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네"
"O월 O일자로 사직하려는데 가능할까요? 이것저것 행정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 고려해서요"
"... 혹시 근무년수가 20년 넘으셨어요?"
"아뇨"
"퇴직 희망일을 쓰긴 하는데 꼭 그때 사직할 수 있다고 확답드리기는 어려워요."
"그럼 일단 과장님과 말씀 나눠보고 다시 협의하도록 해요. 감사합니다."
스크린에 짧은 대화글
이게 뭐라고 손바닥에 땀이 배고 등줄기가 꼿꼿해진다.
2019년 사표를 냈다.
감히 대한민국에서 공무원 그만하겠다고 사표를 냈다.
여기가 어떤 곳인데 감히 사표를 쓰다니...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만큼 오랜 옛날부터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우리 주변의 아주 작은 의미들을 남들보다 더 오래 주시하면서 의미를 곱씹곤 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내가 생각하는 삶의 중요한 가치에 누군가 한 명이라도 주목한다면, 그렇게 계속 쌓이면 그게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조직은 내게 월급을 주었고, 사회적인 지위를 주었고
굳이 나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공무원'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었다.
회사 지하철역에 내리면서 습관적으로 공무원증을 찾을 때 딸랑딸랑 나는 소리는 얼마나 경쾌한가?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식사하러 가는 직원들 목에서 반짝이는 공무원증은 또 얼마나 든든한가?
대신 조직은 직원들에게 조직의 비전과 목표를 최우선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조직의 스케줄에 맞춰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한다.
하라는 건 해야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하고, 여기서 일하라면 여기서 일하고, 저기서 일하라면 저기서 일해야 한다.
간부들은 직원들이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단다. 그냥 하라면 하는 직원을 좋아한단다. 그냥 하라는 대로 잘하는 직원은 말 잘 들으니까 내 밑에 두고 싶다.
그렇게 영혼 없는 직원이 되어 간다.
무기력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나는 이렇게 평생 하라는 일이나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옛날 책 카피처럼-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은데 꼭 여기가 아니어도 되잖아?
덫에 걸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내가 살아온 길에서 빠져나가기엔 가진 것이 너무 많았고
이대로 남들 하는 것처럼만 살면 더 많은 것이 주어질 것을 알기에
그 덫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하게 내 발목을 옥죄고 있었다.
내가 내 삶을 장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표를 제출하러 가기 5분 전
숨을 고른다. '긴장감'
데뷔 무대를 앞두고 있는 발레리나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 5분이 이런 기분일까?
나는 일어나 걸어갔다. 도중에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끝난 게 아니니 끝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인사팀 분위기는 따뜻했다. 인사팀장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완전히 내 느낌이지만- 인사팀 직원들도 숙연해지는 것 같았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아직도 가시기 않은 긴장감 사이로 스르르 안도감이 들면서 힘이 빠졌다.
일분 일분이 살얼음의 연속이다. 그 일분 사이에 몇 가지의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제발 온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지 말길. 나는 기도했다.
앞으로 사표가 수리되기까지 한 달
그동안 계속 그랬듯 감정의 마지막 회오리가 불어닥칠지도 모르겠다.
각오하고 견뎌야지
사표 제출 직 후 나는 그동안 고이고이 숨겨 두었던 글들을 우르르 꺼냈다. 그리고 당당하게 수정했다.
드디어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이 글에서는 사직할 거라는데 실제로 사표를 쓸 수 있겠어? 싶은 직원들을 정면으로 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을 선택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