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문은 진실보다 강하다

by polisopher

들어 봐.

네가 인사이동 때문에 다른 지역이나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됐어. 첫 출근날이 온 거야. 너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겠지. 계장이나 팀장이 꼴통은 아닐까. 누가 갈구지는 않을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을까. 등등 낯선 환경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이라면 아마 같은 심정일 거야. 그렇게 긴장감 잔뜩 안고 사무실 문을 과감히 젖혔어. 너는 최대한 밝고 예의 바르며 샤프해 보여야 했지. 그래서 방긋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을 거야.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전입 온 000입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잘 가르쳐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넙죽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 180도 스캔했어. 그런데 느낌이 묘해. 너를 둘러싼 자들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인 거야. 그들이 손을 뻗으며 인사말을 건넬거야.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요. 굉장히 성실하다고......'

'수사 파트에서만 10년 넘게 있었다며? 그럼 조사는 발가락이겠네.'

'아내 되시는 분이 00 파출소 누구죠?'

'00 지방청 누가 그러던데. 술 잘 하신다고.'

'이번에 좀 아깝게 됐어요. 1년 동안 열심히 했을 텐데, 뭐 내년에는 되겠죠.'


이런 말들 들어 본 적이 있을 거야. 없었어? 잘 생각해봐. 기본 인적사항이 까발려지는 것 그렇다 치자, 업무에 대한 평도 이해할 수 있다 이거야. 그런데 성향, 취미, 주량, 인간관계 등, 너도 잘 몰랐던 너의 사적인 것들 오늘 처음 본 사람들 입가에 돌고 있다면, 어떨 것 같냐? 나는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된 기분이더라. 아주 X같았지.


중요한 건, 그렇게 까발려진 것들이 죄다 추측성으로 버무려진 쓰레기라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누구이며, 무엇을 잘 하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직접 설명하고 보여 줄 기회를 얻기도 전에 너는 이미 '어떤 놈'이 되어 있어. 파란 도장 찍혀서 매달려 있는 도축장의 돼지고기 신세랄까. 그렇게 등급수에 따라 택을 달고 소매상으로 팔려 나가지. 소비자들은 의심 없이 필요한 등급의 고기를 살뿐이고.


사전 보니까. '세평이란 세상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평판이나 비평'이래. 어려울 거 없어. 그냥 소문이야 소문. 그니까 소문으로 한 사람을 평가한다 이 말씀이야. X같은 건 그렇게 형성된 세평이라는 것이 호적이 되어버린다는 거야. 민법이 개정되어서 호적이 없어졌지만 출신은 죽을 때까지 따라붙지. 고향이나 본적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 수 없다만 죽어서도 남는다.


그렇게에 대한 평이 왼쪽 엉덩이와 이마빡에 딱 찍혀서 다른 지역, 다른 부서 어디를 가더라도 훤히 비춘다. 그래서 '착한 놈'이 붙으면 다행이지만 '엿같은 놈'이 되어버리면 끝까지 엿이나 빨고 있어야 해.


보직공모에서 번번이 물 먹는 사람은 그래서 이상한 거야.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기량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데도 안 되니까. 한두 번은 겸손해지거든. 내가 부족하니 좀 더 준비하자는 쪽으로. 그런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계속 밀려나면 이건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다고 직감하게 되는 거지. 그게 바로 세평라 불리는 경찰의 공식 문화야.

그런데 세평이라는 게 주위 사람의 이야기잖아. 겨울밤 모닥불에 앉아 밤을 새우며 지껄이는 시시껄렁한 이야기 같은. 재미는 있어도 진지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덧입혀진 소문들이 바로 너를 만들어. 이해했어?


너의 동료 중에 너와 친한 자는 좀 과장을 해서라도 좋은 말을 해주겠지. 하지만, 오늘 점심 메뉴 선택 때문에 너와 대판 싸웠어. 씩씩거리며 담배 태우고 있는 걔한테 누군가 너의 세평을 묻는 다면 어떨까. 좋은 말이 나올까? 뭐라? 긍정적으로 평가해준다고? 지랄 났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 기호나 성품에 따라 한 사람이 평가되고 그 평가가 인생의 향방에 심각하게 개입한다는 사실이야. 공정ᆞ객관ᆞ정의 따위를 쌈 싸 먹어버린 세평 따위가 어떻게 한 인간을 벼랑으로 내 모는지 우리는 보고 있어.


요즘 이 세평 때문에 경찰청이 벌집 쑤신 듯 난리가 아니다. 한쪽에서는 수사권 구조개혁한다고 인권 경찰을 연호하면서도 그 말에 침을 뱉기라도 하는 듯 뒤에서는 어설픈 소설보다 못한 조잡한 세평 따위 버젓이 공문서가 되어 타깃이 된 직원의 옷을 벗기는 자료로 쓰이고 있어.


믿기니? 하나의 창작물에 불과한 그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게. 똥 휴지로 쓰기에도 더러운 종이 쪼가리 하나가 누군가의 자녀이자, 아내이며, 어머니이자 무엇보다 전문 직업인이었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버렸다면 어떻게 생각해?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다가 누군가의 모함으로 조작 꾼으로 몰린 경찰관. 조작된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 감은 감찰. 공정하지 못한 행태가 발각되자 그 경찰에 대해 세평을 멋대로 작성해서 '파렴치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실. 나 영화 이야기 하는 거 아니다.


아까 내 상황이 ‘트루먼'같다고 했잖아. 물론 너희들도 그렇고.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1984의 스미스'가 맞는 것 같아. 모두가 감시자고, 서로의 감시로 인해 우리의 자유와 권리는 강도질 당했어. 그래서 몸 사리느라고 그렇게들 애를 쓰는 거겠지. 인사고과나 좋은 자리 가려면 X같은 세평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나? 나는 세평에서 자유롭냐고? 글쎄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잔뜩 떠벌리고 있는 지금도 세평을 의식해서 인지,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인지...... 빌어먹을 이래도 저래도 묶인 신세네!


다이내믹한 사건 현장이 오케스트라라면 파출소 순경인 나 봉철은 마에스트로야. 그런데 온전히 지휘에만 집중할 수 없어. 미안해 저 딴 것들이 자꾸 신경 쓰. 그러니 경찰의 어두운 쪽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야.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경찰은 밝을 수가 없어.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경찰이 밟는 모든 땅이 슬픔과 눈물과 분노로 가득 차 있거든. 그저 밝음을 희망할 뿐인 거지.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다만 생존 의지가 시키는 대로 고통에 대하여 벌이는 휴전 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쇼펜하우어가 저런 말을 했대, 어때 정말 그런 거 같냐? 하우어 성님 말은 성공을 위해 열심히 뛰는 것도,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것도, 남녀 간의 사랑을 나누는 것도 죄다 의미 없는 짓거리라는 거야. 그냥 태어났으니 살 수밖에 없다는 식이지. 우리 할머니도 생전에 그런 말씀 입에 달고 사셨는데 '못 죽어서 산다고'.


쇼펜하우어의 저런 뻘 소리가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 오더라. '병을 고치고 싶다면 썩고 문드러진 환부를 찾아 드러내라.'고. 부정의 밑바닥까지 가보아야 긍정의 의미가 더 크게 오지 않겠냐는 거지. 꿈보다 해몽이지 뭐. 아무튼 경찰의 가치를 아는 인간들이 불편한 진실 앞에 눈 감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나처럼. 그래야 빛이 조금 더 가까워질 테니. 내 말이 맞냐? 틀리냐?

ᆞᆞᆞkantrolᆞᆞ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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