워하고 물기를 훔쳐내는 것처럼 시원하게 느껴졌어. 전혀 끈적이지도 않았고 말야.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니 원목 서랍장이 버티고 있더라. 손을 구겨 넣어 힘껏 밀어내고 겨우 한 몸 들어갈 틈새를 만들어 비집고 들어가 봤더니, 방바닥에는 소주병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여자는 반 넋 나간 표정으로 몸을 휘청거리며 앉아 있었다. 신기하게도 여자의 어린 조카는 울지도 않고 담담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울음도 애기 짓도 소용없다 듯 체념한 표정이었어. 짠해 보이더라. 여자도 아이도 근처 대학병원으로 후송했어.


여자를 보내고 순찰차 문을 열려고 하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헛웃음이 터지더라. 무릎 꿇고 손으로 싹싹 빌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 말야. 사람은 살려야 하는데 얼굴은 안 보이고, 설득할 말 빨은 달리고, 시간은 가고... 오죽 급했으면...

그거 아냐? 좀 창피하긴 한데 기분은 좋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 나에게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극적인 생존이 환희가 될 수 있다는 게 확 꽂힌 거지. 오버가 심하다고? 지랄 니가 뭘 알겠냐. 내 목숨, 내 먹거리, 내 가오 잡는 것만 관심 있는 너 같은 놈이. 누군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그 몰입의 순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에 도전하고 있는 지 모르지? 지금도 지키고 있으려나 OECD 자살율 1위 국가 타이틀? 이 바닥에 있어보면 그 데이터가 거짓이 아니라는 알게 돼. 돌파구가 보이지 않으니 죽음을 강행하겠지만 죽어도 너무 많이 죽어. 우리는. 그래서 이 놈의 세상이 죽음으로 모는 거 아닌가 생각도 하게 되는 거고.


그래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너는 무척 고독했을 거야. 그래서 너는, 너도 세상의 모든 것도 무가치하게 느꼈는지도 몰라. 하지만 말이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해볼 게 있어. 가까운 파출소에 찾아가 보는거야. 가서, 커피 한 잔 달라고 해. 한 모금 마시면서 말하는 거야.


죽고 싶다고.


그러고 나서 결정해. 그래도 안 늦어!


ᆞᆞᆞkantrolᆞᆞ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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