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을 이 사람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될 때가 있다.
가령, 자녀의 결혼식을 앞두고 당연히 알려야 할 사람, 알릴 필요까지는 없는 사람으로 딱 구분된다면 참 편하겠지만 애매하게 그 중간에 위치한 사람.
알리자니 좀 뜬금없을 것 같고 안 알리자니 나중에 서운해할 것 같은 사람.
사람들이 경조사를 대하는 태도는 나름 은밀한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퇴직이라는 경사를(?) 앞두고 그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이 사람한테는 찾아가서 직접 알리고 가기 전에 꼭 밥 한번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편하다. 이제 다음 달부터는 백수 되니까 점심이랑 커피도 사달라고 떼도 쓴다.
'이 사람은 그냥 인사 정도만 해야지'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편하다.
그런데 참 애매한 사람들이 있다.
저 사람이랑은 한번 식사를 해야 할까? 그래도 그동안 쌓은 정이 있는데... 생각하다가도 좀 애매하다. 만약 그 사람이 먼저 가기 전에 밥 한번 먹자 운을 떼면 그래 언제 만날까? 약속을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무 소리도 안 하니 나도 그냥 가만히 있는다. 결국 식사 한번 못하고 작별을 한다.
의외의 사람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분은 부처에서 많은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분이다. 나와도 그렇게 편하게 얘기할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부처에 복직하여 2%의 의구심을 떨쳐내기까지 시간을 벌어준 분이다.
내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으면 기분 나쁘실 것 같았다. 나는 그분을 만나 직접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음이 편하냐? 그럼 되었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된다. 요즘처럼 할 일 많은 세상에 꼭 공무원일 필요는 없지 않으냐?
깊은 마음속 잔설(殘雪)이 녹아내린다. '스르르'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입술을 꾹 다문다.
공무원 경력이 오래된 노련한 인생 선배의 순간적인 반응이었겠지만 이제 와서 '미쳤냐? 공무원을 진짜 그만두게?' 하는 반응보다는 훨씬 낫다.
더 의외의 상황도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짜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그러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내가 사직할 거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다
"저 퇴직해요"
"응... 응? 언제??"
그렇게 복도에 서서 한참을 얘기한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이었다. 일과 관련해서 몇 번 부딪친 적도 있었다.
알려진 것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인데 회사에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조직에 맞추지 않는 사람은 평가절하한다. 그렇게 희생되었다.
아콰마린이라는 보석은 다른 보석들과 다르게 밤에 더 빛나는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그분이 다른 조직에 있었으면 더 밝게 빛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안타깝다.
나만큼이나 좀 더 인생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
그분은 나에게서 어떤 희망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분은 내가 사무실에 머무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와 함께 했다.
좋은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혹시 "사직"을 "휴직"으로 잘못 알아들은 걸까?
정말 썰렁한 반응으로 나를 민망하고 슬프게 했다.
그래도 괜찮다.
어릴 때 봤던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서는 막다른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이 평소와 다른 행동으로 주인공을 놀라게 하곤 한다. 평소 친절한 사람이 보물을 훔쳐 줄행랑친다든지, 평소 뚱하고 말도 없던 사람이 악당들이 쫓아오는 상황에서 절벽에 매달린 주인공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는 식이다.
나도 막다른 길에서 의외의 보물을 줍기도 하고 의외의 길에서 넘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야지.
영화의 주인공 해리슨 포드도 항상 코웃음 한번 날리고 임무를 완수하러 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