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양말을 선물했다

by 고도리작가

남편은 매일 검은색 양말만 신는다. 양복바지 위에 제일 무난하고 티 나지 않는 검은색 양말.

어디 막일을 가는 것도 아니고 험하게 신을 일이 없을 것 같은데도 남편 양말은 쉽게 헤지고 구멍 나곤 했다.

집에는 검정 양말이 참 많았다. 서랍 구석에 처박힌 양말들. 어디 선물 받고 깜박한 양말들까지 수십 켤레의 검은색 양말이 있을 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빨래가 이 남편 양말이다.

매일 샤워하면서 보습제는 바르지 않은 탓이겠지? 양말 목 주변의 각질들

그 허연 각질들을 볼 때마다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양말을 그대로 세탁기에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그 양말들을 따로 대야에 모아 집 밖으로 나가 탈탈 턴다. 허연 각질이 없어질 때까지 힘주어 탁탁탁


남편 서랍에 검은색 양말이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가 처음이었지.

심기 불편한 듯 "양말이 없어" 해서 보니 남편은 하얀색 양말을 신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하는 게 조금 빈정이 상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 모습이 좀 우스웠다. 지하철에서 검정 구두 위에 하얀 양말 신은 아저씨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기억이 났다. 그 날 남편이 딱 그 아저씨 꼴이었다.

서랍 구석까지 좀 찾아보면 검은색 양말 어디서 하나 나올 텐데 그걸 안 하고 급하게 출근해 버린다. 당신이 잘못 알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나는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남편 서재로 달려가 서랍장을 뒤져 본다.


남편은 그렇게 심기 불편하게 출근했다.

내 표정도 일그러졌다.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내가 남편 양말을 얼마나 열심히 털어댔는데, 아침부터 기분이 영 아니다.

'집에 있으면서 양말 하나 제대로 챙기지 않고 뭘 하는 거야?'

독심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지?


그날 외출 길에 동네 폐업한 가게에서 속옷을 떨이로 팔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장이 아주 활기찬 것이 장사 잘하게 생겼다.


"양말 얼마예요?"

"누구 신으시게요? 사모님?"

"남자들 검정 양말이요"

"아, 이건 다섯 장에 만원이고, 이건 열 장에 만원이에요."

나는 복수를 하기로 했다.

"... 열 장 짜리 주세요"


문구점에서 앙증맞은 카드도 한 장 샀다. 나는 정성을 다해 카드를 썼다.


'아침에 양말 없어 곤란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파출부 올림'


그리고 양말 열 장과 카드를 남편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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