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의 따사로운 어느 오후, 아버지가 자살을 기도한다는 신고를 받았어.
아버지와 떨어져 지낸 아들은 아버지가 우울증도 있고 전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없었다.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사를 했던 거야.
젠장 도대체 어디로 간거여. 위치추적 신청하고 동시에 자살기도자 휴대폰 번호를 눌러댔지. 안 받아. 신경질적으로 다시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어. 계속 누르다보니 왜 그런거 있잖아. 받든 안받든 또 눌러버리게 되는거 말이다.
"....."
이거 알지? 상대가 전화는 받았는데 아무말 않는거. 그런데 얼마나 반갑던지...
"선생님 경찰관입니다. 아드님이 전화 주셨던데요. 괜찮으세요?"
"나 죽어버릴거니까."
"에이 죽긴 왜 죽어요. 저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내 맘이야. 당신은 끼어들지마."
그리고 딸깍 끊어버리더라. 그러나 포기할 수 없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전화뿐이라서.
이후로 끊고 받기를 수차례. ‘죽어버리겠다.’ ‘아니 죽지마라. 나랑 이야기하자.’ 수십분 동안의 무수한 대화를 나눈 듯 했지만, 요약해보면 위 두 마디가 전부였지.
소득 없이 대화가 지루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자살기도자도 지루해하고 있다는 뜻이거든.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을 암시하고 끊어버리더라. 농협 근처라는 말만 흘린 채.
젠장. 마지막 단서를 붙들고 서둘러 순찰차에 올라탔어. 직감을 의지해 근처 농협으로 달려갔어.
농협에 도착하기 전 멀리서 주변 스캔을 하였고 농협 가까이에 공원을 발견했어. 한적해보이는 것이 자살 기도자가 머무르기에 적당해 보이는 장소같더라고.
순찰차를 세우는 둥 마는 둥, 내리자마자 그쪽으로 잽싸게 내달려 보니 런닝셔츠 바람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남성이 보이더라. 공원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그는 오른 손에 과도를 쥐고 말야.
'썅.. 죽을지도 모른다.'
현장경찰이라면 똥인지 된장인지 맛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을 갖게 돼. 계산 때릴 여유 따윈 없었지.
섬광처럼 저런 생각이 터지자. 먹이 쫓는 하이에나처럼 남자의 칼 쥔 팔뚝만 보며 뛰었지.
이때 인기척을 느낀 남자가 뒤돌아섰고 나를 발견하자마자 칼을 자신의 팔목을 그으려 하더라고 그런데 내 손동작이 조금 더 빨랐어.
나는 남자의 팔을 낚아채고 붙들었지. 이때 거의 동시에 달려 온 나의 파트너가 상대의 오른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일단 됐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문제였어. 남자는 제압되지 않고 있었거든. 나름대로 터푸하다고 자부해 온 나로서는 후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팔뚝을 극복하지 못했어. 마동석을 연상케하는 그의 팔심은 두둑했고 타이어처럼 짱짱했거든.
아무튼 두 손으로 상대의 팔목을 붙들고 벤치의 틈새로 칼을 끼워 빼보려고 용을 썼지만 쉽지 않았어.
어느새 손바닥에 땀이 차고 있었는데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두 손이 미끄러지면서 칼날과 자꾸만 가까워지려고 하더라고. 아후 C.
그 상태에서는 내 상체를 이용해 남자의 팔을 짓누를 수밖에 없었어.
남자의 칼날은 내 손가락과 손목 쪽에서 하늘하늘 거리고 있었어. 5월의 어느 따사로운 봄날 나는 푸르른 공원에서 한 남성과 칼춤을 추고 있었던 거지. 그 남자도 살고 나도 살아야하는 칼춤 말야.
말이 늘어지고 있는데 여기서 좀 끊을게. 결국 나도 동료도 그 남자도 모두 무사했어. 칼을 내려놓게 한 다음에도 한참 동안 남자를 타이르고 진정시켰지. 신고한 아들이 올 때까지.. 그렇게 우리는 자리를 뜰 수 있었지.
남자를 살리고 우리도 살기위해 모든 근력을 썼고, 무수한 말을 쏟아낸 탓에 파출소로 돌아가는 순찰차 안에는 단내와 침묵이 진동했지.
그런데도 머릿속에 남자에게 했던 이 말이 떠나지 않는거야...
“선생님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나 살고 싶어요. 그러니 칼 내려놓고 이야기 좀 합시다.”
다음날 가정의 달 5월의 선선한 어느 저녁, 야간 근무 교대와 동시에 코드‘0’이 터졌어. 아빠가 엄마를 칼로 위협하고 있다는 신고였지.
커피 한 잔 할 생각이었지만 허사였다. 순찰차 PDA 화면으로 신고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는 문자를 보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어.
순찰차 경광등을 끄고 현장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순찰차 두 대를 세우고는 이미 모의한 대로 작전에 들어갔다.
“테이저를 쏴야 할지도 몰라. 내가 쏘면 남자를 순식간에 에워싸고 안전하게 체포하자. 알았지.”
현장에 접근하자 신고자인 딸의 말과는 달리 남자는 어제 자살하려던 남자의 과도 보다 더 날이 선 칼을 들고 아내의 뒤쪽에서 걷고 있더라고. 알지? 귀가 쫑긋해지고 머리카락이 정전기에 일어나든 빠직거리며 서는 느낌.
테이져를 꺼냈어. 그리고 남자가 아내를 벤치에 앉게 하고 칼을 흔들며 이야기 하고 있을 때,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다가 잽싸게 여자 앞을 가로막고 남자를 향해 테이져를 겨누었지.
“내가 어떻게 해주기 바라는데..”
비웃는 듯 씨익 거리던 남자는 자신의 복부에 칼날을 대더라고. 히익. 이런 C-8.
'칼 버려'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를 향해 손가락을 당겼어.
"으악"
복부와 팔 쪽에 전극침을 맞은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칼을 떨어뜨렸어. 주변을 감싸고 있던 동료들이 이를 놓치지않고 그를 붙잡고 수갑을 채웠다.
남자도 아내도 우리들도 안전했지만 나는 가슴을 또 쓸어내렸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또?이런 C-8.. 끊었던 교회... 다시 다녀야하나...'
죽음의 공포를 이틀 연속 넘긴 것, 누군가는 액땜을 했다고 하지만 지랄.. 이틀 연속 액땜하는 경우도 있는가.
돌아오는 순찰차 안에서 내내 찜찜함을 지울 수 없겠더라고.
"푸후...젠장알."
2013년 경찰청에서 경찰관 1만73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2.4%인 1만4271명이 사건현장 목격 후 PTSD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 3분의 1이 넘는 5309명은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완전PTSD 상태’란다.
즉 데이터를 해석해보면 경찰관의 80%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얘긴데 조금 오바 해서 말하자면 경찰청이란 거대한 ‘정신병동’인 셈인거지.
공교롭게도 이 수치는 15만 조직 내 현장경찰관이 차지하는 비율과 비슷하다거.
조직은 현장경찰관이 피습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방검복을 안 입었기 때문이야.’
‘테이져를 안 찼기 때문이야.’
‘역할 분담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야.’
‘결국 시키는 대로 안 해서 그래.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해.’
그려. 알어. 교육이 중요하다는 거. 그래서 현장은 또 고개를 숙이고 강당에 들어가겠지....
그런데 알아? 그렇게 ‘교육 강화’를 외칠 때 현장의 머릿속은 뭐라고 절규하는지?
한번 들어볼래?
눈 좀 감아봐.
“나 죽고 싶지 않아. 무서워. 도망가고 싶어. 칼 버려. 저리가. 제발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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