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마디 하나하나가 싸락눈처럼 바스라지는 순간에도 사람 마음이란 건 당최 식을 줄을 모른다. 두려움은 간절한 발걸음에 짓밟히고, 고요한 일상은 무심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묵은 마음을 토해낸다. 그렇게 그녀는 별안간 사라질 것이다. 마음이 따뜻해질수록 더 빨리.
한강 작가의 <작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문득 가슴팍을 울컥 치고 올라오는 파도를 애써 잠재우게 되는 건, 그 파도가 너무 투명해서 똑바로 마주하기가 부끄럽기 때문은 아닐까. 본디 진심이란 게 눈처럼 하얗고 물처럼 투명해서 한번 받아들이면 탁한 위선의 껍데기를 다시 쓰지 못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한강은 그렇게 찰나의 진심을 지나치고 묵혀두다 삶의 마지막에 서서 딱딱하게 응고된 진심을 힘겹게 게워내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육신을 보며 삶의 허무함을 깨달으면서도 모든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의 진심을 토해내는 여자의 모습에서 한강이 바라보는 인생의 본질이 느껴진다. 녹아내리며 소멸하는 삶을 더 뜨거운 사랑으로 감쌀 줄 아는 용기를 발판 삼아 똑바로 기립한 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인생이라는 걸 말이다.
오래 전 마음에 품었던 이 작품을 오랜만에 곱씹으니 왜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