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를 제대로 이행한 사건이었다.
수험기간에 비하면 합격의 기쁨은 정말 잠깐이었다.
입사 후 나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힘겨운 적응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회사 선배들과 부모님은 3개월만 지나면, 3년만 지나면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적응하고 승진을 하고 후배들도 생겼다.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내게 했던 똑같은 말을 해 주었다. 그렇게 남들과 비슷하게 끝까지 가도 나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내 주변의 동료들과 선배들이 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의지도 없고 치열함도 없고 승진, 월급, 조직개편, 인사이동같이 외부 여건에 따라 좋았다 나빴다 하며 살고 있었다. 원래 삶은 그런 거라고. 살다 보면 좋을 날 올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조직에 함몰되어 딱 월급만큼만 일하면 된다고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나에게도 조금씩 스며들었다. 나는 점점 그들을 닮고 있었다. 그러다 불쑥불쑥 드는 생각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조직의 일원으로 강한 보호를 받고 매달 월급과 정기적으로 보너스를 받는 대가로 조직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내가 구차하게 느껴졌다. 항상 긴장 상태로 간부들의 질문에 빠르고 정확하게 응답하기 위해 카톡을 신경 쓰는 내가 싫었고 부서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 사람이 말하는 스타일을 연구하고 가급적 거슬리지 않도록 애쓰는 내가 한심했다.
복직 후 당당했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조직의 눈치를 보는 직장인이 되고 있었다.
남들 다 부러워하겠지? 그런데 나는 행복한가? 그렇게 정년까지 공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할까?
하나뿐인 삶인데 이렇게 자극도 없고 흘러가는 대로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맞는가?
마흔 무렵 강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리 많은 기회가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다.
목적을 가지고 다시 한번 몰입해 살고 싶었다. 살면서 이런 확신은 다시없을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는 매번 행복하지 않다. 시간이 가도 행복하지 않을 거다. 는 결론이 났다.
그런데 사직을 결정하는데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직하고 싶다와 사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공무원들은 누구나 '사직하고 싶다' 또는 '사직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사과에 사직의사를 밝히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직처리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사직하자는 결론을 내고도 차마 사직서를 제출하지 못하게 하는 이 마음의 정체를 확인하는데만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공무원 15년의 경력과 그간 차곡차곡 쌓인 월급과 연금,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은 무언가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임을 깨닫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고민의 시간 동안 하루에도 스무 번, 서른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살았다. 이건 삶이 아니었다.
마음을 비우는 것. 내려놓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글을 쓰게 된 것이 공무원으로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데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쓰고 한 편씩 완성할 때마다, 습작을 거듭할수록 글이 좋아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행복했다. 고민 고민하다 문장 하나 완성하고 속이 풀리는 기분이 들 때마다 짜릿했다.
나는 나를 둘러싼 단단하디 단단한 알을 깨기로 결심한다.
알을 깨기 위한 망치질은 한 방으로 부족했다. 한번 하고 멈출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조직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나의 자유의지를 침해당하는 삶을 살지 않기로 했다.
결혼이나 출산 같은 중요한 개인사부터 산책하고 글 쓰는 소소한 자유까지 조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탈피하여 내 자유의지로 온전히 내 삶을 장악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나는 마음속 깊이 똘똘 똬리를 틀고 있는 욕심을 풀었다.
그렇게 자유로워졌다.
나는 요즘 매일 같은 장소에서 글을 쓴다. 생활은 아주 단순해졌다.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그 이후에는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저녁에는 아이들과 지낸다. 내가 바라던 대로 아이들 공부하는 것을 봐주고 좀 더 푹 자게 한다.
사직하기 전 나를 끝도 없이 괴롭히던 번뇌는 없다. 나는 공무원일 때 일하면서 열심히 살았듯 지금도 열심히 산다.
작가로 먹고 살만큼 벌었으면 좋겠다는 현실적인 바람이 있지만 지금은 일단은 많이 쌓아 둘 때임을 안다. 그래서 조급하지 않다. 그래서 더 좋다.
삶은 이렇게 감사하다.
삶이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냥 일상의 집합이다. 밥 먹고 잠자고 일어나 또 생활하는 일상의 총합이다. 남들이 미쳤다고 하는 사직을 했으나 일상이 계속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길은 끝날 것 같지만 계속 이어진다. 끼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