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이 공무원을 그만두라고 권고하는 글이 아님을 밝혀둔다.
'사직하겠다고 처음으로 말한 날 펑펑 울었다'는 2011년 봄에 작성한 글이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블로그에 쓴 글인데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검색해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댓글이 70개가 넘어서고 있으니 글을 접한 사람들은 훨씬 많을 거다.
신기하게도 친구(y)가 사직과 관련한 글을 링크해 주었는데 그게 내 글이었다.
몇 개월 후에 육아휴직을 하고 둘째 낳아 키우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블로그에 점점 늘어나는 댓글이 부담스러워 나는 블로그에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블로그에 대한 관심이 오직 그 한 편의 글 '공무원 그만두고'에 쏠려 있었다.
댓글을 쓴 사람들이 또 서로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모임을 만들자. 여기 주인장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러고 있었다.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한 나는 한마디도 쓸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 사람들에게 어떤 책임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2019년이 되었다. 드디어 지그시 누르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고 홀가분해졌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었기에 신중하고 싶었고 털끝만큼의 후회도 남기지 않기 위해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내 의식의 흐름을 찬찬히 진지하게 살피고 기록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어떤 속도로 진행해 나가야 하는지 치밀하게 고민하고 분석했다.
이제 16년 차 공무원. 나는 이제 거의 대부분 크게 당황하지 않고 다음 상황을 미리 짐작할 수 있는 노련함과 조직 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깜냥도 있는 중견 공무원이 되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보통 이상의 삶을 살았을 거다. 그러나 나는 사표를 썼다.
2-3년 차 공무원 초년생의 사표와 16년 차 공무원의 사표는 그 의미도 무게도 다르다.
3년 이내의 사회초년생들이 그동안 부모님 밑에서 자식으로, 학교에서 학생으로 보호받고 어느 정도 실수도 용인되는 삶을 살다가 갑자기 내가 받는 월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홀로서기 중에 느끼는 고통으로 생각하는 사표와는 그 의미도 무게도 다르다.
이미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부모로서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통스럽지 않음에도 나는 새로운 것을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것. 제2의 인생을 행복으로 채우기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았을 텐데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모든 걸 비우고 새로 채워야 함에도 나는 용기를 내었다.
날 걱정하시는 분들은 휴직을 좀 하면 어떻냐, 교육을 좀 다녀올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신다.
내가 그 생각을 안 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리란 것을.
휴직 후 또 1-2년 잘 다닌다. 또 사직을 생각한다
교육 후 또 1-2년 잘 다닌다. 또 사직을 생각한다
평생 상황에 이끌려 그럭저럭 살다가 정년을 맞이한다. 그렇게 늙어 간다.
공직에 갇혀 있기는 싫고 그 혜택을 놓치기도 싫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얍삽한 수를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떨쳐버리고 새로운 삶에 몰입하고 싶었다.
또한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끔 다가오는 희미한 기회의 문을 훌쩍 넘지 못하면 영원히 어둠에 갇힌다는 것을. 언제 열릴지 모르는 문을 기다리며 영원히 어둠에 갇힌다는 것을.
이젠 계속 글을 쓸 수도 있고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은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 분들에게 내 경험을 얘기해 줄 수도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퇴직하라고 권유하려는 게 아니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데 참고하라는 의미이다. 비단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내가 오랜 기간 걸어온 길에 의심이 들기 시작한 사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는 사람
다들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또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이젠 다르게 살고 싶은 사람,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 사람 등
현재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내가 되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이 사회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남은 인생은 중요한 가치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살기 위해 공무원을 사직했다.
그래서 나의 경험이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단 사람들을 포함하여 내 글을 즐겨찾기하고 들어온다는 사람들. 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울림을 준다면 내가 앞으로 추구하려는 가치의 첫걸음으로 충분하다.
공무원을 사직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몇 가지 말씀드리겠다.
1. 공무원을 꼭 정년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적당한 때 그만둘 수 있다.
공무원으로 10년 이상 근무하면 공무원연금 대상자가 된다. 현재 내 예상연금액이 90만원 정도이니 10년이면 그것보다는 적을 것이다. 20년을 채우고 명예퇴직을 할 수도 있다. 명퇴수당도 받고 한 직급 승진도 한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에 뿌리내린 관성은 점점 더 바꾸기 어려워진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까지 근무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정해진 사람들과 정해진 일을 하고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월급을 받고 정해진 범위 내의 연가를 쓰고 정년까지 근무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이건 맞다 아니다의 차원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 된다.
의식하지 않고 살면 그냥 꼰대 공무원으로 퇴직하고 퇴직 후 나머지 인생은 뭘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한다.
몸에 익숙한 것을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너무 이상하다. 내 몸에는 이미 앞으로 갈 길에 대한 지도가 새겨져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지도는 점점 더 선명해진다.
그러니 그 지도를 계속 그릴 지 말지 항상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2. 사직하고 싶은 이유가 조직 내에서 해결 가능한 것인지 판단한다.
조직 내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해결하고 계속 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투자한 것, 이룩한 것들은 소중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직에 머물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면 부서장에게 업무를 줄여달라고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업무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다.
어떤 사람 때문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서를 옮겨달라고 하고 아파서 힘들면 잠시 쉰다.
이 부처가 싫으면 다른 부처로 전입할 수 있다.
승진하고 싶으면 답은 뻔하다. 열심히 일 하거나 승진이 빠른 부처로 옮긴다.
해당사항이 하나도 없는데 일 자체가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곧 승진소요가 있다. 그러면 좀 더 기다린다. 공무원에게 승진은 단비 같은 존재이다.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라면 부서장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나로 인해 상대적으로 누군가가 힘들어질 것 같으면 적당한 자리를 이용하여 이해를 구한다.
진정성은 사람에게 와 닿기 마련이다. 사람 사는 곳인데 이해 못할 게 어디 있겠는가?
3. 조직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본격적으로 고민한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내가 현재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회사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을 내가 장악하고 싶다.
조직 내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사직함으로써 내가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한 손익계산을 해 본다.
문제는 손익계산으로 나오지 않는 아주 미묘한 차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거다.
바로 이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나에게 좀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글쓰기를 내가 원하는 때마다 원하는 만큼 하고 싶다. 갑작스러운 보고서 제출 독촉을 받고 싶지 않다.
그런데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아쉽고 6개월 후면 승진도 할 거 같고 그동안 쌓은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 공무원은 사직하면 끝이다. 경력자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없다. 엄마 아빠가 내가 공무원이라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 말은 또 어떻게 하지? 그래도 이렇게 계속 사는 건 아닌 것 같고...
계속 갈등이 되고 매일매일 같은 고민을 하면서 그렇게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간다.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이렇게 자기 직업에 몰입하지 못하고 갈등 속에 살다가 명예퇴직이 가능한 20년을 보내고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조금만 더 힘내자 하면서 정년까지 한다. 그렇게 늙어간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갈등이 심하지만 쉽게 결정되지 않는데 억지로 결정하는 것은 부작용이 온다. '후회'라는 부작용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회사가, 월급이, 지위가, 사람들의 시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랬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보는 게 필요하다. 확신이 들 때까지
공직에 오래 머물수록 점점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다. 돈도 더 많이 받고 무슨 과장, 무슨 국장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커리어가 생긴다. 거기에 만족하면서 내가 원하던 것들이 있지만 포기할 수 있다면 그건 공직이 답인 사람이므로 계속하는 것도 괜찮을 것다.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어느 순간 내가 앞으로 새롭게 해 나갈 일들이 지금까지 이룬 것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비슷하게 값지게 느껴지고, 지금 내 나이가 새로 시작해도 괜찮을 나이이고 지금이 아니면 분명 후회할 것 같은 강력한 확신이 들고 특별히 어떤 계기로 그 기회를 만났다면 그 절묘한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땐 오직 나 자신만을 믿고 나가야 한다. 물론 그 절묘한 순간은 본인만이 알 수 있고 그 결과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 절묘한 타이밍을 만난 것 같고 확신도 드는데 뭔가 계속 망설여진다면 아직은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 자신이 안다.
승진도 월급도 사회적 커리어도 부모님의 기대도 다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잠깐이 아니라 계속 그리고 점점 더 강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 때가 온 거다. 그건 나만이 알 수 있다.
4. 사직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면 사직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는 게 좋다. 연간 월간 일간 계획 등 공무원일 때 하던 것처럼 추진계획표를 짜 보면 사직에 따른 불안함을 줄일 수 있다.
나는 매일의 글쓰기 스케줄과, 월별 내가 들을 강의, 시도할 것들, 내년 목표,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의 차선책 등을 아이들 진학 단계를 고려하면서 표로 정리했는데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이 한눈에 보여서 좋았다.
방심하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다. 자존심 상할 정도로 별로인 사람이 나를 동급 취급할 수도 있다.
평생 어떤 노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은 평생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꼭 수입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 아이들을 위해 이웃을 위해 좀 더 넓은 범위의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5. 모든 과정을 거쳐 최선의 방안으로 사직을 선택한다면 그땐 정말 해방이다.
나에게 가장 큰 열망은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가야 하니까 보고서를 내야 하니까 기한을 맞춰야 하니까 남들 다하는 승진이니 나도 너무 늦지 않게 해야 하니까 이런 마음으로 평생 무언가에 끌러 다니면서 맹물 마시듯이 살고 싶지 않았다. 주도적으로 살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대로 내 아이들의 성장주기에 따라 가치를 실현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주도적으로 내 삶에 몰입해서 사는 것. 나에게 행복한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조직 내에서는 삶의 주인공으로 살기가 불가능했고 그래서 사표를 냈다.
지금 정리하고 있는 이 글들을 나와 같은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경험을 들려주는 것. 사직이 답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으나 마지막 2%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내가 삶에서 실현하려는 가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절대적인 양만큼 사직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이제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어차피 언젠간 해야 할 일 또는 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직감이 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누군가 좀 주도해 주었으면"하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오늘의 내가 가장 건강하고, 가장 아름다운 때이므로 지금을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이 강해진다.
이젠 자동으로 쓰러지는 도미노 놀이를 끝낼 때이다.
이젠 새로운 블록을 쌓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